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일)

벌써 6월이다. 영어로 유월을 'June'이라 한다. 이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헤라 여신이 로마로 가면서 이름이 Juno(유노)로 바뀌면서 나온 것으로 본다. 헤라는 신화 속에서 결혼과 가정의 보호 신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6월에 결혼을 많이 한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6월의 신부는 행복하다." 헤라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라 한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 하는 것처럼, '6월'도 '육월'이 아니라, '유월'이라 한다.
유월이 오면, 나는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딱딱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길이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이 유연(柔然)해 유(柔)월, 세상 일에 다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 그저 남의 탓만 하지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유(由)월을 살고 싶다."
사실 우리는 늘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하다. 그래 우리는 두려움 속에 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무엇을 욕망한다. 그 욕망의 배치를 잘 해야 원하는 것으로부터 좀 해방될 수 있다. 그때부터 자유가 시작된다.
자유(自由)를 말 그대로 하면,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로 말미암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런 상태이다. 여기서 '말미암다'라는 말이 흥미롭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 따위가 원인이나 이유가 되다"란 뜻이다. 그래 자유는 일체의 권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저항하는 데서 나온다.
우리는 인문학을 영어로 liberal arts라고 한다. 이걸 말 그대로 번역하면 "자유기술"이다. 그러니까 인문학이란 '자유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학문'이다. 최종 목적지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자유인으로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우리를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책이나,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 생각하며, 그리고 비판하며 읽거나 들어야 한다. 또한 자유인, 곧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야 한다.
자유인과 노예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튀지 말고 나서지 말고 무리 속에 묻혀서 무난하게 지내도록 교육받고 있다. 이게 심하게 이야기 하면 노예적 삶이다. 이들은 자유인적 삶을 두려워 한다. 복학한 학생들이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군대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제대한 후, 자유가 너무 많이 주어지니까 더 괴롭다는 것이다. 옷을 입는 것도 그렇다. 프랑스에서 가장 싫어하는 직업이 경찰, 군인, 성직자이다. 이유는 제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에릭 프롬의 "자유로부터 도피"가 이해된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자유인을 위한 인문학적 소양보다는 노예적 삶을 위한 기술에 관심이 많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드물다. 알량한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여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좋은 글"을 읽는다고 인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을 통해 인문 정신을 배워야 한다. 6월은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다. 좀 더 자유롭고 싶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나는 늘 오세영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사진은 어제 운동 중에 만난 꽃이다. 그 꽃은 그렇게 거기서 자기의 꽃 시절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자기 연민이나 비애 따위는 없었다.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며 사는 이들에게 그런 걱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보라고 했다. 세상의 모순에 눈을 감고 정신 승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더 높은 시선을 얻으라는 초대이다. 장대한 것, 무한한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에 우리 영혼은 가난하다. 시간의 폭력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김기석)
6월/오세영
바람은 꽃 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채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 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 졌기 때문입니다.
숲 더러 길이다 하고
들은 들 더러 길이라는 데
눈먼 나는 아 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오늘 두 번째 화두는 '자신을 가두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만 열어 둬도, 나라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못 박지만 않아도 우리는 이전까지 만나 보지 못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들에게는, '열심히 해야 살아 남는다'며 '갓생'을 외치는 세상에서, 느리더라도 나만의 호흡으로 살겠다는 '걍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때로는 낯선 상황도 "그런가 보다" 하며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을 한껏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직접 경험해 보기도 하면서 삶을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대하는 거다.
"힘들면 그만해도 괜찮아." 번-아웃 되면, "힘 내"가 아니라 "힘 빼도 돼"가 중요하다. 그 말은 '힘'만큼이나 '쉼'이 답이 된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며 진정한 행복을 회복하면,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힘'과 '쉼'은 '달리기 위해 멈추고, 채우기 위해 비워야 하는' 원리이다. '힘'과 '쉼', 얼핏 정반대 성질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힘을 빼고 천천히 멈춘 상태가 ‘쉼’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 '힘'을 내고, 달리고 나면 반드시 '힘'을 빼야 한다. 이것이 '해 거리'를 하는 감나무와 '가지 치기'를 하는 성실한 농부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다.
'가지 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린 미래의 나무를 본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천지창조 후 신 역시 “보기에 좋았다”를 외치며 하루를 쉬었다. 신에게조차 휴식은 중요했다.
‘해 거리’라는 말은 과실이 한 해에 많이 열리면 그 다음 해에 결실량이 현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나무가 '해 거리'를 한다. '해 거리'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천천히 한 해를 쉬는 ‘나무들의 안식 년’인 셈이다. 하지만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 처지에선 수확량 감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 거리'를 방지하고자 이들이 하는 일이 ‘가지 치기’다. 썩은 가지는 물론이고 복잡한 잔가지와 큰 가지를 ‘미리’ 잘라 병충해를 막고 성장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 치기'는 나무를 위해 인간이 해주는 ‘나무들의 디톡스’다.
그러나 '가지 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린 미래의 나무를 본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천지창조 후 신 역시 “보기에 좋았다”를 외치며 하루를 쉬었다. 신에게 조차 휴식은 중요했다.
‘해 거리’와 ‘가지 치기’는 ‘힘과 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양면의 지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멈추고, 더 가득 채우기 위해 비우는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터득해야 할 지혜이다. 뛰느라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가에 맺혀 흐르면 먼 곳에 있던 사람 눈엔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땀과 눈물이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 놓이는 위치와 자리에 따라 냄새나는 음식물 잔 반도 귀한 퇴비가 된다. 소설가 백영옥의 글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열심히 해야 살아 남는다'며 '갓생'을 외치는 세상에서, 느리더라도 나만의 호흡으로 살겠다는 '걍생'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다가, '힘'과 '쉼'의 이야기로 샜다. 여기서 말하는 '갓생'은 신을 의미하는 '갓(god)'과 삶을 의미하는 '생(생)'을 조합한 신조어로, 매일 생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사는 인생을 일컫는 말이다. '걍생'은 '걍(그냥)생'으로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거다.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가운데 '갓생'대신.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걍생'족이 늘고 있다. 그리고 신 같은 삶을 산다는 '갓생'의 반대말로 '현생'과 '협생'이 있다. '현생'은 현실과 인생을 합친 말로 현실에 안주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혐생'은 혐오와 인생을 합친 말로, 혐오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공부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취미도 없는 사람을 보고 '혐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갓생', '현생', '혐생', 이런 말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이다. 주로 젊은 세대들이 사용한다. 이 말들은 각자의 삶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만족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말들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거나 바꾸고 싶다면 이런 단어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권한다. 앞에서 말했지만,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만 열어 둬도, '나'라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못 박지만 않아도 우리는 이전까지 만나 보지 못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들에게는, '열심히 해야 살아 남는다'며 '갓생'을 외치는 세상에서, 느리더라도 나만의 호흡으로 살겠다는 '걍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때로는 낯선 상황도 "그런 가 보다" 하며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을 한껏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직접 경험해 보기도 하면서 삶을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대하는 거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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