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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유는 절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음'이 아니다.

234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1일)
오늘은 5월 1일 월요일이지만, 노동자의 날이라, 대부분의 직장은 쉬는 날이지만, 학교와 공무원들은 출근을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날 일반 직장이 쉬는 것은 물론 대중교통까지 운행을 중단한다. 버스와 트램을 책임지는 사람들도 모두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자가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는 거다. 그들을 위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노동절에 은방울꽃을 지인이나 동료에게 선물한다. 이 꽃을 프랑스에서는 뮈게(Mugue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신부를 위한 부케로 사용하는 전통이 있다. 꽃의 모습이 신부와 같이 아름답고 우아하다. 이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 집니다"이다. 사실 잘 보면, 우리들의 호의호식은 모두 노동자들 덕분이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그들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만난 문장이다. "비슷한 옷을 걸쳤다고 이쁜이가 갑분이가 되는 게 아니듯, 자유를 외친다고 누구나 자유의 수호신이 되는 건 아니다." 염려스러운 건 이번 미국 순방을 통해서 윤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노선에 한층 확고한 자부심을 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보여준, 자유의 전사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전략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두드러졌다. 미국 의회 연설에선 자유를 46번 외쳤고 불과 19분 남짓한 하버드대 연설에선 자유가 82번이나 등장했다. 대통령실에선 “자유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을 수호하는 ‘가치동맹’으로서의 역할을 재확인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건국의 핵심 가치인 자유가 그가 말한 자유와 같은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미국 의회 연설과 하버드대 연설에서 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고 자신의 지론을 재천명했다. 환호와 기립 박수에 취한 대통령이 혹여 이것을 자신의 통치관에 대한 국제적 인정과 지지라고 과신할까 걱정이라는 말이다. ‘법에 의한 통치’를 ‘검찰에 의한 국가 통제’로 여기는 대통령에게 루소가 말한 법치란 ‘특권층의 권력 횡포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란 경구가 통할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 취향과 추구의 자유, 개개인이 연합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정부의 형태가 어떻든 절대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했다.
 
자유(自由)라는 말은, 서양으로부터 freedom, liberty 등이 소개되자 이들의 번역어로 선택되었다.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로 구성된 자유라는 말은,
  1. ‘속박됨이 없음’의 'freedom'과
  2. ‘억압에서 벗어남’의 'liberty(해방)'의 개념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내가 알고 있는 자유, 즉 “스스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간섭 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뜻의 자주(自主)나 “스스로 세운 규율에 따라 행한다”는 뜻의 자율(自律) 등과 늘 함께한다. 중요한 것은 자율이 “무율(無律)”, 곧 규율 없음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자주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고 하여 남을 부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 또한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는 절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혼동한다. 자율이 '스스로 세운 규율을 자발적으로 지킴'인 것처럼, 자주가 타인도 그 자신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전제 아래 자신의 주인됨을 실현 함인 것처럼, 자유도 어디까지나 타인의 자유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의 자유다. 자기에게만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누구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개인이나 한 집단에만 허용된 자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를 꾸리고 사는 한, "자유는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 예컨대 자유는 그 소산(所産, 어떤 행위나 상황 따위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화된다. 자유의 결과가 일탈과 탈법이고, 그것의 소산이 자기만의 또는 자기와 연관된 이들만의 누림이자 군림이라면 이는 어느 한 자락도 정당화될 수 없다." 김월회 교수의 탁월한 지적이다. 조금 더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하여 전근대시기 한자권에서의 자유는 “자득(自得)”이나 “자적(自適)”, 곧 스스로 충족된 상태의 실현 같은 내면의 수양과 긴밀히 연관되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자유인은 법이라는 한 가지에 복종한다. 노예는 법과 주인이라는 두 가지에 복종한다”와 같은 준칙이 공유되고 있었다. 또한 자유는 진실, 평화, 관용, 공공선 같은 가치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자신이나 일부만을 위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자유민주적’ 제 가치가 기본인 여기가 아니라 무인도에 가서 살면 된다." 현정권이 주장 하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모르겠다.
 
자유는 평등과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잡아 먹힐 자유와 잡아먹을 자유만 있을 뿐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프랑스 혁명에서 주장한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물론 모두가 다 같이 평등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고장 난 저울 같은 사회는 기회부터 불평등하다. 그러면 결과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평등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나는,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들꽃"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 필요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적게 가지며 욕심을 양심으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가난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살자는 것뿐이다. 적게 가졌다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다. 그러려면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에 근육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일은 자동차가 제자리에서 공회전을 하듯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기름만 태우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이가 아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일상을 방해 받을 정도로 지나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자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그 사람의 자유이다. 적어도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모든 사람에게는 친절할 수 있다. 허름한 옷에, 번뜻한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자신이 한 따뜻한 한 마디를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멋진 차에 좋은 옷을 입고, 돈이 많거나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다른 이의 단점만을 들추어내며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다. '너는 너의 노래를 불러라! 나는 나의 노래를 부르리라!'
 
 
길가에 들꽃 하나/박두규
 
길가의 먼지 뒤집어 쓴 들꽃 하나
오가는 사람의 일상 밖으로 피었어도
너는 분명 한 송이 꽃이다.
세속의 슬픔이야 슬픔으로 놓아둔들 어떠랴.
햇살 좋던 세월도, 모진 비바람의 세월도
다 너를 꽃피운 세월이거니
켜켜이 쌓인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놓아둔들 어떠랴.
모두가 가고 없는 길가
오가던 사람들 두고 간 마음 하나 없어도
소리 없이 내려온 달빛 하나로
너는 충분히 눈부시다.
 
 
다음은 <한겨레신문>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의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집중이면서도 곁가지이다. 집중이 과해서 ‘올인’이 되고, 그 올인조차 곁가지 문제에 압도된다. 올인에는 김태효라는 참모가 있고, 곁가지 부각에는 김건희 여사가 있다"는 거다. 내 생각으로 정상이 아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일본 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의 해법을 두고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반응했다)”고 말했다.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려고, 강제동원 문제에서 피해자인 한국 쪽이 모든 책임을 지는 해법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후폭풍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쪽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는 커녕, 위안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독도 문제까지 밀린 빚 재촉하듯이 거론했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로 터져 나왔다.
 
김 차장은 윤의 방미에서도 최대 성과로 자랑하는 확장억제 강화 공약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올인하다가, 또 역풍을 불렀다. 다음날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매우 직접 말하겠다. 우리는 이것(워싱턴 선언 내용)을 ‘사실상의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워싱턴 선언과 확장억제 강화는 논란의 대상만 됐다.
 
동맹 강화라는 윤 정부의 외교노선을 설화들로 빛 바래게 해도, 그는 갈수록 이 정부의 외교 실세가 되어가고 있다. 방미에 앞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외교안보 참모들이 경질됐다. 이 사태를 불렀다는 레이디 가가와 블랙핑크 공연 행사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윤 외교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 부인 행사로 계획된 이 공연 논란으로 윤의 방미는 시작부터 곁가지에 주의를 빼앗겼다. 윤의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인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김은 개인적 차원의 지인을 동반하면서부터,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그를 둘러싼 구설에 언론 보도가 집중됐다.
 
지난해 11월 윤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때 김이 프놈펜의 빈민 집을 방문해 아픈 아이를 껴안은 사진이 오드리 헵번을 흉내 내려고 조명을 설치한 연출이라는 논란이 일었었다. 논란의 근본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금 당장 대통령실 누리집에 가서 김의 사진들을 보면 된다. 대통령 행사보다는 김의 모습만 부각되는 연예인 화보집 같다.
 
올인과 곁가지가 외교의 주축이 되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가 증발했다. 이번 방미의 핵심은 정상회담 기자회견의 첫 질문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답변에서 드러났다. 기자는 바이든에게 “중국의 반도체 제조를 제한하는 것이 한국에 피해를 준다. 중국과의 경쟁 때문에 한국이라는 동맹이 피해를 받고, 그렇게 해서 국내의 정치적 지지를 규합하려고 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바이든은 “미국 제조업을 성장시키고 싶다. 미국이 반도체를 발명했다. 과거에는 반도체를 수입하는 것이 저렴했는데, 우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0%로 떨어졌다. 우리는 다시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자국 산업을 부흥하는 데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문제는 미국이 한국 등의 반도체나 배터리 회사들의 팔목을 비틀어서 미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까지 내놓으라는 것이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공정 기술을 공개하라는 ‘반도체 과학법’, 미국 자동차 회사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이번 방미에서 현안이었지만, 애써 거론을 피했다. 오히려 미국은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제재를 받으면,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그 부족분을 메꾸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대세인 드라마 <외교관>을 보니, 미국 대통령은 “동맹은 별거 없다. 내가 10살 때 친구에게 새끼손가락 걸고 ‘네가 맞으면, 내가 나서줄게’ 약속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은 ‘우리가 맞으면 핵으로 때려달라’는 윤 대통령 부탁에 생색내듯 다시 새끼손가락 걸어주고는, 바이든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로 한국의 투자 1천억달러를 챙겼다. 한국은 그 새끼손가락 약속을 ‘핵공유’라고 올인하다가 머쓱해 하고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서 영어 실력이 소름 끼친다. 그의 ‘아메리칸 파이’ 열창이 세기의 외교 의전이라는 등 기타 등등의 사안을 가지고 윤 정부는 성과를 자찬한다. 방일 때는 오므라이스 접대만 부각됐다. 기타 등등의 외교가 아닐 수 없다. 하긴, 그는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돈 매클레인의 기타를 선물 받기는 했다. 다음은 인터넷 떠도는 삽화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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