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0월 3일)

오늘은 개천절로 국경일로 6일간의 연휴 마지막 날이다. 잘 쉬고 있다. '개천절(開天節)'은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개국한 날이다. 왜 개천(開天)인가?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과 '이화세계(理化世界, 이치를 세상에 구현하다)'는 우리 한민족의 뿌리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다. 나는 '홍익인간'도 좋지만 '이화세계'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이치, 즉 진리의 세상을 이 땅에 구현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리와 먼 편견, 거짓, 불법, 불평등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오늘이라도 우리 조상들의 건국 이념을 되새기는 날이었으면 한다.
어제는 주일과 오늘 국경일 사이에 낀 말로, 대체 휴일이었다. 프랑스는 일요일과 공휴일이 화요일인 경우, 다리를 놓아 월요일도 쉰다. 이를 "faire le pont"이라 한다. 'le pont(르 뽕)'은 '다리'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요일과 오늘 국경일에 다리를 놓고, 휴일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래 딸과 수녀 누나를 만나 고향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친구네 밤 과수원에 가 밥 줍기를 했다. 아침 사진이 그 밤들이다. 내 딸은 밤을 까는 기술이 거의 '달인' 수준이다. 나는 딸이 잘 까놓은 알밤을 몇 개나 손쉽게 먹는다. 그 때마다 딸이 하는 말, "아빠. 잘 드시는데, 그래도 저의 밤 까는 수고로움을 기억하며 드세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잊고, 많은 것들을 잘도 취한다.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도 나 혼자의 힘이라고 보다는 부모님의 살을 깎는 수고로움,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땀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 수고로움에 감사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 성찰한다. 가급적 다른 사람의 수고에 대가를 치루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수고로움을 행하며 내 삶을 살리라. 아니면 단순하게 살며, 바라는 것을 최소화리라.
고향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 故鄕. 古鄕, 이게 아니다. 고향은 단지 단순히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오랜 시간 전의 동네가 아니다. 故자는 '연고'이고, '근거'이고, '원래'이고, '본래'를 의미한다. '까닭'이자 '연유'다. 그러니까 고향은 '나의 까닭'이다. 거기서는 내가 '일반 명사'로 이탈하지 않고, '고유 명사'로 살았던 곳이다. 반면, '나'들이 '타자'들의 거대한 공간에서 또 다른 '타자'로 동화되어 가는 곳은 타향(他鄕)이다. 고향에 산다는 것은 '나'로 사는 일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일원으로 존재해 버리면, 그것은 모두 타향살이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두지 못하고, 그 주인 자리를 화장기로 꾸며 놓은 뻣뻣한 가면에 양보하고 사는 사람은 고향을 잃고 방랑하는 사람이다. 고향은 바로 내가 나로 드러나는 곳이다. 네 주인 자리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 모두 고향을 떠나지 않거나 고향으로 되돌아 온 사람이다. 그 고향 친구의 산에 밥 줍기를 한 것이다.
밤/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찌꺼기는 오장육부에 퇴비로 두둑이 묻히는
스티브 잡스는 "스테이 헝그리(Stay hungry!)"라고 했다. '배고프게 살라'는 뜻이다. 내게는 그런 배고픔이 필요하다. 서산대사는 '춥고 배고플 때 도심(道心)이 생긴다'고 말했다. 출가할 때 내가 가졌던 굶주림, 그걸 다시 찾아야 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수행을 하는 이유란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낯설고 외로운 곳에 있어야 하루 하루가 도전하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번잡하게 살다 보면, 시스템에 안주하며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시간에 함몰된다. 아니면, 굶주려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가난한 사람이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더 많이 먹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마시고 싶어 하고, 더 좋은 차 가지고 싶어 하고, 그 바람이 끝이 없다. 그 바람보다 오히려 굶으라는 말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현각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굶주림, 그건 영적 외로움이라 본다." 그러니까 부족할 때, 배고프고 외로울 때, 우리 안에서 이런 질문들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편하고 안락하면, 질문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왜?'라는 물음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자연스럽게 솟아 오른다는 말이다.
▪ '나는 누구인가?',
▪ '왜 사는가?',
▪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이 '참나(true self)'를 찾는 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윤정구 교수의 글에서 다음 그림을 만났다. 나는 생각을 도표로 잘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진성리더십 욕구 7단계 모형도 '배고픔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 했다. 매슬로우(Maslow)가 했던 가정은 생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아래 단계가 완성되면 그 안에서 오두막을 짖고 만족해가며 탈출하지 않고 배고픔을 잊고 살겠지만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배고픔을 찾아서 여정을 떠난다는 거다. 생존과 성장의 삶을 넘어 지속가능한 번성의 삶이 가능한 것은 이들 "진성리더"들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진실한 배고픔에 대한 질문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진실한 삶에 대한 배고픔은 세상을 바꾼 모든 리더들의 공통된 배고픔이라는 거다. 스티프 잡스의 다음 말이 "Stay Hungry! Stay Foolish!"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위 그림에서 보는 "진성리더십 7단계 모형"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모형을 "진성리더의 여정"에 맞춰 확장한 것이다.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1. 1단계 "안정적 삶(항상성): 매슬로우의 가장 낮은 두 단계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통합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먹고, 사는 일에서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만들기 위해서 산다.
2. 관계적 삶(친구, 배우자): 매슬로우의 셋째 단계인 애정, 소속 욕구와 일치한다.
3. 성취의 삶(성공과 성과: 매슬로우의 자긍심, 아니 존경의 욕구를 이름만 현대적 맥락에 맞게 바꾼 것이다.
4. 독립적 삶(간섭 받지 않는 자유): 매슬로우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는 진성리더십 7단계 모형에서 독립적 삶의 단계로 바뀐다. 충분히 성취를 해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남에게 간섭 받지 않아가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이다.
매슬로우는 4단계를 마지막 단계로 설정했지만 "진성리더십의 여정"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5. 진정성의 삶(존재 목적에 대한 각성): 개인적 성장에 방점을 둔 사람들은 자아실현이 배고픔의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성리더"는 자신의 성장을 넘어서서 공동체와 생태계를 번성시키는 일에서 더 큰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자신과 가족의 성장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아실현의 오두막에서 죽을 때까지 안락하게 지낼 것이지만 "진성리더"는 이들 오두막을 탈출하여 더 큰 배고픔을 찾아 나서거나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경제, 사회적으로 성공을 해 남들 간섭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아실현 단계가 배고픔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배고픔을 느껴가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즉 존재목적에 대해 배고픔을 다시 느낀다. 이런 각성이 다섯 번째의 단계다.
6. 협업하는 삶(공동체 기여):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해 각성하고 이 각성으로 오두막에 안주하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그간 소원해졌던 사람들을 모아 이들에게도 자신의 새로운 "진성리더"로서의 여정을 약속하는 단계가 여섯 번째의 단계다. 여섯 번째의 단계는 이 목적을 공유된 목적으로 세우고 이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임파워먼트 시켜 협업으로 동원해서 공동체를 만드는 단계다.
7. 목적의 실현(온전한 자유): 마지막 단계인 목적의 실현은 실제 약속한 목적이 실현되어 더 높은 곳에 "공의(公義, righteousness) 운동장"이 만들어진 단계다. 이 단계에 올라야 진성리더는 삶에 대해 배고픔에서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 온전한 자유를 만끽한다. 이런 온전한 자유를 체험한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하면 남은 사람들은 이 리더의 부재에 대해 배고픔을 느낀다. 리더의 부재에 대해 배고픔을 느끼고 이 리더를 자주 회상하면 어느 순간 세상을 떠난 리더가 사라진 배고픔을 이어받아 더 높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들은 리더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날줄로 자신들이 새롭게 세우는 세상을 씨줄로 새로운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이들의 협업에 의해 세상은 다시 더 나은 세상으로 끊임없이 공진화(共進化)한다.
"참 나"를 찾는 여정을 잘 제시해 준 윤정구 교수에게 감사하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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