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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시를 읽는 이유

인문운동가의 시대정신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몸이 느껴질 뿐입니다." (김현, <강령회>일부)

움직이는 것은 몸이지만, 그 안에서 법석이며 몸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영혼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그래 영혼이 먼저 살아 있어야 한다. 시는 영혼의 근육을 키운다.

시를 읽는 이유는 이렇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시를 읽을 때, 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특히 내 영혼의 떨림을.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 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 구나, 몸의 반응을 느낀다. 몸과 마음을 두드리는 시를 읽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깨달음이 나를 향한 찬찬한 응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으며, 저 단어가 내 인생에서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시를 읽으면, 내가 시적화자가 되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기도 한다. 어떤 시는 잘 모르는데, 시를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 든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화선지에 물감이 스며들듯이, 내 마음이 물드는 것이다. '스며든다'는 것은 시를 읽는 사람이 시적 화자의 입장이 되어 몸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영혼이다. 그래 우린 영혼의 근육이 있어야 하고, 단단해야 한다. 두 번째로 시를 읽는 일은 시적 화자가 되어봄으로써 누군가를, 누군가의 인생을 헤아려보는 기회가 되는 일이다.

그 다음, 시를 읽으면, 일상의 새로운 면, 일상에서 자기가 쓰고 있는 언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시를 만나면 가슴에 빗금이 그어진다. 마치 상처처럼. 불현듯이라는 단어가 "불 켠 듯"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릎을 탁친다. 어휘의 사용 수가 많아지고, 말이 때뜻해지고 예뻐진다.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시를 읽는 이유이다. 이 시를 읽어보자.

가족/진은영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제와 달라져 있다. 그 차이를 발견하려는 태도와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은 우리의 일상에 생기를 가져다 준다. 주변을 관찰하면서, 익숙함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는 '낯섦'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외연뿐만 아니라, 삶을 감싸는 사고의 외연도 넓혀준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시를 읽으면,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인문정신의 핵심은 질문하기이다. 질문 그거 싶지 않다. 시를 읽으면, 나의 발견, 타인의 발견, 일상과 언어의 발견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발견이 된다. 그 발견은 단숨에 사그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가깝게는 취향에, 멀게는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자극이 된다. 질문을 던지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답을 구하여, 나는 진짜 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를 알아야 타인과 진짜 소통할 수 있다.

후배 박용주시인의 페북 포스팅에서 얻은 오은 시인의 칼럼 "시를 읽는 이유"(경향신문 2018, 2,12)에 크게 공감하여, 나름 내 방식대로 요약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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