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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책임 정치가 필요하다.

248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18일)

오는 10월 11일에 있을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오기 정치'이고 '무책임 정치'다. '책임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무죄'이고 '대법원의 편향된 재판'이라는 것은 법원 재판에 대한 사실상의 '불복'이다. 보수 정부의 '대법 판결 불복'은 참으로 낯설다. 이를 사람들은 '윤심 선거'라 한다. 왜냐하면 '김태우 재공천'으로 굥 입장에선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우는 무죄고, 대법원 판결이 잘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상(혹은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재보궐 선거 원인이 김 전 구청장의 실형으로 인한 궐위인데, 그 당사자를 6개월 만에 다시 후보로 내세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전략이다. '오기 정치'이고 '무책임 정치'다.

굥의 정치는 없다.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강서구 행정을 책임져야 할 인물을 뽑는 선거가 누군가에 대한 '보상'이어서는 안된다. 속마음이 그럴지라도 최소한 겉으론 그렇지 않아야 한다. 속되게 말한다면 정치는 '속마음'을 어떻게 '겉명분'으로 잘 포장하느냐의 기술이다. 욕망을 대의로 포장하고, 이익과 희생을 적절히 섞어내야 한다. 그래야 '속아도 찍어준다'는 유권자가 나타난다.

굥은 '책임'이라는 말을 제 맘대로 해석한다. 그러니 첵임 정치가 없다. 굥의 지론은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묻는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인 지난해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굥은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문제는 굥에게 '책임'은 선택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에서 장관급 고위직이 책임 진 바는 없다. 지난 7월 수해로 인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마찬가지다.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에선 아예 민주당에 책임을 돌린다. 그러다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선 갑자기 스스로 역사 앞의 '책임자'가 된다. 제 마음대로 선택하고 우긴다.

정치란 책임을 지는 일이다. 김태우 전 청장 공천으로 '보궐선거 책임이 있는 정당은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책임과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직은 트로피가 아니고 보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 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부정부패 등으로 공석이 된 선출직 자리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뒤집고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다. '책임 정치'를 궤변으로 포장해 '따져 보면 우리 잘못은 아니고 대법원과 민주당 책임이다'라고 미룬다고 유권자들이 그 말을 믿어 주긴 어려울 것이다. 여권은 '이미 한 번 가본 곳'에 다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공수가 뒤바뀐 채 말이다.

그리고 특히 최근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논란은 굥 특유의 '책임론'을 잘 보여주는 교본 같은 것이다. 사실관계만 나열해 보자. 해병대 조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국방부장관 결재가 끝났다. 그런데 경찰에 이첩까지 했던 수사기록을 국방부에서 찾아가 빼내 왔다. 이후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한 조사 내용엔 해병대 대대장 2명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됐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장이 적시했던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는 빠졌다. 공교롭게도 박정훈 대령의 폭로가 나온 후 안보실2차장과 국방비서관이 교체된다는 보도가 나왔고, 국방부장관까지 교체되게 생겼다. 폭로 내용에 등장하는 관련 인물들이 죄다 행정 체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고약하게도 덤터기는 경찰이 뒤집어쓰게 됐다. 국방부 자료를 넘겨받은 경찰은 7일 채 상병 순직 50일만인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을 압수수색했다. 국방부 조사에선 혐의가 빠졌지만 임성근 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한 별도의 건이 있기 때문에 경찰은 임성근 사단장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빠졌다. 적용 안하면 용산의 의중이 완벽히 이행되는 것이란 비판이, 적용하면 용산의 의중에 항명한다는 부담 사이에 꼈다. 물론 윤희근 청장 체제의 경찰은 99%의 확률로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윗선 수사 개입 폭로' 이후 모종의 힘이 '책임론'을 뒤틀고 있다. 해병대부터 용산, 국방부, 나아가 경찰까지 시스템이 뒤엉켰다. 이것이 '윤석열식 책임 정치'가 만든 자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박선화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유능한 전문가와 리더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방지 대책에는 더욱 세심하다. 평안한 일상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문제발생을 예방하는 무수한 이들의 숨은 노고와 실력으로 유지된다. 반면 맡은 일에 전문성도 책임감도 없는 이들이 정파성이나 연고로 층층시하 지위를 차지한 곳에서는 늘 사건 사고와 참사가 반복된다. 그런 리더들이 모인 조직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성실히 일하던 사람들도 의욕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모든 재난의 원인에는 부실 인사가 있고, 최종 리더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정이 없거나 시들고, 핵심과 디테일 모두를 꿰뚫어 장악하지 못한 책임자라면 그 자리를 그만두는 것이 맞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보다는 오직 권력의 빛에 눈 멀고 꿀만 빨려는 이들이 모여든 집단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리더는 격노하고 처벌하라는 자리가 아니다. 전문성과 지혜를 통해 아랫사람들을 독려하고 의욕을 북돋아, 본인 스스로 재난을 예방하라는 자리다. 직원보다 무능한 상사를 요즘 세대들은 월급 루팡, 즉 세금 도둑이라 부른다. 

또한 재난참사에서 상급자의 책임은 하급자를 잘못 둔 것과 다르다. 재난참사 대응 시스템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든 빠르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잘못들로 시스템 전체의 작동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하급자의 책임에 그치지 않는다. ‘엄정한 문책’이 상급자의 책임 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부족했든 실질적으로 대처할 역량이 부족했든 상급자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난참사와 같이 복합적이고 규모가 큰 사건에서는 자신이 져야 했고 져야 할 책임을 바로 알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무언가 부족했고 잘못이 있어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 부족함이나 잘못에 자신의 몫이 있음을 미리 말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배우고 익힐 방법으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피해자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할 때 사과도 끝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진상규명은 ‘꼬리 자르기’에 그치고 책임 분배에 실패하고 만다. 빨리 '오기 정치'를 먼추고, '책임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런 힘이 없다면 스스로 내려와야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생의 순간마다 많은 다짐을 하면서 생겨난 징검돌을 “다짐이 희미해질 즈음”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가슴속에 품은 돌덩이”는 욕망이나 책임, 자책 같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징검다리/김완

죽어야 겨우 그 죽음만큼의 다리가 생긴다
다짐은 스스로에게 놓은 징검다리 같은 것
다짐이 희미해질 즈음 가슴속에 품은 돌덩이
하나씩 내려놓고 딛고 가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놓은 돌들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되돌아온다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곧고 외로운 자신만의 길
거짓말처럼 생은 한순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 시는 좀 느닷없다. 밑도 끝도 없이 “죽어야 겨우 그 죽음만큼의 다리가 생긴다”고 선언한다. 이는 개울이나 계곡에 띄엄띄엄 돌을 놓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삶에서 죽음 이후 보이지 않는 길에 놓인 ‘존재의 다리’라는 뜻이다. 생의 순간마다 많은 다짐을 하면서 생겨난 징검돌을 “다짐이 희미해질 즈음” 하나씩 내려놓는다. “가슴속에 품은 돌덩이”는 욕망이나 책임, 자책 같은 것이다. 품고 있으면 무거운 돌덩이지만 내려놓으면 징검돌이 된다.

징검돌의 다른 말은 비석(飛石)이다. 손에 든 돌을 앞으로 던지는 행위 때문에 생겨난 말이리라. 징검다리를 만들 때 되돌아가 돌을 가져올 수 있지만, 우리 삶은 되돌릴 수 없다. 하여 많은 돌을 품고 가면서 차례차례 내려놓아야 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곧고 외로운 자신만의 길”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길인지라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징검돌이 되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고 있는 돌도 있다. 품는 것보다 내려놓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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