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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에 카르마(業)가 있다.

248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4일)

애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원래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내게 무엇이 부족하다고 다른 이를 부러워 하거나, 거꾸로 뭐가 있다고 오만을 떨 일이 아니다. 부족하고 미숙한 상태에서 '태생적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카르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불교의 6 바라밀로 치유하는 거다. 그럴 사람들은 '카르마 경영법'이라 한다. 

우리의 마음 안에 들어온 생각, 감정, 오감을 6바라밀로 성실하게 대면하고 처리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보살의 길'이라 한다. 중력의 법칙만큼, 6바라밀을 어기면 악이 되고, 지키면 선이 된다. 이는 '카르마의 경영법'이고, 선업을 쌓는 길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삶의 '건너가기'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도 마찬가지 같다. 한 마디로 하면, 우리의 마음의 법칙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법칙이다.
▪ 보시 바라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인(仁)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남을 나와 다르게 보지 않고, 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갖고 싶은 것을 상대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 양심으로 안다. 그러니 '자랑질' 하지 말라, 그것도 보시이다. 
▪ 지계 바라밀: 계율을 지키는 것, 아니 유혹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의(義)에서 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마음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정신이다. 이게 지계(계율)이다. 
▪ 인욕 바라밀: 수용(受容), 즉 온갖 모욕에도 원한을 품지 않는 것, '욱'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이다. 단 자명한 것 앞에서만 참는다. 아니면 분연히 일어나 분노해야 한다. '인욕'이란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진리를 인가(수용)하며 참아내는 것이다. 이 때 참아내게 하는 힘은 지혜에서 나온다. 자명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참아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욕심에 나오는 화는 참고, 양심에서 나오는 분노는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리를 인가, 수용하는 것이다. 자명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혜(양심=진리)에서 나오는 것을 참는 것이 인욕 바라밀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타인을 배려하면서, 매너를 지킨다는 말이다. 
▪ 정진 바라밀: 악을 제거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며 나태를 버리고 부지런하고 일관되게 하는 것이다. 유교 식으로 말하면, 신(信)에서 나오는 성실지심(誠實之心)이다. '성실하게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 선정 바라밀: 마음을 응시하며, 심난 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명상과 기도를 통해 영적 휴식을 취하며, 영혼에 물을 주는 일이다. 유교 식으로 말하면, '경(敬)'에서 나오는 몰입이다. 현재 하는 일을 제외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 반야=지혜 바라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 않고, 자명한 것만 받아들이는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지(智)에서 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는 사랑(나눔), 정의(절제), 예절(수용), 성실, 몰입, 지혜(통찰 - '탁!' 하면 아는 것). 이 6가지가 인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반야심경>>의 핵심정신인 '바라밀'이 ‘건너 가기'를 뜻한다. '바라밀'이라는 말은 '파라미타'에서 온 것으로, 파라미타는 '파람(저 멀리)+이타(도달하다)'의 합성어이니, 저 멀리 로 건너 가기를 하는 것이 '6 바라밀'인 것이다. 바라밀의 뜻이 궁극, 즉 멀고 험하게 보이는 부처가 되는 길을 꿋꿋하게 걸어서 이른다는 것이니 말이다.

참고로, 인도의 '르타(rta)'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이 르타가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 적용되면 '다르마'이고, 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적용되면 '카르마'이다. '다르마'와 '카르마'는 중국으로 들어가 '법(法)'과 '업(業)'으로 번역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욕심을 버리고 의로움에 헌신하는 '다르마'가 한 사회가 순리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 사회의 약자를 인식하고 그들을 헤아리는 마음인 '연민'이다. 그래야 '법'이 서고, '법'이 서야 사회가 순리대로 작동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그건 인간의 양심이고,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다르마'는 인간의 옳음이다. '옳음'이란 자신의 양심이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내적인 훈련이자 원칙이다. 이 양심인 '옳음'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터무니없고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옳은 양심을 행하는 것이 다르마, '법(法)'이다. 이 '법'은 노자가 말하는 '도'이고, 장자가 말하는 '자연'이다.

그 동안 잊고 지내던, 하타요가(Hatha yoga)를 다시 소환한다. 하카요가에서는 몸의 동작을 변화시킴으로써 사고방식이나 기질적 문제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하타요가에서는 몸의 동작을 중시한다. 육체를 변화시켜야 마음이 변화한다고 보는 노선인 것이다. 마음이 변화하면 육체의 변화도 동반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음 변화가 매우 어렵다. 마음 한번 바꾸기가 죽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바꾸기가 어려우니까 육체를 먼저 바꿔서 그 다음에 마음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노선이 하타요가의 방법인 것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치료하는 요가 자세로는 두 가지가 있다.
 
1) '활 자세'이다. 앞으로만 쏠린 카르마(업장)를 해소하면서 뒤쪽을 보강해주는 자세이다. 바닥에 엎드려서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두 손으로 발목을 잡고 몸을 활처럼 휘는 동작이다. 책을 자주 보고, 컴퓨터 화면을 많이 보면 결국 앞만 보는 셈이다. 요가에서는 전뇌(前腦)를 이야기한다. 전뇌만 발달하고 후뇌(後腦)가 각성되지 못하면 뒤를 보지 못한다. 뒤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처지이고, 주변에 대한 배려이다. 의식이 앞으로만 쏠려 있으면 상대방 처지를 보지 못하는 함정에 빠진다. 잘못하면 이중인격, 철면피가 되는 수도 있다. 활 자세는 이걸 치료해주는 자세이다. 필자도 책을 자주 본 카르마가 전생부터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후뇌가 약하고, 따라서 이 활 자세를 자주 해야 한다는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당대 하타요가의 세계적 고단자인 석명(石明) 선생에게서 받은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살면서 자기를 입체적으로 점검해줄 명사(明師)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쟁기 자세이다. 하늘을 보고 누워서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두 다리 끝이 머리 위의 바닥에 닿도록 구부리는 자세이다. 열 받아서 뚜껑 열리려고 할 때 이 자세를 하면 효과가 있다. 상기된 게 내려간다. 뇌경색과 심장마비를 예방해주는 자세이기도 하다. 쟁기 자세는 '내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아상(我相)과 명예욕을 조절하는 데에도 아주 효과적이라고 석명 선생은 말한다. 후뇌를 각성시키는 자세이다.

내가 믿는 세상의 두 가지 법칙이 있다. 하나는 '세상에 카르마(業)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 지으면 그 벌을 받는 게 순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운이 좋아 이번 생에 죄값을 안 받았다면 후손이나 다음 생에 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제 1법칙은 업보 안 쌓고 남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왜냐하면 내가 벌하지 않아도 상대가 계속 죄를 쌓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거다. 굳이 나서서 싸울 필요 없다.  두번째 법칙은 '세상의 모든 거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라는 것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내야 한다. 내 스타일로 말하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공짜로 얻는 건 없고 어쩌다 운이 좋아 뭔가를 쉽게 얻었 어도 신(神)은 때가 되면 그 값을 받아 가기 마련이다. 이 두 법칙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 자신만의 원칙들을 몇 가지 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착하게는 못 살아도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항상 정당한 비용을 내려고 노력한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상대에겐 사소한 부탁도 안 한다. 모든 은혜는 어떤 식으로든지 갚아야 하기에 마음의 빚을 함부로 쌓지 않는다.


업보/강민숙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나는 내가 무거워
햇빛 쨍한 날
내 그림자를
먹어버렸다

내 속이
시커먼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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