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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플랫폼 정신: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성공한다.

244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13일)

오늘의 세상을 잘 이해하려면 플랫폼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그 것을 장 활용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플랫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도 공원이라는 플랫폼에서 각자 자신으로 피어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 친구들과 소식을 공유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SNS 플랫폼, 
- 동영상을 올리거나 보는 플랫폼, 
- 전자상거래 플랫폼, 
- 콘텐츠 플랫폼, 
- 앱 스토아 플랫폼, 
- 심지어 스마트폰 운영체계 플랫폼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플랫폼을 떠나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플랫폼 경제, 플랫폼 노동,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정부도 플랫폼 정부를 내세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도 플랫폼 기업이다.

그러나 노자 시대에도 플랫폼 개념이 있었다. <<도덕경>> 제13장에 "寵辱若驚(총욕약경)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뜻은 '총애를 받으나 수모를 당하거나 다같이 놀란 것 같이 하라. 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을 귀하게 여기듯 하라'는 거다. 노자가 보기에는 총애를 받는 이도 욕됨을 당하는 일도 모두 일정한 가치 안에서 생기는 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애에 대해서도 혹은 욕됨에 대해서도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는 나와 관련된 총애나 욕됨에 얽매이지 않고 올바르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노자는 이 경구를 통해 항상 화복(禍福)을 경계하여 자신을 살피는 '경(敬)의 자세'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는 거다.  

노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총애(寵)"와 "욕(辱)"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사회적 평판을 비유로 들어 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총애"와 "욕"은 번갈아 가면서 나타난다. 총애만 받고 사는 사람도 없고, 수모만 당하면서 사는 사람도 없다. 나의 신체(身)를 중심축으로 총애와 수모는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교대로 나타난다. 신체, 즉 몸이 도가 드러나는 플랫폼이다. 여기서 플랫폼의 개념이 나온다.

그 플랫폼만 굳건하게 잘 지키면 된다. 총애와 욕은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총애를 받을 때나 욕을 당할 때나 변함없이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플랫폼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도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듯이 신체를 잘 보존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도 플랫폼 기업이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고객을 두고 있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모두 플랫폼 기업이고, 이들 네 개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무려 2조8,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보다 GDP가 많은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 네 개 기업들은 모두 설립된 지 20년 안팎 밖에 안되는 젊은 기업이다.

사실 오프라인 세상에도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은 기차역에서 승객이 타고 내리는 선로 옆의 터를 의미한다. 백화점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고, 증권거래소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오프라인 플랫폼의 공간적 제약을 없애버렸다. 말하자면 축지(縮地)의 세계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은 백화점과 같은 개념의 운영 규칙을 갖되 훨씬 개방적인 게이트키퍼(룰 관리자) 역할을 한다. 게이트 키퍼를 통과한 공급자는 정해진 룰에 따라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게 된다. 소비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판매자가 동일한 운영 형태(결제, 배송, 반송, 환급 등)를 보일 것이라는 믿음, 즉 신뢰를 갖게 된다. 결국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탐색과 신뢰의 비용을 줄여주는 경제적 혜택을 주기 때문에 시장보다 더 경제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런 플랫폼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오늘은 인문 운동가의 입장에 플랫폼을 이해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려는 거다. 이 생각은 윤정구 교수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보고 배운 거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세상에서 성공의 기준은 오천 명 분의 식량을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혼자 다 차지할 수 있는 가에 달려 있었다. 신자유주의 생각에 경도되어 세상은 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피를 흘리고 있는 양극화 지옥으로 전락했다." 

윤정구 교수에 의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위해서는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어떤 열망했던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인과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래 기적의 다른 말로 융은 동시성(syncronicity)이라 하고, 일반 과학자들은 뜻밖의 행운(serendifity)이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뉴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모격하고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
-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폭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
- 페니실린이나 X레이를 발견한 것

세상이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가? 기적은 그걸 믿는 사람 편이었다. 나는 기적을 믿는다. 그래 크게 절망하지 않는다. 다 과정이다. 삶의 항해를 하다가 빙하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의 갈등은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과 기적을 믿는 사람들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예수의 오병이어(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 사건은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이루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1. 플랫폼: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된 상태이어야 한다.
2. 존재 목적: 자신들이 모인 이유와 목적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3. 긍휼: 긍휼, 존재목적, 플랫폼이라는 삼 박자가 합작해 만들어 내는 것이 기적이다. 기적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기적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일상 속에 편재해 있다.

여기서 '긍휼(연민, compassion)'은 자신과 남들의 아픔을 직면하고 이것을 해결하려는 성향이다. 이것은 고통과 아픔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지고 지순한 정서이다. '인(仁)'이다. 이 말에는 나침반(compass)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긍휼한 마음은 우리에게 내면의 나침반이다.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1. 긍휼의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공동의 나침반으로 작동하고, 그 결과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존재 목적이라는 운명의 북극성을 발견하고 이 북극성을 향해서 같이 여정을 시작하는 상황이 기적이다.
2. 많은 사람들이 가진 긍휼의 나침반이 공동의 목적을 향해 동시에 떨림을 경험하고 결국은 서로를 일으켜 세워 이 진북(the North)을 향햇 동행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 기적이다.
3. 진북으로의 동행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하고 그 결과로 어느 순간 고통이 치유되는 경험이 기적이다.

긍휼의 이름으로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라. 그러면 상황이 맥락이 된다. 맥락은 상황 속에 리더의 의도가 삽입되어 상황이 새롭게 해석되어 의미 있게 다시 구성된 세상을 의미한다. 기적은 항상 사람들 과의 관계를 통해 전해지고 관계를 통해 찾아온다. 우리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긍휼의 사람들이라는 각성과 이 아픔과 아픔의 나침반의 떨림을 만들어 우리가 찾지 못했던 공동의 목적이라는 북극성에 연결을 찾아냈을 때이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서로가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협업을 위해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세상은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의 세상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연결되어 서로의 생존을 위해 의존해가는 정도가 심화되는 세상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존성이 심화되는 세상에서의 성공 기준도 바뀌고 있다. 실제로 TED에 출연한 사람들에게 성공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들 대다수는 성공에 대해서 우리가 알던 정의와 다른 정의를 이야기했다. 

이들은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 시대 성공은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성공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TED에 출연했다는 것은 현대적으로 가장 시의적절한 성공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남들과 경쟁해서 오천 명분의 식량을 빼앗아서 혼자 독식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오천 명의 사람이 나때문에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예수가 오래전에 설파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제대로 된 성공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몇 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 몰라도 오천 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가진 것이 많은 국가조차도 단순히 나눠주는 복지 방식으로는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 비밀은 플랫폼이다. 예수의 설교에 감화 받아서 모인 청중들도 플랫폼이었다. 플랫폼을 어렵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이란 네트워크에 공동운명의 울타리가 둘러져서 많은 사람이 이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런 플랫폼은 여기저기 삶에 편재해 있다.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이 네트워크 위에 어떤 울타리를 둘러주는지에 따라 플랫폼이 결정된다. 의미 있는 울타리가 둘러진다면 회사의 사장님들에게도 회사는 플랫폼이 된다. 

팀장들도 팀이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의미 있는 울타리만 있다면 가장에게는 가족이, 목회자에게는 교회가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회사, 팀, 가족, 교회를 플랫폼으로 생각하다는 것은 나 개인의 성공을 위해 다른 구성원들 모두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 울타리를 가진 플랫폼을 이용해 구성원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성공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구축하고 운영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이들 성공한 사람들이 조금씩만 나에게 돌려주어도 나는 큰 부자가 되는 원리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오병이어'다. 학자들은 이런 작은 기적들이 더해져서 '오병이어' 기적을 만드는 효과를 공식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네트워크 효과는 성공에 대한 합산이 아니라 곱하기 원리를 지칭한다.

플랫폼의 골격인 네트워크는 제대로 된 울타리가 존재할 때 다양한 사람들이 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 차이를 이용하기 위해 서로 접속하고 연결해서 십자형의 태피스트리로 만들어진다. 이 태피스트리가 제대로 된 울타리가 둘러진 플랫폼의 프랙탈이다. 진짜 플랫폼을 들여다보면 이 플랫폼 속에는 오래전에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을 날줄로 삼아 자신의 씨줄을 결합시킨 태피스트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시작은 미천하지만 끝이 창대한 기적을 추적해가면 항상 시작하는 시점에 아무도 안 알아줌에도 자신이 찾아낸 목적의 씨줄을 가지고 사람들의 상식을 날줄로 엮어서 태피스트리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 이런 든실한 플랫폼들을 가지고 있다. 나의 경우는,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셮62>가 내 플랫폼이고, 내 글을 꼼꼼히 읽어주는 페북의 페친들도, 내가 만드는 와인 아카데미도 플랫폼이다. 다시 말하지만, 
1. 긍휼의 떨림: 기적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긍휼이라는 내면의 나침반이 공유된 북극성을 향해 동시에 떨림을 만들어낼 때 발생한다. 
2. 플랫폼: 연결된 사람들을 따뜻한 심리적 울타리로 둘러준 플랫폼이 있고 
3. 존재 목적: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직면하려는 긍휼감 기반의 용기라는 떨림도 있고,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존재목적의 북극성도 있다면 협업이 일어나면서 기적은 일상이 될 것이다.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나눠 놓고 싸우는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 기적의 적들이다. 여성과 남성, MZ와 X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지금처럼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서로를 힘으로 제압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공동운명이 걸린 미래를 염두에 두고 씨줄과 날줄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가는 협업의 시각이 복원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 구전으로 생존하는 플랫폼은 플랫폼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제대로 된 플랫폼이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이다. 이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의 탈을 쓰고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맹신자들일 뿐이다.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양극화다. 이들 유사 플랫폼을 넘어서는 진짜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 기업의 과제이다.  

우리의 플랫폼은 기적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긍휼, 플랫폼, 긍휼 그리고 존재목적이라는 삼 박자가 합작해 만들어지면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지적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일상 속에 편재해 있다.

현대판 오병이어 기적을 위해 우리가 복원해야 할 것은 언제부터 인가 떨림을 멈춘 내면의 나침반인 긍휼의 용기를 살려내는 것과 플랫폼 구성원들이 공동 운명체의 가족임을 각성시키는 공유된 존재목적이라는 북극성 이 세 가지이다. 여기서 플랫폼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고, 이 플랫폼은 연대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고, 의미와 재미로 뭉쳐진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 거다. 그래 플랫폼으로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모이게 하여야 한다. 

오늘 아침 사진도 공원이라는 플랫폼에서 각자 자신으로 피어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저 사진처럼,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도 아름답다. 근데,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 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그러면 서로 '그늘'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는 살고 싶다.

그늘 만들기/홍수희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손바닥 하나로 하늘 가리고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
네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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