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8일)

오늘 아침은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가 소개한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구글에서 찾아 보았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매우 길다. "터너, 눈보라 : 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 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Ariel) 호가 하위치(Harwich) 항을 떠나던 밤의 폭풍우 속에 있었다", 1842, 캔버스에 유채, 91.4×121.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67세 터너는 눈보라 치는 날 증기선 돛대에 몸을 묶은 채 폭풍에 흔들리며 네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직접 보고 겪은 눈보라를 그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장면의 실상이 어떤 지 보여 주려고." 그렇게 나온 장면의 실상은 뿌옇게 흐려진 채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선이다.
이 그림을 보면, 흐릿하기는 하지만 형체로 배가 보인다. 그 배 주변에는 폭풍우가 불고 있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는 경계가 없고, 그저 강한 폭풍우가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치 폭풍우 한가운데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배 주변을 감싼 것은 흐릿한 은빛 불빛 그리고 파란색 하늘이 얼핏 떠오른다. 생동감 넘치는 이 그림은 움직임과 색채를 강하게 전달한다.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폭풍우가 뚫고 나와 나를 휘감을 것만 같다.
터너의 그림은 바다, 하늘, 인간 사이의 융합을 전한다. 인간 선원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바다를 만나는 거다. 요트의 전설인 에릭 타발리(Eric Tabarly)가 말한 것처럼, 선원들은 "바다와 스치기"를 바란다. 바다에서는 누구나 단 한 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바다에서는 우리가 유일한 선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과 바람의 도움을 받고 주변에 동료들이 있다고 해도 믿을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바다에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위험과 마주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애매한 결정은 안 된다. 빠르게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난 6월에 글에서 만난, <여우숲 생명학교> 김용규 교장은 삶에 필요한 단 두 가지의 능력, 더 나아가 온전한 삶을 사는 데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능력만 갖추면 족하다고 했다. 나도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
-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힘"
첫 번째로, "자기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기꺼이 제 스스로 해결하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필요한 능력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 한마디로 제 삶의 주인이 되어 그 주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다.
- 그것은 때로 도전과 역경 앞에 바위처럼 맞서는 용기와 내면의 힘을 갖추는 것이지만,
- 한편으로는 겨울을 만나는 독사처럼 물러설 줄 아는 지혜를 포함하고 있는 힘이다.
- 또한 필요와 상황에 따라 내어줄 것을 내주면서 협력하고, 홀로 만의 문제가 아닐 경우에는 연대를 이끌어내고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관계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은 온전한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게 선원들의 삶의 태도라고 본다. 우리들에게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이기도 하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언제나 '올인'한다. 올인한다는 생각은 선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라 한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선원들의 삶을 향한 태도는 살면서 모든 걸 억지로 남에게 맞추지 않는 점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선원들은 우가 부를 때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때로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자기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바다와 맺고 싶은 관계는 '자유로움'이다. 자유로운 선원은 어느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순응적이지 않기에 남과 억지로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그건 바다에서 배운 거다. 우리는 어디에 갇히거나 무엇에 방해받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한다. 이처럼 바다는 우리에게 삶에서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준다. 바다와 선원들은 따뜻하고 건강한 '이기주의'가 있어야 독립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다는 우리에게 각자의 개성을 기르라고 말한다. 돛에 매달린 터너처럼, 자기 다움을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가 지닌 개성을 지켜야 한다는 거다. 개성은 그저 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우리 각자가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자유'는 '개성'을 뜻한다. 개성은 분류되는 것에 저항한다. 그러면 자신의 개성을 소중히 하려면 어떻게 할까?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는 한 시인의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을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 나는 당신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거절하고 찬성할 수 있는 존재다. 또한 우리는 남에게 기쁨을 주거나 방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다. 선원은 신이나 규칙이 없어도 알아서 뱃머리를 돌린다. 우리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는 자유의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다.
산책을 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시 낭송을 듣곤 한다. 거기서 만난 시이다. 나도,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홀로 굳세고 자유롭게 설 수 있다면/차라리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나만의 생/훌리오 노보아 폴란코
그대들은 꽃처럼 살아라
사람들이 항상 물 주고 보살피고 찬양해주지만
한낱 화분에 매인 운명이 되어라
나는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
높고 거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돌 껍질 뚫고 나온 생명으로
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에 당당히 맞서리라
시간의 산맥 너머, 또는 경이의 심연 속으로
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주는
태곳적 바다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리라
차라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리라
모든 이가 피하는 잡초가 되리라
달콤하고 향기로운 라일락 향 대신
차라리 퀴퀴하고 푸른 악취를 풍기리라
홀로 굳세고 자유롭게 설 수 있다면
차라리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우리 대부분은 "한낱 화분에 매인 운명"처럼 산다. 그러니까 자유롭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는 이들도 있다.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살라고 한다.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높고 거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돌 껍질 뚫고 나온 생명으로/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에 당당히 맞서리라.
시간의 산맥 너머, 또는 경이의 심연 속으로/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주는/태곳적 바다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리라."
삶이 주는 고통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만나자는 거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들의 손에 결국 뽑히고 마는 좋은 향을 풍기는 꽃이 되기 보다, "차라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모든 이가 피하는 잡초가 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싶다는 거다. 나도 그런 마음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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