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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더 질 좋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다.

245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21일)

오늘부터 송숙희 작가가 <<일머리 문해력>> 읽고 공유하려고 한다. 책의 부제는 ' 일고 쓰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이지만, '문해력'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문해력' 부족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해력'이란 '가정, 직장, 사회 일상 영역에서 갖가지 형태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수용해 진실성이나 중요성 등을 파악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문제에 적용할 있는 기초 능력' 말한다.

 

무엇을 마시는가, 무엇을 먹는 가의 문제도 '음식(飮食, 음료와 요리) 문해력'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초 문해력'이다. 말은 데이터, 통계 등의 각종 숫자를 이해하고, 매일매일 변화하는 과학 기술, 경제, 정치 상황 등의 지식을 수용하며, 시민으로 문화 예술 활동 공공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필요한 역량을 말한다. '기초'라는 말이 붙었을까? 역량이나 인성도 문해력이 기초를 이루어야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문법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초 문해력' 가르쳤다. 쉽게 말하면, 읽기, 말하기 그리고 쓰기 교육에서 제일 먼저 필요한 읽기 교육인 것이다. 문법을 알아야 읽고, 재미있게 읽을 있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이 어렵고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은 문법학을 우리 교육에서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속에서 읽게 하려면 글쓰기를 강조해야 한다. 쓰려면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되어 있는데 현실에서는 어휘력이 강조된 문해력만 주로 회자되는 듯하다. 요즘 신조어로 ‘문맥 맹(文脈盲)’, ‘맥락맹(脈絡盲)’과 같은 단어들이 생겨난 것을 보면 문해력은 어휘력 외에도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 쓰기 능력 등도 포함하여 강조되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 건강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 등 다양하게 변주되는 지금의 문해력에 맞서 누구 나의 문해력이 되도록 각 분야의 연구자, 정책입안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다.

 

현재 우리 한국인의 문해능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에 가깝다. 특히 한국의 성인 문해력이 더 심각하다. OECD PIAAC(성인대상 국민 역량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16-24세는 상위권에 있었지만, 55-64세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25세를 기점으로 수준이 내리막을 탄다. 질 낮은 대학 교육과 너무 많은 노동시간 등으로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 같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로 하는 것인 만큼, 문해력이 떨어지면 사회를 민주적으로 이끌 수 없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복잡한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는 능력이나 빨라진 세상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감수성도 함께 떨어진다.

 

문제는 '디지털 리터러시'이다. '리터러시'는 한국 말로 하면, 문해력이다. 전통적으로 이 말은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문자 해독 능력을 뜻했다. 그러나 오늘날 문해력이라 하면, 이를 넘어 ICT에 의한 초연결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역량의 핵심이 되었다. 문자, 카톡, 무서, 기사, 책 등의 텍스트 정보든, 음성, 음악 등의 소리 정보든, 그림, 사진 등의 이미지 정보든, 방송, 영화 등의 여상 정보든, 모든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문제는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더 질 좋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침마다 쓰는 글을 읽지 못하거나, 대충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문해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내가 모르는 분야는 뭔 말인지 잘 모른다. 그래 우리는 끊임 사고의 지평을 넓히려고 배워야 한다.

 

문해력이 떨어질수록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질의 격차도 이로부터 시작된다. 젊은 시절에 일정한 문해력을 갖추었다 해서 평생 유지되지 않는다. 단순한 텍스트를 읽는 수준은 어릴 때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에 따른 성숙에 알맞게 필요한 정보의 양과 질을 확장하는 일이나 시대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학교 공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꾸준한 학습을 통해 자기가 알고 실천하는 일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문해력은 서서히 바닥까지 떨어진다.

 

지금은 디지털 네러티브 세대들도 문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가지 사례들을 나열해 본다.

  • 금일(今日)은 이 단어가 오늘이 아닌 금요일을 뜻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과제를 늦게 제출한 대학생의 사연에서 따온 것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항의한 일도 흔했다. 차라리 ‘암살(暗殺·몰래 죽이다)’의 뜻을 몰라 “김구 선생이 암(癌)에 걸려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질문한 사례는 귀여운 편이다.
  • 최근에는 ‘마음이 깊고 간절한’을 뜻하는 ‘심심(甚深,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한’ 사과가 화제가 됐다. 한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사이트서 오류가 발생하자 이에 대해 주최 측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심심’을 맛이 밋밋하다거나 지루하거나 무료하다는 뜻으로 오독해 다시 항의가 빗발쳤다. ‘심심(甚深·)한 사과’를 ‘무료하다’는 뜻의 ‘심심하다’로 잘못 해석한 네티즌 때문에 과거의 해프닝까지 소환돼 조롱 받고 있다.
  • ‘사흘’은 2020년 광복절 임시공휴일 지정과 관련해 연휴가 사흘로 늘었을 때 젊은 층이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느냐. 사흘은 4일 아니냐”고 항의했던 촌극을 가리킨다. 날짜를 헤아리는 순우리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을 모르고 사흘의 ‘사’를 숫자 ‘4’로 잘못 이해한 탓이다. 지난 광복절 ‘사흘 연휴’를 다룬 기사에는 일부 독자가 기사의 사실이 틀렸다며 비난하는 댓글을 줄줄이 달았던 것이다.

 

교사들은 문해력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유튜브’를 꼽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생들이 전자기기와 지나치게 가까워진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이어 ‘독서를 소홀히 해서’라는 답변도 54.3%로, 과반을 넘겼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1년간 책을 한 번도 펼치지 않은 1020은 다섯명 중 한 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같은 글을 읽어도 다르게 판단판단하고 부러지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어긋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송숙희 작가는 문제를 일터로 가지고 책을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짧은 것으로 택했다.

 

 

수박/이정록

 

노크하지 마세요.

안에 아무도 없어요.

 

 

인문정신을 갖는다는 것, 인문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이론을 내면화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그곳에서 자기 눈으로 발견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인문적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론을 숙지하는 삶에서 문제에 빠져드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파악하고 이것을 의논하고 정보와 지식을 버무린 속에서 창조적 사고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과정의 바탕이 되는 것이 문해력이다.

 

서양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흔하지만 중요한 가치을 고취하는 교육과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트리비움(trivium)이라고 불렀다. ‘트리비움’이란 축자적으로는 세 갈래(tri) 길(vium)이 만나는 ‘공공公共의 장소’ 혹은 ‘광장廣場’을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공공장소인 시장, 즉 ‘아고라’가 있었고, 고대 로마에는 다양한 공공의 의견을 교환하고 대화하는 ‘포럼(forum)'이 있었다. 시민들은 이 광장에 모여,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정제된 생각을 개진하고, 최선의 생각에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는 기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찮은, 사소(些少)한’이란 의미를 지닌 ‘트리비얼(trivial)'은 라틴어 ‘트리비움(trivium)에서 유래했다. 로마인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라고 불렀다. ‘리버랄리스’는 ‘자유로운’이란 의미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선별해 알고, 그 가치를 추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고 의연한 사람, 즉 ‘자유인自由人’이다.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는 탈출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굴레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소극적인 자유는 자유가 지닌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자유는 탈출이 아니라 열망이며 추구다. 자유는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자신의 개성을 최선으로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한 공동체를 다양하고 조화롭게 만들 역동적인 힘이다. ‘아르테스’는 ‘최선; 예술;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르스’ars의 복수형이다. ‘아르스’는 하찮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가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그 솜씨는 어머니가 담근 김장김치 맛처럼,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이 만들어준 최적화된 간결이다. 예술은 실패라는 경험들이 굴복하지 않는 의지와 결합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감동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교육이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 즉, ‘교양 교육’이다. 이 교양교육의 가장 기본이 ‘트리비움’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지식이다. 너무 흔해 하찮게 보이지만, 공기처럼, 어머니의 사랑처럼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덕목들이다. 트리비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민교육의 틀이며, 8세기말 프랑크 왕국의 카를대제(샤를마뉴)의 문화장려교육을 통해, 오늘날 서양교육의 기반이 되었다. 나는 독립적인 인간인가? 무엇이 독립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결국 독립국가를 만드는가? 트리비움을 구성하는 세 가지는 문법文法, 논리論理, 그리고 설득說得이란 무엇인가?

 

 '트리비움(trivium)은 철학, 아니 인문학을 하는 세 가지 길, 즉 문법학(文法學), 논리학(論理學), 설득(說得)을 위한 수사학(修辭學)을 의미한다.

  • 여기서 문법학은 철학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읽기와 문해 력을 키우는 일이다. 문해력은 배치를 파악하는 거다. 지각하는 법을 배우는 거다.
  • 논리학은 철학서에서 터득한 철학자의 사고법을 도구 삼아 내 생각을 하는 것, 즉 내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생각, 아니 사유하는 법을 기르는 일이다.
  • 수사학은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나누는 것이다. 즉 글쓰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글을 쓰되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설득의 기술을 배우는 거다.

 

그러니까 문해력을 키우려면, "하버드 학생처럼 읽고 생각하고 쓰기 능력을 기르는 "이라고 송숙희 작가는 말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읽고, 생각하고, 쓰다>>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의 명문대들은 읽기를 가르치며 비판적으로 생각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차고 넘치는 정보에 분별력 있게 접근하고 사용해 성과를 내는 '메타 문해력(meta-literacy)' 강조되고 있다. '메타-문해력'이란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주의 깊게 읽으며,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배려 깊게 쓰는 능력" 말한다. -GPT 시대에, 요긴한 정보를 분별해 입수하고 창의적이며 주도적으로 의미를 만드는 능력, 생각을 정리해 쓰는 능력이 절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마디로 문해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문해력은 "읽는 , 생각하는 , 쓰는 " 길러야 한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가지 힘으로, 특히 '메타-문해력' 기르면, 누구도 넘볼 없는 차이, 일머리 초격차를 만들 있다는 거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 일간 송작가의 <<일머리 문해력>> 읽고 공유할 생각이다. "문해력을 키우면 일머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거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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