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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닻은 힘을 불어 넣어준다.

243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 8 7)

오늘 아침은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에 나오는 '닻' 이야기를 좀 한다.

 

닻과 돛은 다르다. 닻은 선박을 한 곳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줄을 메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갈고리가 달린 제구이다. 철이나 강철로 만든다. 또한 닻은 배에 묶여 있는 '닻줄'이라는 로프나, 쇠사슬에 끝에 달려 있다. 갈고리가 흙 바닥에 박히어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휘청거리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건 이 커다란 닻 뿐이다. 배에서 가장 무거운 것도 바로 닻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휩쓸려가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가기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반대로 출항을 할 때는 박혀 있던 닻을 올려야만 배가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닻을 올리다'는 말을 출발하다, 즉 시작하다는 의미의 관용구로 쓰인다. 반면 돛은 배 바닥에 세운 기둥에 매어 펴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있도록 만든 넓은 천을 말한다. 바람을 받아 배를 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커다란 =닻이 있다. 마음 속에 바람이 몰아칠 때 고통을 가라 앉혀주고 쉴 수 게 해주는 커다란 닻이다. 이러한 커다란 닻이 우리를 휴식 하게 하는 거다. 나는 이걸 삶의 방향, 아니 기준인 구심력이라 한다. 인간의 욕망은 원심력의 속성이 있다. 반면 인간의 본성은 구심력(중력)의 속성이 있다.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려 하기 때문이다. 원심력을 타고 자신의 본성을 이탈하려는 욕망을 중심 쪽으로 끌어내리려고 절제하는 힘이 내 마음 속의 '닻;이다. 이 말에는 '자기를 소중히 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경솔한 행동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가볍게 날리면 안 된다. 자기 규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자중(自重)'하지 못하면, 중후하고 찰 진 토양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푸석푸석해져 풀풀 표류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솔(輕率)은 바로 '조급(躁急)'과 '초조(焦燥)'를 낳기 때문이다. 조급은 '참을성 없이 매우 급한 거'다. 초조는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이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뀐다. 미래도 결정에 따라 바뀐다.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고 고집하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成熟)이다.

 

닻은 힘을 불어 넣어준다. 도무지 벗어나기 힘든 어려움이 닥쳐도, 모든 것을 잃어도 물러서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그리고 닻은 희망을 상징한다. 실낱 같은 믿음, 설령 그것이 헛된 믿음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믿음이다. 나는 절망하지 않도록 해주는 닻을 찾고 싶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번민을 잠재워주고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중심적인 닻을 갖고 싶다. 그건 희망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을 돕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때 희망은 가능성이다. 희망은 언제나 믿는 자의 것이다. 믿는 자만이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희망을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고, 희망에서 오는 '가능성'을 보태면, 내 삶이 더 희망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은 희망적이어야 한다' 정의가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이 사랑스러워야 하고, 문화가 문화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이 희망이다"라는 독일어 문장이 있다. 키에로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희망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는다. 많은 화두를 얻었다. 언젠가 나는 희망을 '가능성'이라고 보기보다, '절망하지 않기'로 받아들였던 적도 있다. 어쨌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성실하게 견딜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믿음과 지금은 힘들지만 미래에는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인내하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관계, 일, 사정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 고개를 들고 파도와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도와주는 자신만의 닻을 찾으면 된다. 그 닻을 알아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불어 넣어주고 의지를 갖고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구원의 존재가 닻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며, 불안함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음과 같이 네 다섯 개이다.

- 인정을 받지 못해서

- 진심 어린 사랑을 받지 못해서

- 감사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못 받아서

 

이때 필요한 닻과 치료 책을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는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 입 다물고 분노를 쌓아 두기 또는 반대로 '아니요'라고 말하기

- 무조건 수긍하거나 불필요한 싸움을 참기

- 상대방을 더 이해하거나, 반대로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서, 자기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고, 커다란 닻으로 반복되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끝내야 한다. 그 순간에는 참고 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태도와 결별해야 한다. 닻은 우리가 자신에 멈추라는 말, 당하고 있지 말라는 경고, 두려움과 계속 생각나는 옛 상처에서 벗어나라는 충고이다. 나 만의 닻이 있으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단순히 조용한 마음과 절제된 마음으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쾌락과 유혹을 느끼게 하는 것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고,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워줄 대상이 있을 때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태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쾌락이 수그러들면 우리는 버림받고 좌초된 것처럼 마음이 공허 해진다. 하지만 마음이 평온하고 자신만의 방향과 정신이 있다면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심이 생긴다. 독립심은 타인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배를 조종하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한다. 닻으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 외적인 감정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고 억지로 변하려 하지도 않아서 진정으로 나-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닻이 있으면 원통함,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평온한 마음은 나약함이 아닌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강한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최후의 수단인 커다란 닻이 필요하다. 닻은 간단하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게 신경 써서 내리는 게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에게 꼭 붙어 있는 닻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자유를 안겨준다. 물결이 아무리 강해도 닻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이다.

 

자유(自由)는, 말 그대로,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다.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자신의 닻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욱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의 닻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 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점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닻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 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 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 나는 니버의 기도를 좋아한다.

 

"주님 제가 변화 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주시고,

제가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나는 작년에 이런 기도를 만들었다.

주님  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는 말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나에게 그 '닻'은 희망과 감사이다. 그래 박노해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내 인생의 모든 계절/박노해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봄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

내 안쪽으로도 문을 여는 여름

가을은 갈 게 많아서 가을

씨앗 하나만을 품고 다 보내주는 가을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

벌거벗은 힘으로 뿌리를 키우는 겨울

그러니 내 인생의 봄 가을이 모두 다 희망

길어진 여름 겨울도 모두 다 감사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