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몰입하고, 틈틈이 봄 날의 하늘과 들판을 즐기리라.

235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10일)
오늘 아침은 나의 <인문 일지>에서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 봄 꽃들을 소환하여 본다. 첫 번째가 모과나무 꽃이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에 모과나무가 하나 있다. 모과 꽃을 본 것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래 그 다음 날 아침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이 그 모과 꽃이다. 사실은 좀 시간이 지난 거다. 그런데 잊고 있다가, 어제 사진을 정리하다 만났다.
 
언젠가 나는 어느 책에서 다음 표현을 읽은 적 있다. “모과나무처럼 뒤틀린 심사(心思)”. 잎과 꽃이 없는 겨울에 모과나무를 보면, 몸통이 뒤틀려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가을에 익는 노란빛의 매혹적인 열매 이름이 모과이기 때문이다. 그 모과도 울퉁불퉁 못 생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모과의 향기는 기가 막히다. 모과는 목과(木瓜)에서 나와, 그 의미는 '나무의 참외'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모과 꽃은 특별히 진한 향기가 없으니 벌이 가끔 찾는다 해도 ‘향기 나는 듯 마는 듯’한 꽃이다. 게다가 빛깔 또한 원색이 아니라 은은한 분홍빛이니 ‘빛깔로 드러내고자’하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이다. 잎이 무성해서야 꽃이 피니 ‘나무 사이에 섞여서/바람하고나 살아서/있는 듯 없는 듯’한 꽃이다.
 
그럼 오늘 공유하는 시어에 있는, "모과 꽃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분명 꽃은 피지만 잎에 가려 ‘눈에 뜨일 듯 말 듯’하는 것처럼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조용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나무는 그렇지 않다. '뒤틀린 심사'를 모나나무에 비유한다. '심사(心思)'란 "어떤 일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흥부전』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놈의 심사 이러하야 모과나무같이”. 나무와 꽃이 다르다.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모과나무처럼, 심사가 뒤틀렸으면, 모과 꽃 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답에만 빠지지 말고, 질문하는 사람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모과꽃/도종환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꽃은 피는데
눈에 뜨일 듯 말 듯
 
벌은 가끔 오는데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
 
빛깔로 드러내고자
애쓰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나무 사이에 섞여서
바람하고나 살아서
있는 듯 없는 듯
 
 
그 다음은 '금낭화'이다.
 
금낭화/안도현
 
6월,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틀니 빼놓고
시집을 가고 싶은가 보다
장독 항아리 표면에 돋은 주근깨처럼 자잘한 미련도 없이
어머니는 차랑차랑 흔들리는 고름으로 신방에 들고 싶은가 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지나치게 '준비 사회'이다. 젊은이들에 목표를 강요하고 그것을 위하여 '지금'을 희생하도록 종용한다. 그러면서 요즈음 젊은이들은 '충실한 오늘을 살고 싶다'거나 '잃어버린 지금을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너무 나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 좋으면 그만이야'와 같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에 대한 진지하지 못한 태도는 아니다.
 
나의 지금-여기에서의 현재가 미래에 담보로 잡히면, 오늘 아침 시를 즐기지 못한다. 소쩍새 소리, 금낭화, 개미딸기, 하늘 높이 뜬 솔개를 보지 못한다. 다 때가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다들 사라지고, 녹음이 짙어 질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잘 실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무언 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구하지만, 그 대답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쫓아가기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지금'을 소홀히 한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함께 녹아 들어 있다. '대답을 실천하는 삶'은 미래에 얽매이지 않아야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다. 그래 나의 만트라가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이다.
 
여러 생명들이 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생명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은 순환할 뿐, 어느 한 곳을 지향해가지 않는다. 그곳에 그냥 있으면서 현재를 살며 삶을 영위해갈 뿐이다. 오늘도 현재 나에 주어진 일들에 몰입하고, 틈틈이 봄날의 하늘과 들판을 즐기리라. 문제 제기를 대답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문제만을 제기하고 자신은 그 대답과 괴리된 삶을 살지 말고,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지금-여기'에서 하루 하루 실천하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현재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길 시간을 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들이는 것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어가는 길/윤석구  (1) 2023.05.13
슬픈 시/서정윤  (0) 2023.05.13
뻘에 말뚝 박는 법/함민복(1962~ )  (2) 2023.05.12
서시/이정록  (0) 2023.05.12
그늘/박준  (1) 202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