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2일)
어제 우리는 노자 <<도덕경>> 제20장의 이 부분까지 읽었다. "荒兮 其未央哉(황혜 기미앙재)"였다. 이것을 해석하면, "텅 빈 곳에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으니 황량하다"는 거다. 황(荒)은 거칠고 광활한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글자이다. 황무지는 아직 경지 정리가 안 된 땅이다. 이처럼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경계(央)를 정하지 안 했다는 거다. 도를 아는 사람은 어떤 특정한 경계를 지어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도를 실천하는 사람, 노자적 삶을 사는 사람에게 예와 응, 미와 추사이는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가치들 속에서 아주 너른 모습으로 어느 것이나 다 포용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 다음 구절은 "뭇사람들은 희희낙낙(嬉嬉樂樂),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큰 소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화사한 봄날에 누각에 올라 화려한 시문을 읊으면서 멋있게 놀고 있다"는 거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衆人熙熙(중인희희) 如享太牢(여향태뢰), 如春登臺(여춘등대)".
그 다음은 "그런데 나는 뭔가? 나 홀로 담담하다. 그 아무것도 드러나지 아니함이 웃음조차 터지지 않은 갓난아이 같다. 나는 지치고 또 지쳤다! 돌아갈 곳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만 홀로 남겨진 것 같다. 내 마음 왜 이리도 어리석단 말인가? 혼돈스럽다. 세상 사람들 모두 밝은데 나 홀로 아둔하고 흐리멍텅할 뿐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답답하다. 바다처럼 담담하고, 그치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 같다. 사람들 모두 뚜렷한 목적이 있는데 나 홀로 완고하고 비루하고 쓸모가 없다." 我獨泊兮其未兆(아독박혜기미조) 如嬰兒之未孩(여영아지미해) 儽儽兮, 若無所歸(루루혜 약무소귀) 衆人皆有餘(중인개유여) 而我獨若遺(이아독약유), 我愚人之心也哉(아우인지심야재), 沌沌兮(돈돈혜) 俗人昭昭(속인소소) 我獨昏昏(아독혼혼), 俗人察察(속인찰찰) 我獨悶悶(아독민민), 澹兮其若海(담혜기약해) 飂兮若無止(료혜약무지), 衆人皆有以(중인개유이) 而我獨頑似鄙(이아독완사비)."
도올은 젊은 시절에 이 구절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이 문장에서 느끼는 것은 노자 본인의 고독, 혼돈, 무지, 세상물정을 모르는 답답함, 무용지물(無用之物)로서의 비천함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세상 사람들의 머리 좋음, 영민함, 똑똑함, 빠른 처세와 대비되어 짙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오강남은 '위대한 인물의 실존적 고독'으로 풀이한다.
세상 사람 모두 희희낙낙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분명하고, 여유 있고, 쓸모 있고, 목적 의식이 투철하고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은데, 자기 혼자 멍청한 것 같고, 아리송한 것 같고, 맹맹한 것 같고, 촌스럽고, 답답하고 미욱하게 보이고, 빈털터리 같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것 같다 하면서 자기의 '홀로임'을 슬픈 어조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제70장이 오버랩 된다.
"내 말은 무척 알기 쉽고, 행하기도 무척 쉽다. 그런데 천하가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吾言甚易知(오언심이지) 甚易行(심이행) 天下莫能知(천하막능지) 莫能行(막능행)" 그러면서 성인은 그 유명한 "피갈회옥(被褐懷玉)", 겉에는 남루한 갈포를 입고, 속에는 아름다운 보옥을 품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보옥을 가슴에 품은 자는 갈포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늘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일상적 의식의 합리적 차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이런 차원을 넘어선 사람을 보면 아주 흐리멍텅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래서 도를 아는 사람은 뭇사람의 이해를 얻지 못해 외로운 법이다. 이게 실존적 고독이다.
사실 즐거움이나 슬픔도 어떤 기준이나 체계를 통해 결정된다. 어떤 특정한 가치 기준 속에 있지 않은 도를 터득한 성인은 특별히 즐겁거나 슬픔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아주 담박(淡泊)한 태도이다. 우리는 흔히 '담백(淡白)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웃음을 아직 배우지 못한 영아(어린 아이)의 담박한 표정으로 은유하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는 세계를 구분해서 바라볼 기준이 아직 없다. 이런 모습을 그리는 돈돈(沌沌)은 아직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혼돈(混沌)의 모습이다.
그 다음 "나는 지치고 또 지쳤다(儽儽兮)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若無所歸)". 어떤 기준이나 지향점이 없음을 상징한다. 어떤 분명한 기준에 따라 목표가 설정되면 의욕이 생기고 몸에 힘이 넘쳐 난다. 그러나 이것은 노자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명한 기준은 우리에게 차별과 배제를 인정하라고 하면서 근심 속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귀결점도 정해져 있지 않아 축 쳐져 있는 모습이 노자가 바라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것을 자칫 소극적인 패배의 모습으로 보면 안 된다. '무불위(無不爲, (되지 않는 일이 없음)'라는 거대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무위(無爲)'의 태도를 취하듯이, 귀결점이 없는 것처럼 축 처진 태도를 취하는 것도 바로 힘이 뻣뻣이 들어간 태도가 갈등을 유발하는 것과 달리 갈등도 없이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무위'라는 말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과중하게 느낄 정도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도자가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으로 강하게 무장하여 그것을 국민들에게 반드시 실행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버넌스의 주도권이 주도자가 아니라 지도자들에게 있을 때 라야 그려질 수 있는 풍경이다.
그 다음 "衆人皆有餘(중인개유여) 而我獨若遺(이아독약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만 홀로 부족한 듯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 이야기를 내일로 넘긴다.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늘 '순환'을 기억하는 일이다. 흐르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에는 '간 맞추기'라는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와인에서 간이란 신맛, 단맛, 떫은 맛의 삼각형이 균형을 이루는 거다. 이 세 가지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수렴과 발산의 순환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이걸 김기석 목사는 "잡아당기기"와 "밀어내기"로 풀었다.
"초나라와 월나라가 장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강 상류에 있던 초나라는 물길을 따라 내려와 전쟁을 치렀다. 기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퇴각할 때는 사정이 달랐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월나라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묘수를 찾던 초나라는 유명한 기술자인 공수반을 모셨고, 공수반은 초나라를 위해 중요한 도구 두 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잡아당기는 갈고리 구(鉤)였고, 다른 하나는 밀어내는 기구인 거(拒)였다. 적이 탄 병선이 후퇴하려고 하면 ‘구’로 잡아당기고, 전진해 오면 ‘거’로 밀어냈다. 초나라는 이 기구들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공수반은 자기의 발명품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 마침 그의 동향 사람인 묵자가 초나라에 왔다. 공수반은 자기 업적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묵자는 자기가 만든 ‘구’와 ‘거’는 공수반이 만든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형님, 모르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제가 만든 ‘구와 거’는 말입니다. 사랑으로 만든 ‘구’이고 공손함으로 만든 ‘거’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의 갈고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친해질 수가 없고, 마침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하게 되려면 서로 공손하게 대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서로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위안커가 쓴 ‘중국신화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라 했다.
묵자의 ‘구거’는 상생의 도구였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잡아당기는 갈고리 ‘구’와 밀어내는 ‘거’를 가지고 산다. 무력한 이들을 잡아당겨 해치거나 지향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경계선 밖으로 밀어낸다. 나는 어떤 가? 나는 사랑으로 잡아당겨야 하는 이들은 밀어내고, 한사코 거부해야 할 특권과 이익은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지는 않은가? 책을 읽을 때 마다, 나는 후리지아 화병을 앞에 둔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 거다.
그래도 사랑은 안부하는 것/김철현
잘 있는 거니?
잘 지내는 거 맞지?
아픈 데는 없는 거니?
혹시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니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대답인 줄 알면서도
습관처럼 안부한다.
허공에 쌓인 궁금증이
벌써 얼마인지.......
그래도 여전히 안부하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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