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내가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한 인간을 어제 보았다. 이미 코드를 뽑은 인간이었지만, 코드가가 완전 제거되지 않아 어젯밤 잠깐동안 나를 괴롭게 하였다. 그러나 물 흘러가는 대로 하기로 하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 다음 문제는 버리면 되는 거다. 그렇지만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과일은 먹지 않고 땅에 심는다)'하기로 했다. 즉 석과를 먹지 않기로 했다. 참는 거다. 네 잘못도 없는 건 아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이다.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에 있는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일구어 내는 보석 같은 금언이다. '석과불식'의 뜻은 ‘석과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과'는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씨 과실’이다. 초겨울 삭풍 속의 씨과실은 역경과 고난의 상징이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희망의 언어가 바로 '석과불식'이다. 씨과실을 먹지 않고(不食) 땅에 심는 것이다. 땅에 심어 새싹으로 키워내고 다시 나무로, 숲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것은 절망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길어 올린 옛사람들의 오래된 지혜이고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석과불식은 단지 한 알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에 관한 철학이다."(신영복) 그는 '석과불식'에서 정치의 원칙을 찾았지만, 나는 내 삶의 원칙을 보았다.
석과를 먹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엽락(葉落), 체로(體露), 분본(糞本)이 필요하다.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엽락(葉落)’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거품과 환상을 걷어내는 일이다. 거품과 환상은 우리를 한없이 목마르게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 (…)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소유는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도 못 된다. 먼저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하는 엽락의 엄중함이 이와 같다. 좀 가지를 치고, 이 시절의 나무처럼 상황을 정리한다.
‘체로(體露)’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신영복 교수는 뼈대란 사회나 우리 자신을 지탱하는 기둥이라 했다. 이를테면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부(自負)이다. 자주는 우리의 삶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의 문제이다. 자립은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놓고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자부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인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자부심 이야말로 역경을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자립, 자부, 즉 '3자(自)'를 늘 기억하며 산다.
엽락과 체로의 교훈은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는 삶의 근본을 마주하는 것이다. 포획되고 길들여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엽락과 체로에서 나무는 자기 삶의 순서에서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이다.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에 부족한 햇살과 수분 그리고 영양분을 가지와 줄기에 집중하여 간결한 알맞음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체로는 마침내 생을 헐벗은 가슴으로 존재를 우주 허공에 내던지는 멋진 포즈가 된다. 햇살과 바람은, 나뭇잎의 수식에 가려지지 않고 몸뚱이와 직면하여 대화를 나눈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금풍'은 오행의 금(金)에 해당하는 것이 가을이기에 금품은 가을바람인 셈이다. 금풍에 제 몸을 드러내는 일은 축복이다. 살아서 모든 것을 가리고 숨기고 남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채 살아가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가려져 상상만 했던 것들의 실체와 진실을 읽으며 내면을 단단하고 튼실하게 키우는 때가 체로이다.
‘분본(糞本)’은 나무의 뿌리(本)를 거름(糞)하는 일이다. 엽락(葉落)과 체로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분본이다. 무엇이 본(本)이며, 무엇이 뿌리인가에 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놀랍게도 뿌리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분본(糞本)은 뿌리(本)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뿌리가 접히지 않고 바르게 펴질 때 나무가 잘 자라고 아름답게 꽃피듯이 사람이 억압되지 않을 때 우람한 나무처럼 사회는 그 역량이 극대화되고 사람들은 아름답게 꽃핀다. 나의 실수는 그 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다. 좋은 사람 만나기도 바쁘다. 잊고,
3차 백신 접종을 맞았다. 그래 오늘과 내일, 적어도 월요일까지는 사람을 안 만날 생각이다. 엽락-체로-분본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가 지향하는 유일한 방향은 하늘이다. 수간(樹幹)에서 가지를 내고 입을 내지만, 그것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안정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이다.
겨울나무/차창룡
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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