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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노자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답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

255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2월 1일)

최근에 노자 <<도덕경>>을 원문과 함께 다 읽었다. 주로 참고한 책은 도올 김용옥의 <<노자가 옳았다>>이었다. 처음에는 이 책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 읽고 나니 멋진 제목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경계 안에서 살아간다. 저 경계 너머는 늘 비난의 대상이거나 찬양의 대상이 된다. 이곳과 저곳이 서로 다른 것뿐이, 비교하며 우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허물어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과 방법이 존재한다.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길고 짧은 것이 상대적인 비교이고, 있고 없음은 보는 시점의 차이일 뿐이다. 노자는 그 경계를 허물 때 도(道)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 '도'는 길(way)이다. 길은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목적지가 진리면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의 길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길이 맞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이 말하는 길을 부정한다. 그래서 노자는 길이 한 가지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진리의 목적지로 가는 길은 한 가지만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알고 이고, 경험한 것만 맞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가보고, 아는 길만 옳은 길이라고 주장하면 이미 길의 보편성에서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도덕경>>의 '도'는 "멀티-웨이(multi-way)"(박재희)이다. '도'를 어느 특정한 '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편협한 생각에 갇혀 버린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라는 것은 인간의 가치나 편협 된 생각에 갇히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니다. 그래 <<도덕경>>의 시작이 "네가 알고 있는 방법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로 되어 있다. 유명한 구절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도는 특정한 도라고 말하는 순간 온전한 도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도덕경>>을 다 읽고, 두 개의 부사가 머리에 남았다. 하나는 '저절로'이고, 또 하나는 '거꾸로'였다. 이를 한문으로 하면, "무위(無爲)'이고, '반(反)'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정답은 없다(무정)"고 말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제58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正復爲奇(정복위기) 善復爲妖(선복위요): 올바름이 변하여 그른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하여 요망한 것이 된다. 
人之迷(인지미) 其日固久(기일고구): 사람의 미혹됨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거이 오답이 되고, 지금 좋다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된다는 거다.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모르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그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거다. 혼돈의 세상이 질서의 세상으로 변하자, 세상은 정답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자는 이런 질서의 세계가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을 짓밟고 무너트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자는 정답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답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

<<도덕경>>의 끝자락인 제18장에서 그런 유토피아를 말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이고,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고, 내가 즐기는 오늘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세상이었다. <<도덕경>>의 원문을 공유한다.

"甘其食(감기식) : 음식을 맛있게 먹고 
美其服(미기복) : 옷을 잘 입고 
安其居(안기거) : 편안하게 거하고 
樂其俗(락기속) : 풍속을 즐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고, 내가 입고 있는 가장 예쁘고,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가 가장 즐거운 세상이 나 자신도 영위하고 싶은 일상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먹는 것이 달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예쁘고, 내가 살고 있는 편안하고, 내가 즐기는 풍속이 즐거우면 되는 거다. 이 태도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감미(甘美)롭고 안락(安樂)한 삶을 사는 것, 그 심미적 삶의 느낌을 갖는 거다. 그리고 그 느낌을 정치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 보장을 위해 철학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건 비록 단순한 음식이지만 맛있게 먹고, 초라한 옷이지만 단아하게 차려 입고, 오두막집이지만 안온한 보금자리로 여기며 살아 가고, 순박한 그들의 풍속에 따라 명절을 즐기며 사는 사회, 아옹다옹하는 일도 없고, 잘났다고 뽐내거나 잘나 보겠다고 겨루는 일도 없고, 귀한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일도 없고, 남을 헤치려고 머리를 짜는 일도 없고, 쓸데없이 부산하게 오가는 일도 없고, 누가 왕인지 다스리는 자가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정치와 무관한 사회를 말한다고 본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된다는 거다.

박재희 교수는 자신의 <<도덕경 강독>>의 부제를 '노자가 전하는 나 답게 사는 길'이라 붙였다. 그러면서, 저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정갑은 없다. 그러니 타인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마라.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른 것일 수 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함부로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마라. 사랑한다면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간섭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세상은 저절로 돌아간다." 정답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말이지만, 노자의 생각이 옳다고 본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장자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했다. 그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그래 나의 "12월"은, 오늘 아침 시의 구절처럼,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등불이었음 좋겠다."


12월은/하영순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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