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29일)

이젠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다음의 나라는 어디일까요? 원광대 평화연구소의 원익선 교무가 글에서 낸 퀴즈이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 세계 군비지출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 세계 800여곳의 군사기지 보유국, 전쟁을 일으키거나 분쟁에 개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나라, 중남미,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의 내정을 간섭해 온 나라, 세계 기축통화를 보유하며 맘대로 찍어낼 수 있는 나라, 국제형사재판소 비참여국, 정보를 얻기 위해 동맹국 도청도 개의치 않는 나라, 한반도에 세계 최대 군사기지를 가진 나라. " 답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국이다.
미국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한 나라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염치와 절제를 잃은 미국의 폭주로 인류의 미래가 불안하다.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므로 평화의 옹호는 인간의 마음에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자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욕망(실존)은 평화(본질)에 앞선다. 사회 질서를 제어했던 종교의 절대적 세계관이 무너진 근대 이후 서구문명의 한계, 그 자리를 자본과 힘이 차지해 약육강식의 야만성이 판치는 세상을 미국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의 다음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만물을 화육시키는 천지의 도(道)와 덕(德)을 본받으며 평화를 갈구하는 한국은 허구의 가치동맹에서 벗어나 오히려 미국의 정신적 멘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에서 보듯 힘으로 쌓은 제국은 반드시 붕괴된다. 의식은 물론 정치, 경제적으로 다원화되어 가는 지구촌에서 독불장군 미국은 점점 경원시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어야 한다."
이런 불편한 생각으로 뉴스를 덮고, 산책을 나갔다가, 우리마을 차(차) 문화와 티 소믈리에 대학인 <오후:사이>에서 어린 왕자와 여우를 만났다. 언제 읽어도 감동과 지혜를 주는 <<어린왕자>>의 명 문장들을 공유한다. 우리가 불편하고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내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여우와 어린 왕자가 매달린 창문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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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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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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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하기 시작할 거야. 그러나 만일, 내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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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거 구경하러 가.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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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 가 오아시스가 숨어있기 때문이야. 그건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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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 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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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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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난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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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어린 왕자가 ‘길들인다’는 의미를 묻자 여우는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넌 아직 내게 있어 한 아이일 뿐이야. 다른 수 십만 명의 아이들과 같은 아이 말이야. 그러니 난 네가 별로 필요하지 않고, 너 역시 내가 필요치 않아. 나는 너에게는 수 십만의 여우들 중에 그냥 하나이거든.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돼. 그리고 넌 나에게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되지.” 여우의 얘기처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길들여가는 과정이다.
금붕어 길들이기/이안
처음엔 풀 밑으로 숨기 바빴지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며칠 지나니
이제는 살랑살랑 마중을 오네
먹이 몇 번 주었을 뿐인데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 거야
길든다는 말
길들인다는 말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다는 거였어
살랑살랑
길을 들인다는 거였어
길들인다는 것은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두 존재 사이에 둘만의 길이 난 것이다. 이안 시인의 금붕어와 길들어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길들여진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거북해진다. 종속관계라는 부정적 의미가 먼저 연상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에 길들여지는 과정이 아닐까. 시스템에 잘 적응하도록 인간을 길들이는 것이 교육 목적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야생의 동물이 길들여져서 오늘날의 가축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든 인간과 동물 사이든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길이 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길든다'는 말 대신 '길이 난다'는 말은 어떨까? '길든다'는 워낙 거부감이 드는 말이어서 그렇다.
길들인다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니다. 프랑스어로 apprivoiser(아프리브와제)를 번역한 말이다. '길들인다'면, 누가 누구를 자기 방식대로, 자기가 편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나는 길들인다는 말을 우리 식으로 '서로 정들다'로 나는 이해한다. 서로 아쉬워 하며, 서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인정하며, 차이를 참을성 있게 유지하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육안보다 심안, 그러니까 마음의 눈으로 서로 봐주며, 서로 서로가 책임을 지는 관계 맺기"가 '길들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길들여질 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우리는 서로 눈물을 갖게 된다는 것이,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었다. 눈물 없는 인간관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은 것이다. 어린 왕자가 보여주는 별나라 사람들이 눈물없이, 사람들을 안 만나고 자기 세계 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자기는 아쉬운 것이 없다고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은 눈물이 없다. 그러니 행복하지 못하다.
그러면 우리는 세계와 어떤 관계 맺기를 하여야 하나? 그 전에 자신의 인격이 독립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와 관계 하는 인격이 얇고 가벼우면, 무게 감 있는 것들을 쉽게 잘라버리고, 감성과 도덕으로 삶을 분칠해 버리기 때문이다.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문법을 스스로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생산된 문법을 들여와 쓸 수 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개 감성적이고 도덕적이거나 이념적 태도를 갖기 쉽다. 이번 한미 정상화담이 보여주고 있다. 이론으로만 들여오면서 그 이론이 생산될 때의 배경이 된 삶의 구체적 현장성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체적 현장성까지 붙어 있는 두께는 구현하지 못하고, 감각적이며 얇고 가벼워진다.
혁명에도 독립적 혁명이 있고, 종속적 혁명이 있다. 혁명을 스스로 생산한 이념으로 하면 독립적이고,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혁명이면서도 이미 생산되어 있는 이념을 구현하는 형태로 하면 종속적이다. 독립적이면 두텁지만, 종속적이면 가볍고 얇다. 가볍고 얇아지면 이념과 도덕을 지향하는 조급함을 넘어설 수 없다.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문법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적이어야 한다. 감성적이고 도덕적인 편협함에 빠진 사람들은 공자를 정의와 개인적인 덕성의 함양만을 논한다고 해석한다. 공자는 덕성의 함양 자체가 자신과 조직의 성공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위에서 정의로우면 아래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믿어 주면 아래서 진정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하다면, 사방에서 자식들까지 업고 몰려올텐데." (<<논어>>, "자로'편)
공자가 강조하는 하는 정의와 신뢰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의미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자식들까지 몰려오는" 현실적인 이익이 뒤따르는다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 철학은 이렇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설득하거나 기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오게 한다." 노자도 마찬가지이다. "무위하면 되지 않는 법이 없다(無爲而無不爲)". 이 문장을 단지 이렇게 해석하면 부족하다. 세상사에서 어떤 욕망도 품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을 '무위'로 보면서 개인의 안빈낙도와 연결시킨다.
노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위'보다도 '되지 않는 일'이 없는 '무불위(無不爲)의 결과였다고 본다. '무위'라는 지침은 '무불위'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도덕경>> 제22장을 보면 안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자를 구부리고, 덜어내는, 헐리는, 적은" 것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사실 노자는 온전하고 꽉 채워지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도덕경>> 제7장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만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이 앞서게 된다. 자신을 소홀히 하지만, 오히려 보존된다."고 했다. 노자는 앞서고 보존되기 위해서, 내세우지 않고, 소홀히 할 뿐이다. 노자의 시선은 앞서고 보존되는 결과에 가 있지, 내세우지 않고, 소홀히 하는 소극적인 과정에만 멈춰 있지는 않다. 얇은 지성은 '무불위'로 대표되는 결과를 읽는 대신, '무위'만 읽는다. 공자와 노자가 활약하던 시기처럼, 지금 우리는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새 세상이 열리는 과정에 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완성을 이루려는 사람이 잡다한 현실을 따돌리기만 하면 될 것으로 믿다 가는 얇고 창백하며 정체 모를 환각에 싸일 뿐이다. 자신의 힘을 튼튼하게 하여야 한다. 얇고 가벼운 것은 감각적이어서 빨리 오고, 무거운 것은 느리게 온다. 느리게 오는 것이 진짜이다. 현 대통령에게서 배운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이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WP) 기자와의 대담 내용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안전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한 국가의 최고 '리더'의 정책 수행에 '연습'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가 던진 '말 한마디'와 제시한 정책의 방향에 전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생 원인 중에 하나로 국제정세를 잘못 읽고, 대처를 적절하게 하지 못한 그 국가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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