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2일)

휴가 철이라 시간이 많아 몇일 동안 노자 <<도덕경>>을 읽는다. 오늘은 제69장 차례이다. 이 장의 키워드는 "애자승(哀者勝)"으로 할 수 있다. '전쟁에서 병사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 맞서 싸울 때는 슬퍼하는 쪽이 이긴다'는 거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병법의 최고 가치라면, 강요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노자의 무위 철학의 핵심이다. 이래 노자의 병법을 '무위의 병법'이라 할 수 있다. 하수는 자신의 무용을 과시하며 상대방과 싸우지만 결국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다가 패배하고 만다. 발톱을 보이지 않고 먹이를 채 가는 매처럼 고수는 칼을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한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노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당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고, 승리를 축하하기 보다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은 제31장과 더불어 노자의 평화주의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이다. 병법이란 군사를 쓰는 일이므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된 때였으므로, 병법은 먹고 자는 일만큼이나 흔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는 월등한 무력을 앞세워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러한 승리를 진정한 승리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육행위가 동반되고, 백성들의 삶의 터전인 논밭이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비전(非戰)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할 경우에도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민생의 파괴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쟁에서 주인 노릇하지 말고 손님 노릇하라고 했으며, 한 걸음 전진하는 대신 한 걸음 후퇴하라고 말한다. 팔을 쓰지 않고, 대적하지 않고, 병사를 부리지 않으면 살인과 민생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그런 방법으로 적을 물리치고, 쳐부수고, 사로잡으라는 것이다. 그 반대로 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되고, 생명과 재물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현 정권이 배워야 할 노자의 반전(反戰) 철학이다.
그러나 노자는 전쟁 수행 능력이 없는 반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전쟁 수행 능력의 선두를 달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반전은 "겸퇴무쟁(謙退無爭)"의 사상이다. 어떻게 하면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이다.
한 걸음 물러나고, 대적하지 않고, 병사를 부리지 않고서 전쟁에 임하는 이유는 평화를 사랑하고 살인과 민생파탄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런 평화주의는 도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한 무기다. 간디가 비폭력 평화주의로 영국 제국주의와 싸워 이겼듯이 무력과 폭력을 슬퍼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래서 슬퍼하는 자가 이긴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장 4절).
슬픔 앞에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눈물을 흘리는 일 밖에 없는 것일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문제는 슬퍼하는 사람이 왜 행복할까 이다. 하느님이 위로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을 겪지 않은 사람의 삶은 싱겁다. 그래서 누리는 행복도 싱겁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슬픔의 끝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위로는 슬픔의 크기와 비례한다.
제69장의 원문과 번역을 공유하고 깊게 읽고 공유한다.
用兵有言(용병유언) 吾不敢爲主而爲客(오불감위주이위객) 不敢進寸而退尺(불감진촌이퇴척):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먼저 기동하지 말고 맞이하여 싸워라. 한 치 앞으로 나서려 하지 말고 한 자 뒤로 물러서라!
여기서 "주"가 되지 말고, "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쟁의 유발자가 아니라, 전쟁의 방어자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지 말고 상대방에서 전쟁을 걸어 오면 어쩔 수 없이 방어전에나 참여하는 객체 입장이 되라는 말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주인처럼 당당하게 주도권을 잡고 행세랄 것이 아니라, 납의 집에 찾아간 손님처럼 주인이 하는 데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알맞게 대처하는 정도로만 하라는 뜻일 수도 있다. 무리한 "진격(進)"으로 병사의 목숨을 잃게 하지 않고, 철저한 방어(退)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이 노자의 병법 철학이다. 보통은 일보 후퇴, 십보 전진을 가르치는데, 노자는 반ㄷ로 일보 전진 십보 후퇴를 이야기 한다. 조그만 진격에 매달리지 말고 쓱 뒤로 물러서라는 것이다. 제67장에서 말하였던, 뒤에 서는 태도를 버린 채 앞서기만 하면 죽음을 자초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렇게 일단 뒤로 퇴각하는 것은 결국 더욱 크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는 거다. 전투(battle)에서는 지고 전쟁(war)에서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是謂(시위) 行無行(행무행) 攘無臂(양무비) 扔無敵(잉무적) 執無兵(집무병): 이것은 흔적 없이 행군하고, 으스대지 않고 물리치고, 교만하게 하여 깨뜨리고 무기를 들지 않은 듯 싸우라는 것이다.
"무행(無行)"은 행군하지 않는 듯 행군하는 것이다. 아군의 기동로를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행군하면 무사히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다. "무비(無譬)"는 으스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비"는 팔뚝이다. 상대방에게 내 팔뚝을 올려 위협하는 사람은 하수이다. 팔뚝을 휘두르지 않고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서 한 방에 끝내 버리는(攘, 물리치는) 것이 고수이다. "무적(無敵)"은 상대방이 나를 싸움의 대상(敵)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를 무시하게 만들어 상대방의 허점을 공격하여 무너뜨리는(扔) 것이다. "무병(無兵)"은 무기(兵)를 잡지 않는 것이다. 아무 무기도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방심을 틈타 상대방을 타격하는 것이다. 어쨌든 싸움에서 공격적인 자세에 방어적인 자세로 임하라는 것이다.
禍莫大於輕敵(화막대어경적) :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재앙이다.
輕敵幾喪吾寶(경적기상오보) : 적을 가볍게 여기면 나의 귀중한 보물을 잃게 될 것이다.
故抗兵相加(고항병상가) 哀者勝矣(애자승의) : 그러므로 상대방과 전쟁하여 서로 싸울 때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가 이길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금기는 교만이다. 상대방이 약하다고 무시하다가 결국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된다. 교만은 내 모든 것을 잃는 행위이다. 병사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승리의 축배를 들기보다는 뱡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조자가 결국 승리의 주역이 된다는 거다.
여기서 "애(哀)"는 노자의 "삼보(三寶)" 중의 "자(慈)"에 해당한다. 제31장에서 "殺人之衆(살인지중) 以哀悲泣之(이애비읍지)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라 했는데,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장례는 반드시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애로운 마음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어쨌든 자애로운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전쟁으로 이한 인명이나 재산 피해 등 전쟁의 비참함을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슬퍼하는 쪽, 즉 자애의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는 쪽이 결국은 승리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노자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도'의 형식을 모방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만의 강한 의지로 상황을 선도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제는 한가하게 동네 운동장을 산책하였다. 그때 찍은 사진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새들이다. 저 새들을 보면서 나는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豬怕肥)"이라는 말을 소환했다.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느리게, 편안하게, 천천히 생을 만끽하며 그냥 시시하게 살고 싶다. 이 마음이 사라지려 할 때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대신,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 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시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래도 사랑은 안부하는 것/김철현 (0) | 2023.08.03 |
|---|---|
| 먼지가 되겠다/송선미 (0) | 2023.08.03 |
| 삭제되지 않는 시간/이 옥 (0) | 2023.08.02 |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0) | 2023.08.02 |
| 삶에게 길을 묻다/천양희 (0) | 2023.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