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하느님의 큐시트에는 반드시 반전 포인트가 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9일)

내가 좋아하는 두 문장이다. "하느님의 큐시트에는 반드시 반전 포인트가 있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음과 양의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소환하는 문장들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原理)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관계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관계적' 태도로 하루를 사는가에 따라 일이 순리(順理)대로 가느냐 아니면 그 반대가 된다. 자연은 양면성이 있다. 오르막 내리막 모두 같은 길이다. 자연은 대립면의 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역>> 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대립,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와 유의 대립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자는 이것을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고 한다.

그러나 '관계 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건강한 태도이다. 최근에 나는 건강 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다 건강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 육체의 건강
- 정신의 건강
- 태도의 건강

세 번째인 '태도의 건강'을 위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으로 나는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의 손자 아룬 간디에게 남겼다는 다음의 7 가지 '리스트'로 삼고 있다.
1. 정치적 태도는 "Politics without Principle(원칙 없는 정치)인가 묻는 거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권력욕, 정권욕에 사로 잡혀 통치한다면 국민은 불행하기 때문이다.
2. 내가 먹고 사는 일에 대한 태도는 "Commerce without Morality(도덕성 없는 돈 벌기)"인가 묻는 거다. 경제는 모두가 다 함께 잘 살자는 가치가 깔려 있어야 한다. 거래를 통해 손해를 보아 피눈물 나는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된다. 있는 자의 무한 탐욕은 반대하고 나 자신도 늘 탐욕을 살핀다.
3. 내 일상적인 삶의 태도는 "Wealth without Work(노동 없는 부(富)"를 추구하지 않는가 묻는 거다. 우리는 이것을 '불로소득'이라 한다. 열심히 일해 소득을 얻는 이들의 근로의욕을 말살시키고 노동가치 를 떨어뜨리는 부의 창출이 방임 되어서는 안 되고, 나도 그렇게 바래서는 안 된다.
4. 내가 공부하는 태도는 "Knowledge without Character(인격 없는 지식)"을 얻으려 하는가 묻는 거다. 그리고 교육이 오로지 실력 위주로만 집중될 때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 양산된다. 교육은 난사람 이전에 된 사람을 키워야 한다. 인격없는 교육은 사회적 흉기를 양산하는 것만큼 위태롭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이런 교육문법에 저항하고, 나부터 태도를 바꾼다.
5. 과학적 태도는 "Science without Humanity(인간성 없는 과학)을 꿈꾸는가 묻는 거다. 자연환경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AI 등 몰 인간적 과학기술은 인류를 결국 파멸의 길로 인도할 위험이 크다. 인문 정신을 잃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6. 윤리적 태도는 "Pleasure without Conscience(윤리 없는 쾌락)를 쫓는가 묻는 거다. 삶의 즐거움은 행복의 기본 선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좇는 무분별한 쾌락은 타인에게 혐오와 수치를 준다.
7. 종교적 태도는 "Worship without Sacrifice(희생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묻는 거다. 종교는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 배려와 봉사를 가르친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가치다. 하지만 종교에 헌신이 빠지면 도그마가 되고 또 하나의 폭력이 된다. 순결한 영혼에 대한 폭력이다.
이후 손자 아룬 간디는 이 리스트에 '책임 없는 권리((Rights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추가했으며, "'노동 없는 부'와 '양심 없는 쾌락'은 상호연관적이라고 했다. 이 리스트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의 '간디 화장터'인 '라즈가트라'는 곳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곱가지 惡德(악덕)-7 Blunders of the world"라는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지난 4월 16일에 나는 노자 <<도덕경>> 제21장의 다음 부분을 읽다가 멈추었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그 활홍하고 홀황한 느낌 가운데 상(象), 물(物), 정(精) 신(信)의 4단계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단계가 객관적 물질 세계에 관한 기술로 보아야 한다는 게 도올의 생각이다. 우주는 '도'에서 생겨나고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직선적 시간의 우주가 아니라 원융(圓融)한 순환의 우주라는 거다.

惚兮恍兮(홀혜황혜) 其中有象(기중유상),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다.
恍兮惚兮(황혜홀혜) 其中有物(기중유물),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질료가 있다.
窈兮冥兮(요혜명혜) 其中有精(기중유정), 그윽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정기가 있다.
其精甚眞(기정심진) 其中有信(기중유신), 그 정기가 지극히 참된 것으로서 그 안에는 믿음이 있다.

불교는 인간, 아니 우주 전체를 '오온(五蘊)'의 가합으로 본다. '오온'은 불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색(色)과 정신적 요소인 수(受, 감수작용), 상(象, 표상작용), 행(行, 의지작용), 식(識, 인식작용)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불교는 역시 이 세계를 '식(識)'의 작용으로 바라보는 기본적 태도를 깔고 있다. 그런데 노자는 '식'이 아닌 몸의 기술이다.

제21장의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정호승 시인의 것이다. 반성하는 아침이다.

빈 손의 의미/정호승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 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 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정호승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간디_7악 #도덕경_2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