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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경쟁은 타자를 소중한 이웃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 마음에 차단 막을 치곤 한다.

244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11일)

오늘 아침도, 어제 이어, '마음 건강법' 김기석 목사와 함께 생각해 본다.

 

한국은 가장 경쟁적인 사회이다. 경쟁이 가져다 주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문제를 김기석 목사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경쟁은 자극을 주어 성과를 내게 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그러나 경쟁을 내면화 하는 순간, 협력해야 할 때도 경쟁하고, 이완해야 할 때도 긴장하게 한다. 타인을 밟고 올라가도 아래에서 잡아 끌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쟁은 타자를 소중한 이웃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 마음에 차단 막을 치곤 한다. 인간은 본래 경쟁하는 주체로 만들어진 것일까? 소설가 존 쿳시는 ‘경쟁은 전쟁의 순화된 대체 물’이라고 말했다. 경쟁은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지 필연적인 삶의 양식이 아니다. 경쟁은 평화나 공존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강강수월래는 높낮이가 없다. 원 밖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왜 밖에 있느냐’면서 손을 잡고 함께한다. 그러면 원이 더 커지고, 더 흥겨워진다.

 

생명체의 관계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포식(捕食), 기생(寄生), 경쟁(競爭), 공생(共生)이 그것이다. 포식과 기생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반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포식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 호랑이나 늑대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기생의 대표 격인 칡덩굴이 인간의 손에 의해 제거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자원이 유한한 환경에서 생명체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공생이 완전히 배제된 파멸적 경쟁은 종의 번성에 기여하기는 커녕 쇠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성공적인 생존전략은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벼, 밀, 옥수수, 과일, 가축 등이 지구상에 번성한 것도 공생 전략을 생존 수단으로 삼은 덕분이다. 인간은 이들에게 열매와 고기 등을 얻는 대가로 이들이 서식할 환경을 마련해준다. 식물들이 곤충들에게 꿀을 주고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것 역시 공생원칙에 충실히 따른 행동이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희망이 없다며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김기석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냉소나 허무주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물질주의의 챔피언들이 만든 게임의 법칙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만들려는 의지와 당당함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덜거린다고 내 인생이 좋아진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소비 패턴을 따라가면서 수입과 욕망 사이에 갭을 메울 수 없어 투덜거리는 것은 병적 징후다. 내 삶 속에서 제법 쏠쏠한 것들을 찾아내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삶을 작은 축제로 바꿨다. 길들여지는 것처럼 슬픈 게 없다. 광고나 매스컴이 만든 삶만 동경하며 ‘살 맛 없다’고 하기보다는, 익숙한 데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도 제법 좋은 삶이네'라고 자족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김기석 목사는 "청년들에게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라" 하면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출애굽 사건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 주저함이 없으면 좋겠다. 낯선 이들과 자꾸 만나면서 자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떠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익숙함에서 떠나 시련을 겪는다. 떠난다는 것은 나를 보호해주던 울타리를 벗어나 취약한 존재가 되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익숙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한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자신도, 인문 운동가로서, '건너 가기' 강조한다.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계속 건너 가자는 것이 철학이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을 하게 하는 힘을  상상력 또는 창의력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힘은 책을 읽는 데서 나온다. 우리 인간들에게 그 '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힘이 가장 높은 지혜이다.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원래 머물지 않고, 건너가는 존재이다.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산다. 양심도 건너가기를 멈추면 딱딱하게 권력화 한다. 건너가기를 잃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이제 양심이 아니라 폭력이다. 건너가기를 포기한 지식은 시체이다. 도덕도 마찬가지이다. 건너가기를 하게 하는 힘은 책을 읽는 일로 가장 잘 길러진다."

 

"진짜 인간은 한 곳에 멈춰 머무르지 않고, 아무 소득도 없이 보이는데도 애써 어디론 가 떠나 건너간다. 건너갈 그 곳은 익숙한 문법으로는 아직 이해되지 않아서 무섭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무모한 도전과 모험이 등장한다. 대답하는 습관을 벗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고, 닿지 않는 별을 잡으려 하는 작가 있다면, 그가 진짜 인간이다. 진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받는 가장 큰 유혹은 무엇인가? 김기석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 유혹이다. 그러면 평가의 기준이 내 쪽이 아닌 저쪽에 있다. 저 사람 마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니 불행해진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 받은 것도 세 가지다. 먼저 40일 금식한 예수에게 돌을 떡으로 바꾸라고 했다. 물질적 풍요에 대한 유혹이다. 두 번째로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다. 신비에 대한 유혹이다. 세 번째로 자기에게 절을 하면 만국을 다스리게 해준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유혹이다.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참사람, 큰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장 큰 저항은 자족하는 삶이다.

 

아니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소비사회의 신민, 노예를 만든다. 문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왜 우리는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가>>란 책에서 ‘슈퍼마켓은 우리의 사원이다. 쇼핑 목록은 우리의 <성무일도> 서이고, 쇼핑몰을 거니는 것은 우리의 순례가 된다.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쇼핑할 것인가, 쇼핑하지 않을 것인가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돈이 본이 되는 세상이다. 돈이 곧 자유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미국 출신의 철학자 데이비드 로이는 ‘돈의 유혹에 빠지면 그 순수한 수단을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다. 즉 지구는 자원이 되고, 우리의 시간은 노동이 되고, 우리의 관계는 이용해야 할 연줄이 된다’고 했다. 발터 벤야민은 돈을 유사전능성이라고 했다. 돈을 가지면 못할 일이 없는 듯이 보여 갑질 행위도 마음대로 한다. 돈의 힘에 매달리는 순간 자신이 전능 화된 것처럼 느껴져서 이다. 그렇게 돈의 노예가 된다.

 

그러면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은 "“자기 속에 기본 값이 너무 부족해 항상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미 있는 것을 귀히 여기고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피곤하다. 어떤 분들은 누군 가를 부정적으로 말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듯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만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불구로 만든다.

 

불평은 전염성이 있어, 주변 사람들의 기쁨을 빼앗아 간다. 세상에 대한 불평이 나날이 늘어날 때 혹시 기쁨의 근원이 내 안에서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톱니바퀴가 닳아 제대로 정오를 가리키지 못하는 시계처럼, 삶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멈춘 것이 아닌가도 의심해 봐야 한다. 기쁨의 샘이 말라 갈 때 내가 가는 길들은 불만과 실망으로 가득 찬다.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은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 애정은 내 마음에서 나온다. 그 내 마음으로 내 영혼을 돌보면 된다. 예컨대, 우리 스스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감사하고, 그 일의 근원을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자발성의 문제이다. 자아의 중심에서, 남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어떤 일을 행할 때 감정과 감수성의 꽃이 피어난다. 마치 새가 하늘을 만나면 기쁨의 원천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기쁨의 샘을 막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한 번 둘러보라. 완벽한 곳은 없다. 또한 아무리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해도 아름다운 것을 한 가지라도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있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게 된다. 60억의 사람이 있으면 60억 개의 세상이 있게 된다."(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오늘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 유림공원에서 찍은 거다. 연꽃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남을 위해서 자신이 뭘 한다 거나 혹은 예언하거나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산다는 것은 그냥 아니 그저  세상에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듯이 그냥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꽃이 핀다/문태준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하루가 볕 바른 마루 같다

 

맨 살의 하늘이

해종일

꽃 속으로 들어간다

꽃의 입시울이 젖는다

 

하늘이

향기 나는 알을

꽃 속에 슬어 놓는다

 

그리운 이 만나는 일 저처럼 이면 좋다

 

김기석 목사는" 잠시 멈춤", "침묵", "성찰"을 자주 강조하면서, 까닭을 이렇게 말하였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다. 나는 공원을 걷다 해찰( 우리말,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하는 것을 좋아한다. 해찰하면서 봄이면 피어나는 꽃들을 본다. 사람들이 안식이 없고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속도를 숭상해 분주해서 이다. 잠시 멈춰서 하늘을 보고 산들바람을 맞을 여유가 있어야 우울감도 사라지고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 반칠환의 시를 보라.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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