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21일)

오늘 아침 화두는 '즐거운 때를 놓치지 않는 거다." 어제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약간 오버했다. 그리고 많이 베풀었다.
난 상희씨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늘 그랬듯이 아름답고 기품 있는 미소로 환하게 웃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기품을 닮고 싶기 때문이다. 어제 읽은 노자 <<도덕경>>에서 "수유왈강(水柔曰强)"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부드러움(柔)을 지키며 사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거다. 부드러운 물이 강하고, 센 바위를 이기듯이, 부드러운 풀이 강한 바람에 견디듯이, 부드러움은 위대한 강자의 정신이라는 거다. 부드러움은 이 자연계가 운행하는 모습이다(弱者道之用, 약자도지용), 또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어 있는 것은 뻣뻣하다.
비슷한 말이 제43장에도 나온다.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는 "지유치빙지견(至柔馳騁至堅)이란 말이다.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지극히 견고한 것을 뚫고 들어간다'는 거다. "치빙(馳騁)"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내달리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뚫고 들어간다는 의미로 보기도 하고,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은 말을 제어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부린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지유(至柔)가 지견(至堅)을 제어(制御)한다고 읽을 수 있다. 마치 여자가 남자를 제어하고, 물이 불을 제어하는 것과 같다. '제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제어하다'라는 말 중에는 '감정, 충동, 생각 따위를 막거나 누르는' 것으로 쓰인다.
그리고 제36장에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견고한 것을 이긴다)"이란 말이 있다. "수유(守柔, 부드러움을 지키기)"는 이유를 말하는 거다. 강한 다이아몬드를 뚫고 지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한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둘 다 부서지고 만다. 물과 같은 가장 부드러운 물질이라야 다이아몬드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 나는 이것으로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無有入無間)"는 거다. 중국 한나라의 명장 이광이 어느 날 산속을 가다가 호랑이를 발견하고 화살을 쏘아 정통으로 맞혔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바위였다. 그런데 바위라는 것을 알고 다시 쏘니 화살이 계속 튕겨져 나왔다. 마음속에 바위가 없는 상태, 즉 무(無)의 상태에서는 바위를 뚫을 수 있었지만 바위를 채운 상태, 즉 유(有)의 상태에서는 그것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를 뚫을 수 있는 것은 '무'밖에 없다. 왕필은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에 대해 "기(氣)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없고, 물은 스치지 못하는 곳이 없다(기무소불입, 수무소불경(氣無所不入, 水無所不經)"고 주를 달았다.
부드러운 사람은, 오늘의 화두인,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는다. 인생에서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아 가슴 아픈 날도 분명히 있다. 누군가는 기쁨과 슬픔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인생이라는 천을 직조한다고 표현했다. 중요한 건 기쁨이나 슬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기쁨 속에서도 신중함을, 슬픔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가미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슬픔만으로 짜인 어둡고 우울한 색감이나 기쁨만으로 짜인 가벼운 색감 대신 깊이가 느껴지는 멋진 색감의 천이 짜일 것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만 일어난다는 뜻이다. 한바탕 시원하게 내린 봄비도, 그 바람에 일찍 져버린 벚꽃도 다 제때에 따른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진처럼 말이다. 시인 김억은 100년 전 <사랑의 때>라는 시에서 “어제는 자취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내일도 그저 왔다가 그저 갈 것입니다, 그러고, 다른 날도 그 모양으로 가겠지요, 그러면, 내 사람아, 오늘만을 생각할까요.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때/김억
첫째.
어제는 자취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내일도 그저 왔다가 그저 갈 것입니다,
그러고, 다른 날도 그 모양으로 가겠지요,
그러면, 내 사람아, 오늘만을 생각할까요.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고운 웃음도 잠깐 동안의 꽃이지요.
때는 한동안 기쁨의 꽃을 피웠다가는
두르는 동안에 그 꽃을 가지고 갑니다,
곱고도 서러운 때의 힘을 어찌합니까,
그러면, 내 사람아, 오늘만을 생각할까요.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고운 웃음도 잠깐 동안의 꽃이지요.
둘째.
물은 밤낮으로 흘러내리고
산은 각각(刻刻)으로 무너집니다,
세상의 곱다는 온갖 것들은
나날이 달라지며 스러집니다.
그러면, 내 사람아, 우리는
사랑과 함께 춤을 출까요.
아름다운 이 세상의 사랑에
몹쓸 때가 설움의 종자를 뿌립니다,
이 종자의 움을 따서 노래 부르면
도리어 사랑을 모르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그러면, 내 사람아, 우리는
사랑도 그만두고 말까요.
세상에 봄 꽃과 새 순들이 가득하다. 꽃과 순은 그저 온도의 변화를 정직하게 따를 뿐이다. 쭉쭉 오르는 기온에 시간을 다퉈 숨 가쁘게 피오른다. 순(旬)이란 나무의 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 나온 연한 싹이다. 그러니까 '싹'이다. 순을 따주는 것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필요하다. 요즈음 나의 즐거움은 봄 순을 먹는 일이다. 그러니까 봄철 나물들을 주로 먹는다. 나물은 부드러운 새순이 나는 시기가 제철인데 지금 같은 봄에는 파릇파릇한 나물을 먹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난 고집스럽게 제철 음식을 먹으려 한다. 봄은 '보다'에서 왔다고 하지만, 영어로는 스프링(spring)이라고 한다. 그래 봄의 새순을 먹으면, 겨울 내내 눌려 있던 내 심장의 '스프링'이 다시 높이 튀어 올라, 내 심장도 따뜻한 사랑이 장착된다.
제일 좋아하는 봄철 순이 두릅이다. 이걸 한문으로 하면 '목두채'라 한다. '나무의 머리 채소'라는 뜻이다. 그리고 가시가 있는 엄나무순, 향이 진한 가죽나무순, 오가피순 그리고 옻 순을 어른들은 봄의 5대 순이라 말한다. 이 어린 순들을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은 든다. 그러나 순을 따주는 것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필요하다. 두릅이나 오가피 순은 향이 있지만, 옻 순은 식감이 좋고 고급지다. 그래 사람들은 옻 순을 봄나물의 제왕이라 한다.
봄 나물과 함께 한 그릇의 밥은 우리가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힘이 합력하여 지어낸 것. 해와 달과 별, 바람, 공기, 숱한 미생물,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 그리고 농부의 피땀 어린 수고도 덧 보태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해월 최시형은 “밥 한 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안다”고 했다.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내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동사적 삶이란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매달려 살기보다 직접 불확실성을 껴안고 덤비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삶의 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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