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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

248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17일)

어제는 빗 길을 뚫고, 오고 가는 4 시간을 즐겁게 운전하여, 친구 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결혼식의 모습이었다. 비가 오는 것이 귀찮음이 아니라, 세상에 가장 멋진 결혼식이 되었다.

오며 가며, 나는 "난득호도(難得糊塗), 흘휴시복(吃虧是福)"을 되뇌었다. 그 뜻은 '어리숙하게 보이기가 가장 어렵고, 손해 보는 것이 곧 복이'라는 거다. 중국 산동성의 지방 관리로 근무하던 정판교는 어느 날 먼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을 놓고 이웃과 송사가 벌어졌으니 지방관에게 잘 봐 달라는 편지 한 통을 써 달라는 거였다. 그러자 그는 시 한 편과 함께 다음의 편액을 보냈다 한다. 이를 기억하며 걸었다.

전판교는 편지를 다 읽은 뒤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대신 보냈다.
 
"천 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또 어떤 가?
만리장성은 아직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는가?"
 
그는 이 시와 함께 "난득호도"와 "흘휴시복"이라고, 직접 쓴 편액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난득호도(어리석기도 어렵다)란 글에 대하여 정판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지만,
총명하면서도 어리석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즉시 마음이 편안하니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똑똑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똑똑하면 꼭 똑똑한 티를 내고, 매사 똑똑한 체하게 마련이다. 제일 좋은 상태는 똑똑한 사람이 똑똑한 척 하지 않는 것이다. 항상 겸손하여야 한다는 뜻이고, 물과 같이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대화는 실종되고, 논쟁만 있게 된다.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득호도가 절실하다.

그리고 "흘휴시복"이라는 글자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밑지는 게 복'이라는 말이다.

"찼다는 것은 장차 비게 될 징조이고
비었음은 이제 차게 될 조짐이다.
내가 손해를 보았으면 누군가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이에 내 마음이 가라앉아 평안할 것이니
그 자체로서 복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면, 입장이 바꾸게 마련이다. 서로 베풀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즐겁고, 손해 보는 사람은 마음이 편하다. 서로 윈-윈이다. 조금 손해를 봐서 어리석게 보인다면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복을 부르는 것이다. 당장 손해를 보는 듯 보여도 멀리 보면 손해 랄 것도 없다. 비워야 얻을 수 있고 비워 두어야 비로소 채울 수 있다. 지는 것이 나중에 이기는 것이다. 싹쓸이나 궤멸을 추구 하다 가는 역풍을 맞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리석음을 선택하여 양보하고 촌스러움, 겸허함 등의 태도는 화를 피하고, 복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해를 보는 것이 복이다는 하나의 삶의 지혜이다.

그리고 빗 속을 운전하며, "'항용유회(亢龍有悔)"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주역>>에서 하는 말로,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주역>>에서는 만물의 변화가 아래에서부터, 내면에서부터 생긴다고 말한다. 높이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내려올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 밖에 없게 된다. 최근에 발탁되는 현 정권의 장관들에게 하는 경고이다.

"항용(亢龍)"에 대한 공자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르게 높이 올라가면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으므로 "항용"에 이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라는 거다. 여기서 "항(亢)"은 '높이 오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보름달보다는 열 나흘 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는 몽우리일 때가 더 가치 있으며, 완전 중앙이 아닌 미앙궁(未央宮)이 더 여유가 있다. 새길 일이다. 물극즉반(物極則反), 만물이 극에 이르면 기우는 법이다. 보름달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이름대로 살아야겠다/박노해

휘청, 내가 무너지는 날이면
내 마음의 백척간두에 서는 날이면
지구의 벼랑 끝에서 아득히
누군가 호명하는 내 이름의 메아리

이름대로 살아야겠다

이름은
일러냄
내가 이르러야만 할 길로
나를 불러일으켜 내는 것

가장 순수한 염원과
간절한 기원을 담아
내 이름이 여기 이 땅에
한 생의 사명으로 호명呼名되었으니

일생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내가 가장 많이 부른 말

내 이름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겠다
이름을 빼앗기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누군가 호명하는
우주의 긴 메아리

너를 부른다
나를 부른다

이름대로 살아야겠다
이름 따라 걸어야겠다

"난득호도"에서 "호도'라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호도(糊塗)'는 풀로 대충 발라 물체를 잇거나, 덮어버리는 일이다. 문제를 두고 단기적이며 임시적인 처방으로 일관하는 경우, 일시적인 해결만을 노리는 미봉(彌縫)의 행위, 아예 덧 칠을 함으로써 진짜 모습을 가리는 거짓의 행동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와 함께 '어리석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많이 쓰인다. 중국은 이 말을 ‘총명(聰明)’과 반대에 놓는다. 똑똑함의 정반대인 어리석고 흐릿하며, 때로는 모자라는 사람의 능력과 수준을 가리킬 때 쓴다. 그러면서도 이 ‘호도’를 승격시켰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총명함보다 흐릿하게 상황을 넘기는 호도가 더 낫다고 보는 경우다. 이는 풀이가 여럿이어서 다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큰일을 챙기고 작은 일은 잘 버무려 탈이 나지 않게 하는 지혜로움의 뜻으로 등장할 때가 있다는 거다. 이를 "난득호도"라고 하는 거다. 

우리말 쓰임에서 이 ‘호도’는 결코 좋지 않다. 진상을 가리기 위한 거짓,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불성실함, 아예 방향을 제 의도대로 바꾸려는 사악함의 흐름에서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신문지면의 지칭 대상은 늘 욕을 먹어야 하는 입장이다. 지금 현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떻게 방사능 '오염수'가 '처리수'가 되는가? 어제 들은 말이다. "변기에 똥 싸고 변기를 내려도 똥물이지 정화조 거쳤다고 생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민 교수는 "흘휴시복"을 소개하면서,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다음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성대함은 쇠퇴의 조짐이다. 복은 재앙의 바탕이다. 쇠함이 없으려거든 큰 성대함에 처하지 말라. 재앙이 없으려거든 큰 복을 구하지 말라. - 盛者衰之候, 福者禍之本. 欲無衰, 無處極盛. 欲無禍, 無求大福.)”  떵떵거려 끝까지 다 누릴 생각 말고, 조심조심 아껴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그 복이 길고 달다. 재앙은 부엌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배고픈 개처럼 틈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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