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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용기란 깃대가 아니라 깃발입니다.

사진 출처: 구글 - 서울 서대전 형무소 앞 <독립군 깃발전>


24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15일)

오늘은 78주년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수요일에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나라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여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 의미가 현 정부 들어 퇴색하고 있다. 사람들은 초복, 중복, 말복 그리고 광복이라고 조롱한다. 영토와 국민은 있으나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던가? 우리는 이를 잠시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잔악성에 대해 용서는 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되새겨 다시는 나라를 잃는 슬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민족의 독립과 진정한 광복을 위하여 일본과 총독부에 투쟁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많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매를 맞는 등 모진 고문 끝에 병사하거나 사망한 것이다. 숭고한 희생인 만큼 독립 유가족들에 대한 각별한 예우 또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금년도의 광복절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답답하다. 광복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을 되찾는다'는 의미이다. 광복절에서 광(光)은 빛을, 복(復)은 되찾다는 뜻으로, '잃었던 빛(나라)을 다시 찾은 날'이라는 말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제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는 상태가 곧 암흑이었다 라는 인식에 대한 대치 관념으로 통해왔다. 따라서, 광복은 나라를 되찾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국가가 있는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 패망이다. 그러나 8·15해방이 단순히 연합국이 한국에게 준 선물로만 본다면 일제강점기 동안의 한국민족의 줄기찬 민족해방운동을 외면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200여 만 명의 인원이 참가한 1919년 3·1운동은 그동안의 산발적인 해방운동을 집결시킨 쾌거로 그 연장 선상에서 해방을 이룬 것이다. 그렇다고 8.15 광복을 건국일로 이해하려는 것도 역사의 연속성에 있어 치명적 오류이자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광복절과 건국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역사적 착오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8.15가 건국은 아니다.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는 표현은 선열들의 피나는 독립투쟁을 폄훼하는 것을 넘어, 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모독하는 말이다. 독립운동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연합국의 승리로 거저 얻은 것인가? 오늘은 광복절. 우리 선열들의 피나는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오늘과 같은 발전에 기여한 대목을 함께 생각해보는 날이 되어야 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우리는 당연히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설명을 공유한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처음 독립한 것도 아니고, 일제나 미국이 해방을 해준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여 국권을 되찾아 나라의 빛을 회복하는 ‘광복’을 하였다. 광복을 위해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그런 법통을 이었기 때문에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국경일을 제정하였다. 더 이상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는 ‘독립’이나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국격을 세울 수 있는 용어인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에 로랑스 드빌레르의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거의 다 읽어 간다. 이젠 세 가지 주제만 남았다. 그중 오늘 '깃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저자는 바다의 배에 달린 깃발을 보고, "느낀 것을 당당하기 말하기"라는 철학적 사유를 하였다.

해군에는 알파(Alpha), 브라보(Bravo) 등의 암호를 의미하는 알파벳이 있는데, 이런 해군의 암호와 신호가 적힌 것이 깃발이다. 국제 잠수함 신호법은 전 세계 모든 해군이 모국어와 상관없이 소통할 때 사용하는 시스템이라 한다. 예를 들어 본다.
- 깃발 A(Alpha)는 '바다에 다이빙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를 두고 속도를 줄이기 바란다'는 뜻이다.
- 깃발 D(delta)는 "방해하지 말기 바란다. 조종이 어려운 곳이다"란 더 직접적인 뜻이다.
- 깃발 K(Kilo)는 "교신을 원한다" 혹은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 깃발 V(Victor)는 승리를 나타내는 'V'와 상관 없이 "지원을 요청한다"라는 긴급 메시지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살다 보면 깃발을 크게 펼치고 항복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패배했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다. 때로는 항복이 최선이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롭다. 그러니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포기하고, 바꿀 수 있는 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쉬운 것 같아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나 상황이 끝난 후에 '그 말을 할 걸', '도와 달라고 할 걸' 하며 후회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화가 나도 참고,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이럴 때는 깃발을 사용해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이럴 때는 깃발 F(foxtrot)를 사용하라고 한다. 이 깃발의 의미는 '절망적인 상태로 교신을 원한다'라 한다. 직접 전하기에는 쑥스럽고 어렵고 심각한 유일한 말이라 한다. 항해 중에는 '배가 절망적이다'라고 하면, "메이데이(mayday)" SOS 신호를 보내라 한다. 이 신호는 원래 프랑스어로 '브네 메데(Venez m'aider)'였으나 프랑스어 악센트 때문에 상대방이 '메이데이'로 잘못 들은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분명히 말하지 않고 감정도 직접 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다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아니요', '예'를 명확히 하고 형식이 서툴러도 요청 사항은 분명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 한다. 바다에서 깃발이 보내는 교훈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지금 당장 말하라는 거다. '메이데이'.

가끔씩 소식을 전하는 이순옥 시인이  "용기란 깃대가 아니라 깃발입니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멋진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거울은 앞에 두어야 하고 등받이는 뒤에 두어야 하며, 잘못은 앞에서 말해야 하고, 칭찬은 뒤에서 해야 한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깃발'하면, 나는 유치환 시인의 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인데, 누가 그것을 깃대에 단 것일까 시인은 묻는다. 


깃발/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소리를 내거나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을 향한 열정과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해원"이라는 단어를 보아, 깃발은 바다를 가고 싶은 것이다.  흔히 바다는 희망, 소망,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 다음 "순정"은 깃발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깃발은 바다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순수함을 드러내고 있다 보아야 한다. 그러나 깃발은 바다를 원해도 바다로 갈 수 없다. 깃발이 깃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깃발은 이상향인 바다로 갈 수 없는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난 거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깃발은 백로가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펄럭일 뿐이다.  그래 깃발은 "애달픈 마음"이다. 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때, 이 마지막 시구의 의미는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도록 근원적 한계를 두고 인간을 만든 신에 대한 탄식'이라고 풀이했다. 깃발을 보고, 이상향을 간절하게 소망하지만, 근원적 한계로 인해 그곳으로 갈 수 없는 인간적 한계에 대한 깨달음과 그로 인한 좌절을 표현한 시인의 통찰력에 지금도 감탄한다.

같은 깃발인데, 로랑스 드 빌레르가 읽은 것과 유치환 시인의 시인은 결이 좀 다르다. 오늘은 78주년 광복절 아침에, 특히 오늘 아침 사진의 독립군들 깃발을 보면서, 어서 제2의 광복절이 오기를 '깃발'과 함께 염원한다. 분단 역사를 마무리 짓고, 제2의 광복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의 ‘통일 한국 시대'가 어서 왔으면 한다. ‘통일 한국 시대'는 역사의 대의이며 우리 시대적 소명이다. 남과 북이 다같이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통일의 길로 나가는 것이 민족적 염원이며 진정한 광복의 실현이라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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