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일)

어제는 오랜 만에 노자 함께 읽기를 했다. 무더웠던 여름에는 함께 읽기를 하지 안 했다. 어제 읽은 부분은 제64장과 제65장이다.
제64장의 메시지는 세상의 변화와 목표의 달성은 결국 처음처럼 작은 정성이 지속될 때 얻는 결과라는 거다. 편안(安)하고, 일이 발생하기 전(未兆)에, 취약(脆)할 때, 작을 때(微)가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기 좋은 때라는 거다. 그리고 욕망을 내려놓고,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키워드는 여러 개이다.
- 爲之於未有(위지어미유) 治之於未亂(치지어미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단속하고,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개미만한 작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듯이 작은 화근 하나가 대 참사로 연결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기 전에 미리미리 살피고 단속하라는 것이 다. 하인리히 법칙으로 1:29:300을 소환한다.
- 民之從事(민지종사) 常於幾成而敗之(상어기성이패지): 사람이 일을 할 때는 항상 일이 성사될 때에 가서 실패한다.
- 愼終如始(신종여시) 則無敗事(즉무패사):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처음처럼>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지성(至誠)"(중용 23장): (1)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런 식으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작은 일에 최선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제65장의 메시지는 세상은 지식이 권력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지식으로 부터의 자유를 권한다. 그리고 현덕을 말한다.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이론이 아닌 덕(德)으로 백성을 대하고, 교화가 아닌 감화로 백성을 이끄는 사람을 "현덕의 지도자"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키워드가 나온다. "여물반의(與物反矣, 만물과 더불어 근원으로 돌아간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은 반대로 진행된다'는 거다.
정치의 좋고 나쁨은 항상 지도자의 '처심(處心)'과 '작법(作法)'에 있다. 정치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일에도 적용된다. 여기서 '처심'은 의도라고 본다. 정치 역역에서는 사적인가? 아니면 공적인가?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작법'의 다른 말은 문법이 아닐까? "현덕"의 문법이어야 한다는 거다. 이를 "계식"이라 했다. 이를 테면, 머리를 쓰지 않고 다가갔는데, 상대가 오히려 더 감동하고, 의도가 없이 행했는데 오히려 더 목표에 다가갈 때, 우리는 세상이 거꾸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식(智)과 의도(爲 )는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예컨대, 오늘 오는 손님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식당 주인의 생각, 맛있는 것을 먹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돈을 버는 방법이다. '이런 거꾸로(反)로 원칙'이 "계식"이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통나무의 가능성과 허와 어리석음과 포용 성이다.
이는 포용(包容)의 근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과 긴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하고, 비웃거나 현실 물정 모른다는 비난과 조소를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현덕"의 힘을 통해 도달하는 세상이 "대순(大順)"의 세상이 된다. 지식이 아닌 현덕의 통치(不以智治國, 불이지치국) → 나라의 행복(國之福, 국지복) → 평화의 세상(大順, 대순). "현덕"을 따르면, 결국 우주 자연의 대 원리와 합치하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침에 최진석 교수의 페북 담벼락에서 잊고 지냈던 다음 세 문장이 소환되었다.
- 지식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며 해결하려고 덤비는 사람이다.
- 세상의 모든 일은 불편함을 해결한 결과이다.
- 세상의 모든 일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다.
지금 몹시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신적으로 진보하지 못한 것"이다. "추격국가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후 20년 이상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견해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의 일은 정치로만 해결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말이나 글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학 기술을 중심에 놓고, 거기에 맞는 인재를 배양하고, 시대에 맞춰 부단히 혁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지만, 정치인들이 문제가 아닐까? 우리 정치인들이 고전을 좀 읽었으면 한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박성민의 정치 컨설턴트의 주장을 다시 소환한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실제로 정치는 아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너무나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이 전에 전혀 없는 어떤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정치 포퓰리즘이다. 대니얼 부어스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이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비전을 다시 만들고, 주류의식을 갖고 이 사회를 이끌며 결정하는 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정치 전문가가 다시 나와야 한다. 누구나 해도 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이런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을 지닌 정치인이 필요하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무엇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직'을 쫓을 뿐 '업'을 지키지 않는 아마추어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배분이란 정치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9월이 왔다. 9월이 오면 나는 오늘 공유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다시 읽는다.
9월이 오면/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문화공간뱅샾62 #9월이_오면 #안도현 #조짐 #현덕 #정치 #정치인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월의 기도/문혜숙 (1) | 2023.09.04 |
|---|---|
| 내 일상의 종교/이재무 (1) | 2023.09.04 |
| 그릇 / 안도현 (0) | 2023.09.03 |
| 땅끝/나희덕 (0) | 2023.09.03 |
| 비/천양희 (0) | 2023.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