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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기 중심 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244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9일)

지난 월요일부터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할 일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고향 공주에서 멋진 분들과 와인 강의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불안하다. 세상의 시스템이 흔들이는 것 같다. 대통령 하나 잘 못 뽑아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 마음에 힘을 주기 위해, 마음 건강법을 김기석 목사와 함께 생각해 본다. 우연히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의 "휴심정"에서 만난 글이다. 질문은 '타자와 어떻게 잘 지내는 가'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모든 먹거리와 교통수단 등 누군가의 수고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 타자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타자를 무찔러야 할 경쟁 대상으로 볼 것인지, 아름다운 삶을 위한 선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태도가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김기석 목사는 타자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기 중심 성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고 여기고 반응하지 않으면 속상해 한다.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을 만나면 내 몸과 마음에도 상처가 많아진다. 반면 만나면 편안한 사람이 있다. 고집스럽지 않아 자아로 남을 찌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타자들도 나 못지않게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타자의 시린 마음을 감싸주는 삶으로 바뀌어 간다.”

이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인간 정서적 수준으로 해결하려는 1차적인 해법이다. 이젠 눈을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현 정권의 '천민성'에서 모순과 병폐를 찾아야 한다. 이 문제는 정치적인 거다. 여기서는 김 목사가 "자본의 낚시에 걸려들지 않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스타들을 내세운 상품 광고의 매혹과 그걸 갖지 못하면 행렬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결합시켜 소비사회의 노예가 되게 하는 자본에 끌려다니다 가는 몸도 마음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꽃 한송이와 별을 보며 경탄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명품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면이 헛헛하면 욕망의 포로가 된다. 한번 뿐인 인생을 그 욕망에 끌려 다니며 늘 지는 싸움만 하고 산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자본은 누군가를 카피하도록 만든다. 유대인 신학자 요슈아 헤셀은 ‘우린 오리지널하게 태어났는데, 카피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타락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내적 힘이 있어야 하는데 카피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그에 의하면, “신앙은 자본이 이끄는 돈과 소비 중심의 삶과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그는 “돈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깊은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다른 이들과의 깊은 결속과 사랑에서 비롯되는데, 돈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인간적 결속과 사랑을 희생케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틈나는 대로 말하지만, 좋은 삶은 활동과 관계이다.

그래 나는 열심히 활동하고, 많이 접속하여 관계를 만들고, 그 활동 마당을 유지하며, 차이를 생성하는 일상을 명랑하고 즐겁게 하려 애쓴다. 그래 가능한한, 나를 열고 타자에게 접속하려 한다. 최근에 늘 머릿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지속하고, 타자와 접속하라. 이게 영성의 지혜를 알고 사는 길이다. 이게 삶의 성장의 길이다. 인생의 사는 맛은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은 관계의 폭을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한다면, 원하는 활동이 확장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가 '활동을 한다'이다. 태양이 뜨면, 낮에 활동을 하는 거다. 몸을 움직이는 거다. 그 활동하는 곳이 직장일 수도 있고 자기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내 어도 된다. 두 번째는 '누군가 또 무언가와 관계를 맺는 거다.' 다시 말하면 접속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삶은 활동과 접속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이 생성되게 하는 거다. 특히 차이가 생성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진정한 차이는 어떤 것을 배우면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느낄 때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들이 자주 신상품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상품은 욕망의 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욕망의 동일성'일 수 있다. 

다음은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나는 너무 눈앞의 것만 바라보지 않고, 눈을 들어 멀리 보려고 한다. 김 목사에 의하면, “현실에 압도되면 눈 앞이 캄캄해 진다. 신앙은 현시점만이 아니라 좀 더 높은 데서 바라보게 한다. 그러면 전망이 달라지고, 일상의 자잘한 일 때문에 감정이 격동하는 일이 줄어들어 성공했다고 날뛰지 않고, 실패했다고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매사 의미 있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 친구들과 마음의 짐을 풀어놓고 농담하고, 수다 떨고, 킬킬거리며 숨구멍을 열어 주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정의 연대가 더욱 절실한 시대이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친구들과 편안하게 와인 마시는 시간들이다. 그런 공간을 가지고 있어 나는 개인적으로 행복하다.


마음에 부치는 노래/함석헌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딩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 박길 잊지 마라

인생이 가시밭길이라도 
그 속에 으늑한 구석이 있느니라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사랑의 보금자리 짓기를 잊지 마라

삶이 봄풀에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니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어떤 게 좋은 관계인가? “성경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한다. 우리는 너무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은 똥통에 빠진 사람을 볼 때 세 부류가 있다고 했다. 더럽다고 외면하고 가는 사람, 손을 잡고 끌어내는 사람, 함께 똥통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신이라면 거기 같이 들어가겠다고 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하는 것보다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하다. 그런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서는 자신의 불편을 자초(自招)해야 한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된다. 오늘도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더 불편한 하루를 살고 싶다.

행복의 비결은,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된다"고 하며, 김기석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에 올라갈 때 다리가 아파 ‘내가 뭐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하다가도 고갯마루에 올라선 순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아, 이걸로 됐어’라며 자족한다. 산에 오르듯 삶도 힘든 게 당연한 것인데 힘들지 않으려고만 하니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오히려 조금 덜 갖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살기로 마음 먹는 순간 행복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멈추어야 한다. "빈방에 빛이 들면(虛室生白, 허실생백), 좋은 징조가 깃든다(吉祥止止, 길상지지), 마음이 그칠 곳에 그치지 못하면(不止, 부지) 앉아서 달리는(坐馳, 좌치) 꼴이 된다."(<<장자>>, <인간세>)고 했다. 빈방에 빛이 드는 것처럼, 마음을 비웠을 때 새롭게 채울 여지가 생기는 거다. 중요한 건 멈춤이다. 물리적인 멈춤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멈춤도 필요하다. 멈추지 않고 달리면, 앉아서 달리는 꼴이 된다. 앉아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냥 마음만 바쁘지 백날 가도 제자리이다.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며 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러니 이젠 좀 멈추어야 한다.

제어되지 않는 욕망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김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을 참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수면으로 올라와 휘파람처럼 길게 내는 ‘호이~ 호이~’ 소리를 숨비라고 한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 욕심을 내서, 숨을 내쉬지 못하고 삼키는 순간 죽음에 이른다. 과도한 욕망에 시달리다 보면 자유도 행복도 없다. 여우가 울타리 안의 포도를 먹고 싶지만 접근할 수 없을 때,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라고 한 것을 ‘슬픈 자기 위안’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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