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19일)

노자는 <<도덕경>> 제73장에서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를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아 것은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사실 무도하고 비극적 상황이라는 것이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억울하다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보아야 소용없다.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기왕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이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어떤 새로운 기쁨을 위한 청소로 여기는 편이 오히려 상황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될 수 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사람의 손길은 피할 수 있어도 신의 손길은 피할 수 없다. 하늘의 섭리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 1874~1948)는 이렇게 표현했다. “하느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갈지 않는 것이 없다.”
평생 역사를 연구해서 얻은 교훈으로 찰스 비어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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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맷돌은 멸망시킬 자에게 권력을 줘 날뛰게 한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한다. 하늘은 오만한 사람을 파멸시키려고 할 때는 먼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권력에 중독되게 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기적인 생각과 권력욕, 욕망과 교만에 날뛰면 결국 멸망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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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맷돌은 더디게 돌지만 아주 작은 것까지 간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반드시 미세한 부분까지 분쇄 시킨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가서 결국에는 의는 의로, 불의는 불의로,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드러나게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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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꿀을 도둑 질해서 꽃을 피운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빼내는 것 같아도 그 꽃을 수정 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 벌은 꽃이 만들어 놓은 꿀을 탈취한다. 하지만 꿀을 빼앗아가면서 동시에 꽃가루를 옮겨 수정이 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는 꿀벌과 같은 강도들이 많다. 강탈자, 악인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벌과 같은 강도가 항상 악을 행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날 강도들이 설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들을 통해서도 협력해 선을 이루는 하늘의 계획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결국 하늘이 주관하는 역사에는 실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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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야 별을 볼 수 있다.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야 별이 보인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별이 또렷하게 보이고, 별이 보이면 날이 곧 밝아온다. 우리는 당장 전개되는 현상에 교만해지거나 혹은 의문을 품고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엔 하늘의 섭리가 있으니 겸손히 그 뜻을 물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다. 개인의 인생이나 기업, 권력도 마찬가지로 흥망성쇠의 원인과 결과가 있다.
문제는 이 모두가 인간의 눈에는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은 사람이 보기에 난해하다. 그래서 신의 섭리는 없거나 침묵하고 있는 듯이 비쳐진다. 섭리는 때로 묘하게 작용한다. A라는 죄에 대해 B라는 죄목으로 응징하기도 한다. 작가 이병주의 깨달음이다. 필화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경험한 그는 그것이 섭리였다고 말한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한 대목이다. “섭리란 묘한 작용을 한다. 갑의 죄에 대해서 을의 죄명을 씌워 처벌하는 것이다. 꼭 벌을 받아야만 마땅한 인간인데 적용할 법조문이 없을 때 섭리는 이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격언 그대로 섭리의 맷돌은 서서히 갈되 가늘게 간다.” 그날이 올 것이다.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은 자유와 평등,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민의 정치가 무기력해진 세상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각자도생, 즉 각자 재주껏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유한 활동'이라 정의한다. 모든 것을 뜻대로 실현하는 신이나,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는 동물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별거 없듯이 정치도 별게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야말로 일상 정치의 시작이다.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국가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나?
2023년 5,18 기념 국가보훈처 공식 홍보물을 보라. 경악스럽다. 누구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보고 있는가? 이게 우리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교묘하고 야비한 시선이다. 공수부대의 눈으로 광주의 '폭도'를 바라본다. 현 정부의 개검들이 광주민주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오월 정신은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실천을 명령하고 있다”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오월의 정신을 말하기 부끄러울 것”이라는, 저들이 지켰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결국 전두환 악마 정권의 가치, 기득권 매국 부패 세력의 권력 유지 가치를 뜻할 뿐이다. 홍보물에서 올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오월정신"을 욕보이고 있다. 군복과 철모를 착용한 다수의 계엄군들이 사진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사진의 주인공이 군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훈처는 사진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오월정신'이란 문구를 달았지만, 시각에 따라 계엄군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류근 시인도 자신의 페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 출신 보훈처장… 나라가 삽시간에 걸레조작이 되고 있다."
사실 나는 1980년 5.18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 때 프랑스 신부님으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기에 때문에, 나는 그 당시 광주 소식들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 프랑스 신부님을 통해서. 따라서 나를 포함해 우리는 모두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 ‘빚 감정'이 있다. 어떤 부채는 평생을 두고 갚아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살아 있음이 죄가 돼서 빚의 크기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늘 삶의 가장자리로 조심조심 걸었다. 그 날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고인다. 신은 죽었고, 하나님은 거리의 죽은 얼굴들 속에서만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김준태 광주 시인) 오늘 아침은 시 대신 노래 한 곡을 공유한다. <바위섬>, 이 노래는 5.18 당시의 폐쇄된 광주를 떠올리며 만든 것이라 한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바위섬/배창희 작사·작곡 김원중 노래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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