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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무튼 주작임"

234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3일)
살다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눈과 귀를 닫고, 오직 내 갈 길만 가겠다는 행동을 심리학에서는 '주의력 착각'이라고 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착각이다. 착각(錯覺)이란 어떤 사물이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자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투명 고릴라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순간, 다른 진실을 보지 못한다. '기억력 착각'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력은 무뎌 진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거나, 기억 자체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감 착각'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실력이 없는 자일수록 이런 과대평가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눈은 인간의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눈을 통해 신체 건강을 알 수도 있고, 마음의 상태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란 말이 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은 눈을 통해 상대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동공을 둘러싸고 있는 홍채인식을 보안에 적용하는 기술이 있는가 하면, 홍채를 통해 전생을 읽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을 통해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나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도 한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에는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하다고도 한다. 애써 눈을 피하는 사람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이고, 이야기를 하면서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면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탐내는 물건을 보면 눈에서 독(毒)이 나와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며 눈에 붙은 살이 움직여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더하면 눈에서 총이 발사되어 '눈총'을 주기도 한다. 눈은 독이 되기도 하고 총이 되기도 하여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가장 먼저 전달되는 인간의 기관이다. 박재희 교수의 글에서 배운 거다.
 
우리는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것을 "백안시(白眼視)"라 한다. 또는 도외시(度外視)란 말도 사용한다. 이 말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완적(阮籍)이 눈빛으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였다는 데서 율한다. 완적은 속세를 피해 산림으로 들어가 권력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 지식인이었기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일단 속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흰 눈동자로 상대방을 보았다. 일명 '백안시(白眼視)의 시선법'이다.
 
마주보고 이야기는 하고 있으나 동공은 다른 곳에 있고, 흰(白) 눈자위(眼)로 상대방을 보는 시선법이다. 백안시는 앞에 있는 사람을 유령 취급하고 완전 무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모멸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무시(無視)당하는 것이다. 시선(視)을 주지 않기(無)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명품으로 치장하기도 하고, 비싼 차를 타며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상대방의 시선이 나를 보아주기를 바라고,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인간의 인정 욕구이다. 그러나 무시하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선 긋기’이다. 미셸 엘먼은 저서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에서 '선 긋기'에 대해 신발을 신고 내 침대에 올라오거나, 꽃병을 던지는 사람을 가만히 둘 수 있겠냐고 되묻는다. 중요한 건 어떤 집에선 신발을 신고 거실에 들어와도 되지만, 안 되는 집이 있듯 ‘선 긋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다. '선 긋기'는 내가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없는지를 타인에게 밝히는 행위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 비하나 거짓말이 마지노선인 사람이 있고, 예의 없음이나 시간 엄수가 그 선인 경우도 있다.
 
사람들에겐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런 욕망, 즉 칭찬받기 위해 하는 행동을 ‘이타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타성이 종종 ‘서운함’을 남기는 건 내 욕구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살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이타성의 이면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 긋는 것’을 이기적인 것, 나만 아는 것이라는 편견을 바꿔야 한다. 선 긋기는 타인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타인’이 아닌 ‘나’로 삶의 순서를 바꾸겠다는 자기 선언이자, 타인에게 나를 알리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너와 나는 ‘우리’로 공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이 내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것’을 남에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쌓아온 숱한 오해를 작은 이해들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남이다. 가까울수록 ‘남’이라는 것을 때론 서늘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거리 안에서 ‘친밀한 타인’이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백안시'와 달리, 우리는 상대방을 존경하거나 인정할 때면 파란 눈으로 상대방을 본다. 일명 '청안시(靑眼視)의 시선법'이다. 파랗게(靑) 빛나는 눈동자(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는 눈빛으로 가장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눈빛을 곱게 하고 상대방을 바라봐 주는 것만 해도 참으로 큰 보시다. 흰 눈동자를 뒤집으며 무시와 경멸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 어떤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
 
백안시라는 말은 곧은 사람이 의롭지 못한 이익과 자리를 보면 백안시하여 눈길 주지 않을 때는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이 누구든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깔보고 무시하여 백안시하는 것은 나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안시당하는 분들을 따뜻한 청안의 눈빛으로 맞이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세상에서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큰 나눔이 눈빛과 얼굴빛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노선이 다르다고 서로 얼굴을 찡그리며 흰 눈동자로 백안시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하얀 눈동자를 푸른 눈동자로 전환하여 서로 아름다운 눈빛으로 대하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의 말이다. 나도 사람들을 친절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일상을 보낼 다짐을 하는 아침이다. 그게 "내가 사는 이유"이다.
 
 
내가 사는 이유/박노해
 
이렇게 좋은 시대가 왔는데
아직도 왜 그렇게 사느냐고
 
나를 안쓰러워 하지 마라
나를 불편해 하지도 마라
 
나를 움직이는 동인은
원한願恨이다
 
간절한 그 비원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깊은 사랑의 한이 나를 싸워가게 한다
 
나를 움직이는 동인은
원과 한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그것이 내가 분투하는 힘이다
 
 
최근에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사진과 함께 "아무튼 주작임"이라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어떤 사실에 대해 명백한 증거나 정황이 있음에도 절대로 받아들이거나 믿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에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었을 때, 인터넷 게시판 등에 '분노한 개구리' 짤방과 함께 사용한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나 부러워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적 불신과 거부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부러움을 감추기 위한 표현이다. '주작'은 '어떤 일을 사실인 듯이 꾸며 만듦'이라는 의미의 '조작'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다.
 
게시물 제목에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 주작이라고 써 관심을 유도한 후, 본문에는 '분노한 개구리' 짤방과 함께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적는다. 문제의 소식이 조작이라는 근거는 전혀 밝히지 않고,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무조건 우기는 것이 핵심이다. 이 표현은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서 유래했다. 한 사용자가 토토로 1억원 가까운 거액을 딴 사실을 인증하자, 다른 사용자가 개구리 이미지와 함께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게시물을 올린 것이 인기를 얻으면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다. 예쁜 아내 사진을 인증해 화제가 된 게시물에 대해 '아내 인증 주작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후 본문에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적거나, 다정한 연인의 알콩달콩한 카카오톡 대화를 캡쳐한 이미지에 대해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강짜를 부리는 등의 사례를 볼 수 있다.
 
사실 국어사전에 '없는 사실을 꾸미어 만든다'는 의미로 '주작(做作)'이라는 단어가 이미 존재했다 한다. 그러나 한국의 인터넷에서 주작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탄 것은 그것과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은어가 그렇듯이 이 또한 필터링 때문에 생겨났다. 한국 e-스포츠 최대의 스캔들인 승부 조작 사건 이후,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 개인 방송을 하는 전직 프로 게이머이자 승부 조작 사건의 범인 마재윤을 비꼬기 위한 의도로 생긴 것이 '주작'의 시초다. 즉, 주작의 알을 낳은 어미새는 바로 마재윤이다. 마재윤의 <아프리카TV> 방에서 필터링을 피하기 위하여 조작을 음운이 비슷한 주작으로 고쳐 쓰고, 이후 조작이란 말이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조작을 주작으로 고치는 것이 유행이 되다가 옛 단어인 주작(做作)이 발굴된 것이다. 순서로 치자면 역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주작임'의 인기는 인터넷에 만연한 조작 정보에 대한 경계심과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실시간으로 봐야 하는 네티즌들의 피로감이 더해져 생긴 현상이다. 우리의 일상은 팍팍한 반면 소셜미디어에서는 여행지의 일상과 사랑스러운 자녀, 맛있는 저녁 자리와 자랑스러운 성취의 순간들이 주로 올라온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렵고 누추한 삶을 공유하며 서로 위안을 얻지만, 때때로 등장하는 행복한 소식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때로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 좋은 일은 주작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늘상 보아왔던 것이 주작 아닌가? 주작이 아님을 알면서도, 혹은 주작이라는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 주작이라고 우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 사건에 대해 주작이라고 주장하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과 클릭은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부러워 속 쓰린데 관심이라도 얻어야 하지 않겠나. 또 이 표현은 팩트 폭력에 맞서 꿋꿋이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상대방이 제시하는 주장과 근거에 대해 '아무튼 주작임'이라고 밀어붙인다.
 
이젠 진실을 말해도, 확증편향된 일부 기득권 세력들은 다 '아무튼 주작임'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가 크게 두 편으로 갈라졌다. 나도 그런지 모르지만,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 내가 지난해 10월 14일에 썼던 <인문 일지>에서의 걱정이 현실이다.
 
현 대통령이 문제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굥' 대통령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훈 전기자가 SNS에 올렸던 글에 답이 있다. 그대로 옮긴다.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야.”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철학은 없이 단편 지식을 앞세운 독단, 남의 말을 경청하지도 조언을 듣지도 않는 불통, 거기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자뻑'에 사로잡혀 있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본디 무능하면서 고집 세고, 부지런한(혹은 게으른) 리더가 최악이라고 했다. 조직을 오도하고 구성원을 고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이라면, '굥' 대통령의 깊이 없는 정책 인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언행, 넉살스러운 태도가 왜 반복되는지 이해가 된다. 지지율 하락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복합위기에 대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만하다.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깨알지식을 앞세우니 중요한 정책과 인사에 대한 실언과 혼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 ‘김건희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쓴소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일 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비속어 논란 자체보다 그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이 불통과 독단, 집권 세력의 확증편향이 더 무섭다.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4년동안 국정 운영에서 고비마다 부정적으로 작동할 기제이기 때문에 걱정이다. 감동을 주지는 못해도, 국민이 리더를 걱정하는 꼴은 정말 아니다.
 
다들 이렇게 걱정한다. 다양한 사회 갈등과 고도의 외교 정책,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부족을 보완할, 유능하고 통합적인 인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렸다면 불안이 덜할 터인데 그것도 아니다. 외려 특정 인맥과 ‘검찰 식구’로 구축된 친위 세력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으니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염치(廉恥,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까지 없다는 거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