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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굽듯 한다.

233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20일)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거리의 나무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채워지며, 수채화가 유화가 될 것이다. 숲의 아래 쪽은 진녹색, 중간은 초록, 위 쪽은 아직 연두로 짙고 얕은 '녹색의 향연'은 좀 더 계속될 것이다. 봄이 꼭대기를 쫓아가며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댈 것이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실 것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절기상 (穀雨)였는데,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곡우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봄의 마지막 절기에 해당한다. 곡우의 ‘곡(穀)’은 곡식을 뜻하며 ‘우(雨)’는 비를 말한다. 두 단어가 합쳐져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상들은 곡우를 한 해 농사를 책임질 비가 내리는 중요한 시기로 여겼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다양한 속담들이 전해 지고 있다. 곡우 때는 농사 뿐 아니라 조기잡이도 활발해진다. 이 시기에 잡은 조기는 조기 중 으뜸으로 '곡우사리'라고 부른다. 농사를 중시했던 과거에는 벼를 파종하는 곡우 시기에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등 중요한 절기였다.
 
곡우 무렵 내리는 비는 생명을 움트게 한다. 잠자던 곡물은 깨어나고, 나무는 몸에 물을 가득 채워 싹을 틔운다. 농부는 볍씨를 물에 담그고 못자리를 준비한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이다. 봄비 그친 아침, 앞산에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돌자 시인은 느른하면서도 불안해진다. 살아생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어머니가 “천산 누옥”에서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천상의 “묵정밭(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을 일구실” 것 같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다음은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다. "'어허, 저기', 앞산에 무지개 뜨자 불안은 기쁨으로 바뀐다.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이 무지개라는 상상력은 참으로 놀랍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요히 안에 담고 있던 슬픔이 한결 가벼워진다. 천상의 어머니와 지상의 아들은 나비처럼 '훨훨 땅바닥에 날아 내'” 무지개로 연결돼 있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사라진다.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눈물이 번진다. 아직도 보내지 못한 어머니는 시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내 어머니도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고 계신다.
 
 
곡우/정우영
 
봄비 그치자 아침 이내
포근포근 산자락을 감아돈다.
느른하고 불안하다.
이런 날이면 천산 누옥(漏屋)의 우리 어머니,
육탈의 가벼운 몸 또 근질근질하실 게다.
천명(天命)도 아랑곳없이 떨쳐 일어나
요정처럼 날래게 묵정밭을 일구실 게다.
어허, 저기.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母情)이
무지개 되어 훨훨 땅바닥에 날아내린다.
눈이 부셔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너무 환해서 비릿한 눈물 번진다.
 
 
노자 도덕경 제60장을 읽는다. '무위지치(無爲之治, 하는 것 없이 다스려짐)'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굽듯 한다. 그러니까 상처 내지 않는 정치를 하는 거다. 이를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라는 유명한 말로 남겼다. 이 말은 중국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거다. 이 말은 실제적 감각을 동반하기 때문에 많이 회자된다.
 
큰 나라를 통치함에 작은 생선 요리하듯 하라는 것이다. 작은 생선을 구울 때는 석쇠에 올려놓은 후 노릇노릇 익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자꾸 이러 저리 뒤집다 보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 뼈밖에 남지 않는다. 아니면 자꾸 뒤집거나 불을 너무 세게 하면 뭉그러진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젓가락을 사용해서 뒤집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무위(無爲)다. 도가적 정치 사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비자도 이 말을 다음과 해석했다. "이치적으로 생각해볼 때, 대중을 동원하여 일을 벌이면서 사업 방침을 계속 바꾸면 성공할 확률이 적고, 큰 보물 스러운 기물을 가지고 있는데 자주 옮겨 다니면, 그 기물은 파손이 심하게 될 것이고,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데, 자주 뒤척거리면 그 윤택이 사라진다.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 그래서 '치대국약패소선'이라고 말한 것이다." 왕필은 "생선을 함부로 뒤집지 않듯이 나라를 함부로 뒤흔들지 않는 것이다. 조급하면 해가 많고, 고요하면 온전하여지고 참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대국일수록 그 군주는 더욱 고요하여 무위를 실천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대중의 마음을 널리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 말했다.
 
이 장은 상대적으로 짧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 :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한다.
以道莅天下(이도리천하) 其鬼不神(기귀불신): 이런 원리, 즉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 귀신은 더는 신령이 없을 것이라는 거다. 여기서 "리(莅)"는 '다다를 리'자이지만, '임한다(臨)'로 읽을 수 있다. 귀신이란 본시 천지자연에서 말하는 생명력같은 것으로, 의인화된 그런 '고스트(ghost)'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항상 "귀신"에 대한 의인화된 관념을 갖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또 인생이 의미가 없다. 이 장에서 노자는 귀신의 존재를 철저히 합리적인 작용의 문제로 환속시킨다. 귀신의 재앙은 철저히 인위(人爲)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위가 합당한 바를 얻으면 재앙이 생겨날 까닭이 없다는 거다.
非其鬼不神(비기귀불신) 其神不傷人(기신불상인): 귀신이 힘이 없기 때문에, 신령(힘)이 있어도 사람을 해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보다는 그 귀신이 신령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신령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로 풀이하는 게 더 이해가 잘 된다.
非其神不傷人(비기신불상인) 聖人亦不傷人(성인역불상인): 그 귀신의 신령이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 신령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인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夫兩不相傷(부양불상상) 故德交歸焉(고덕교귀언): 양쪽 모두 서로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 그 덕이 모두 지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도올의 해석은 좀 다르다. 여기서 "양"은 귀신과 성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귀신과 성인이 모두 백성을 해하지 아니하므로, 덕이 백성 서로들 사이에서 쌓여가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니까 "교귀(交歸)"를 백성 서로들 사이에서 덕이 교감되면서 축적되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거다.
 
도올의 번역을 공유한다. 좀 다르지만, 나는 더 잘 이해가 된다. "큰 날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 같이 하라! 도로써 하늘 아래에 임하면, 그 귀신들도 영력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실은 구 귀신이 영력을 아니 부린다 함이 아니요, 그 귀신의 영력이 사람을 해치지 아니한다 함일리라. 성인 또한 사람을 해치지 아니한다. 대저 귀신과 성인이 모두 백성을 해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덕이 백성 서로들 사이에서 쌓여가는 것이다."
 
노자가 살던 시대에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는 귀신과 권력자였다. 인간의 질병, 자연재해, 보이지 않는 재앙은 모두 귀신이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귀신과 함께 권력자도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고, 죽음의 전쟁터에 내보내고, 힘든 부역을 통해 괴롭혔다. 사람들은 이 두 존재가 없다면 그래도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귀신과 권력자는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였지만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대항하면 더욱 강하게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음식을 올리고, 사람까지 제물로 바쳐 귀신을 위로했다. 통치자에게는 몸과 재산을 바쳐 그들의 권력에 복종했다. 비록 겉으로는 존중하고 따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없어지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천하를 얻으려면 지도자는 백성을 괴롭히면 실패할 것이다. 백성이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지도자의 임무이다. 그래 노자는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이 백성을 대하라고 했던 것이다.
 
작은 생선은 늘 핍박과 강요에 고통받는 백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힘도 없고 저항의 방법도 모르는 민초(民草)이다. 이들을 자꾸 건드리고 간섭하면 백성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자주 건드리면 살이 부서져 가시밖에 남지 않듯이, 민초를 자꾸 괴롭히고 전쟁에 동원하면 그들의 삶은 무너진다. 백성이 힘든데 어찌 그 나라의 지조자를 믿고 따르겠는가?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등을 돌리면 결국 정권은 무너지고 지도자는 자리를 잃게 된다.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은 '무위'하므로 귀신의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귀신이 아무리 신령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무위'를 당할 재간은 없다. 뭔가 '유위'한 것이 있어야 사람을 돕든 해치든 할 텐데, '무위'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그 어떤 힘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귀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당연히 성인의 힘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위지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귀신도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못하므로 '무위지치'가 실현되는 곳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생선을 요리하듯 백성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온전한 삶을 응원해야 한다. 내 고집과 편견으로 백성들을 대해서는 안 된다. 내 욕망의 수단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백성은 비록 나약하고 초라하지만 모두 하늘이고 우주이다. 그 작은 우주를 인정하고 대하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59장의 "색(嗇)"의 의미도 들어 있다. 함부로 일을 벌이고, 개발 사업을 하여 민중의 삶을 흔들어 놓고,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끊임없이 삶의 환경을 바꾸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 "색(嗇)"적인 축소, 아낌의 맥락도 포함하고 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