274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7일)

조직 생활을 하면서 무기가 되는 겸손함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인문 운동가의 눈에 삶의 지혜를 주는 통찰이었다. 그래 공유한다. 두 사람이 함께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보통 한 사람이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은 그 결정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지위 게임'을 하며, '지배 신호'를 주고 받는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를 교환한다.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게임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의 게임이다. 여기에 특정 규칙이 존재하며, 상황에 따라 각자 어떤 선택을 취하거나 포기하며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겸손한 사람은 과대평가를 일삼는 게임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소평가라는 신호를 즐겨 쓴다. 즉 상대가 주도할지, 종속될 지의 결정을 상대에게 맡기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한 발 뒤로 물러나 공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면 이득이 되는 점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무슨 일에 집중하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가 순수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들의 강점과 결점, 보완점 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배적으로 등장하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가 폐쇄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게 문제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그러나 결정의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 그들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그만큼 다양한 생각이 발현될 여지가 더 커진다.
여기서 공을 넘겨준다는 것이 책임을 떠넘긴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한 발 물러나 있는다는 것은 상황을 더 객관적이고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지 회피나 외면이 아니다. 겸손하되 능력 있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있을 뿐 도망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패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방해받지 않고 더 충실히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좋은 캐릭터가 우리가 잘 아는 형사 콜롬보이다. 그는 스스로를 타인의 밑에 두면서도, 언제나 탁월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쥐는 캐릭터이다.
겸손하게 물러서 있더라도 끝까지 분명히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독립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물러서지 않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의 저자 톰 슈미트(Tom Schmitt)와 미하엘 에서(Michael Esser)는 이를 "겉으로는 낮은 지위, 내면으로는 높은 지위"라는 표현으로 강조했다. 만일 자신이 생각했던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나는 하지 않을 것'이란 태도를 분명히 취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내가 직접 결정하겠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상사라면, 이렇게 말한다. "방금 하신 말씀은 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주는 표현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내 말을 가로막는다 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과장된 태도를 보인다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방금 당신의 태도로 확인했습니다." "당신의 말을 충분히 경청했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염려가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겸손함과 더불어 현명한 사람이 가진 대표적인 태도이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그 사실 하나라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자신은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며, 이런 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그러면 상황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진실은 지킬 수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소중하다. 각자 겸허한 심정으로 상대의 삶을 대할 일이다. 그것이 종교이고 지극한 수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 라마의 기도문>을 공유한다. 여러 번 읽어야 마음 속으로 들어 오고, 자주 그 기도를 올려야 내 일상이 변하고, 내 삶도 더 성숙될 것이다.
달아이 라마 기도문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게 하소서.
나쁜 성격을 갖고서 죄와 고통에 억눌린 존재를 볼 때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큰 희망을 갖고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그리고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
남들이 알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나로 하여금 떠맡게 하소서.
여기서 기도(祈禱)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는 행위이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기도는 흔히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기도를 기복(祈福)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의 '기(祈)'자를 풀이하면, '빌 기'자이지만, 날카로운 도끼(斤)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도(禱)는 목숨(壽)을 자기 앞에 내놓고 구(求)하는 행위이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기도는 자신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쌓여 있는 적폐(積弊)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배철현의 <<수련>>이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오늘의 화두인 '겸손한 사람은 과대평가를 일삼는 게임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소평가라는 신호를 즐겨 쓴다'는 이야기로 되돌아 온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가 가져다 주는 것들이 많다. 나열해 본다.
- 나 자신을 다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다는 것
- 과대 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 현실 가능한 목표 안에서 계획한 대로 하나씩 이뤄 나갈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속도 내기를 원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쉽게 소진된다, 따라서 우리는 비상시를 위해 에너지를 남겨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하며, 자신만의 자유 공간이 필요하다. 없으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사람들로부터 과대평가를 받는 상황과도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단단한 땅 위에서 자신이 가진 보폭과 자신의 속도대로 걸어가야 한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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