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18일)

왜 봄꽃은 작고, 무리를 지고, 잎 보다 먼저 피는가? 꽃이 피려면 오랜 기간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만 한다. 밤이 낮보다 길어야 하고, 추위가 물러가야 한다. 겨울이 춥다고, 어둠이 싫다고 방안에 들여놓은 꽃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봄꽃은 작고 연약하며 향기가 강하고 무리 지어 피지만 잎이 없다. 이른 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꽃 망우리를 먼저 터트려야 하고, 잎이 나중에 나와야 한하는 거다. 하나를 얻으려고 하나를 버린 것이다. 봄꽃은 추위와 어둠의 결핍으로 작지만 강한 향기와 무리로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들은 피었다가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난다. 그런데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이 제 각각이다.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다. 꽃은 피었으면 진다. 순리이다. 낙화가 없으면 녹음도 없고, 녹음이 없으면 열매도, 씨도, 그리하여 그 이듬해의 꽃도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현재를 붙잡으려 하며 추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때가 되면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꽃들은 저 마나 피어나고 지는 모습이 다르다. 우리 인간들도 저마다 살다 가는 길이 제 각 각인 것처럼 말이다. 동백은 한 송이 개별 자로서 피었다가, 주접스런 꼴 보이지 많고 절정의 순간에 뚝 떨어지며 진다. 매화꽃, 벚꽃, 복사꽃, 배꽃은 풍장을 한다. 꽃잎 한 개 한 개가 바람에 흩날리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었다가 노을이 스러지듯 살짝 종적을 감춘다. 나무가 숨기고 있던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 같다.
그리고 길게 이야기 하고 싶은 꽃이 목련이다.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목이 부러질 듯이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리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뚝 떨어지지 않고 잎 조각들로 느리게 사라진다.
어제는 선배님 별장에 가 와인 강의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참 식사를 하다가, 꽃 이야기가 나오자 박교수님이 조지훈의 ,낙화>를 외우셨다. "어진이는 만월을 경계하고/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모순>)고 한용운 시인이 말했었다.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다. 그가 조지훈이다. 그의 <낙화>는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다.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가 보인다. 나는 지는 꽃의 그림자가 있음을 이 시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밤새 진 꽃들이 쌓일 것이다.
낙화(落花)/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례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소에 속물적이거나 무례한 질문을 막 던지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책을 동네 플리마켓에서 1000원에 샀다. 저자는 정문정이었고, 책 제목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가나)이다. 부제도 재밌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이다.
나 자신도 무례한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상처받은 적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감정 표현의 적절한 농도를 몰라 관계에서 힘들어 했다. 신함 경우는 속마음을 숨기고, 혼자 곱씹다가 자신의 문제로 수렴하는 코스를 밟는다. '내가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을 거야'.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닐까?'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만 남는다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 사람마다 관계마다 심리적 거리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고, 갑자기 선을 훅 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감정의 동요 없이 '금 밝으셨어요' 하고 알려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단호하면서도 센스 있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반복하게 된다.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타인에게 제지 당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조용히 그런 사람들의 음소거 버튼을 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은 자기 표현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치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한다. 어떻게?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기죽지 말고, 웃으면서 우아하게 경고하는 거다. 오늘은 '자기 표현의 근육을 키우는 법'을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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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자제는 긍정하고, 개소리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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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또는 '곱다'라는 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길에서 만나는 예쁜 사람을 실제로 직접 만나 이야기 해보면, 다 예쁜 사람이 아니다. 예쁜 얼굴에 맞지 않는 못생긴 말 솜씨,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생각, 예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예쁜 것에는 예쁜 것이 어울려야 한다. 그걸 조화라고 한다. 조화를 이루어야 진짜 예쁜 것이다.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다. 자연의 이치이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더 추해진다. 너무 인공적으로 몸과 얼굴을 가꾸려 할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더 추하다. 외모를 꾸미기 전에 먼저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묘한 빛이 나고 묘한 향이 난다. 그 빛과 향은 그 사람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은 너무 정중하지도 않고, 너무 무례하지도 않다. 개성이 엿보인다. 그런 사람이 진짜 예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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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힘이 생기면 무례한 사람은 더 무례해지고,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사람은 더욱 강압적이고 통제적이게 된다. 그래서 힘이 생길 때마다 힘을 절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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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자꾸 넘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나의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 사적인 공간) 또는 바디 존(body zone, 개체 공간)을 지키면서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대화를 종료한다. 퍼스널 스페이스란 개인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 공간을 뜻한다. 나라마다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은 1,01m, 미국은 89cm정도라고 한다. 에드워드 홀(문화인류학자)에 의하면, 퍼스널 스페이스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의 거리를 포함하는 거라 했다. 낯선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씨 정보를 화제에 올릴 뿐이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가까이 안장 깊이 있는 주제까지 이야기 할 수 있다. 마음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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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문이 어도 누가, 어떤 뉘앙스로 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적절한 거리를 두지 않고, 훅 하고 다가와 질문 세례를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꾸법으로 응대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질문자의 의도를 곧바로 알 수는 있지만 대답하기 불쾌한 경우에는 딴청을 부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질문자의 이도를 모르더라도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 논쟁이 예상되는 질문에는 그저 들어 주기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그쪽으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하고 자신의 패를 내보이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대화를 빨리 종료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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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행동은 부적절했어요.", "불편하네요"처럼, 경고하여야 한다.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알려줘야 한다.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묵과한다면, 무례한 사람이 줄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예약을 했지만 취소한다는 얘기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노쇼(no show)'하는 사람에게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빼앗고 다른 사람의 기회까지 뺏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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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그건 익은 후의 말이다. 우리는 익기도 전에 고개부터 숙이지 않는가? 결핍은 그 자체로는 연약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무엇이라고 믿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위대해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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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표현의 근육을 키우려면 단호하고 우아하게 거절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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