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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금 우리가 할 일이 구세주를 기다리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232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10일)
대청호 500리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대전시 동구 마산동에서 고려 말에 건립된 미륵원의 터를 만난다. 이곳은 서울에서 영남과 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었던 고려와 조선시대의 원(院; 역과 역 사이에 설치한 일종의 여관)이었다고 한다. 고려 말 황윤보가 건립하고 조선시대에 후손들이 비영리로 운영했는데 길손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무료 제공하고, 행려자를 위한 구호활동을 벌이며 오늘날의 사회복지기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회덕(懷德) 황씨들이다. 그러니까 대전이 있기 전에는 회덕이 이 지역의 중심이었다. 난 이 마을 이름을 좋아한다. 회자가 '품을 회'자이고, 덕은 '덕 자'이다. 그러니 회덕은 '덕을 품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난 여기서 우리 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모습을 읽는다. 이 말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기득권과 '갑'의 놀부 심보가 암처럼 퍼져 가고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윗사람이 우선 자기 것을 희생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문화가 아쉽다. 자신이 기득권이 된 것은 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많은 약자의 희생으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힘 있을 때, 약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기회가 살면서 쉽게 그리고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강자에게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을'과 약자에게는 내 것 일부를 양보해 함께 풍요로워지는 '너그러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생활문화 운동이 시급하다. 미륵원지 앞에서 이런 생각에 잠겼다.
 
'미륵(彌勒)'은 인도어 마이트레야(Maitreya)에서 유래했다. 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된 말인데, 미트라는 인도의 힌두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빛의 신(태양신)’으로 섬기던 신의 이름이다. 태양은 매일 지고 매일 떠오른다. 밤이 되면 어둠에 힘을 잃지만 아침이 되면 되살아나는 것이다. 태양의 이러한 속성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과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구원할 ‘구세주’라는 상징으로 연결된다.
 
대승불교에서 '미륵(彌勒)'은 석가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고 약속 받은 보살이고, 미륵 신앙은 미래불(未來佛)로서의 미륵을 믿어 현세에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믿음이다. 이런 미륵 세상을 구현하려는, 이 미륵원의 부속건물 남루(南樓)가 1980년 이 터에 복원되었다. 몇 년 전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올 봄에 가보니 빈집이었다. 그래도 혼자 봄이 찾아 와 "봄 향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흙을 삐 집고/곱디 곱고 연하디 연한 몸으로/오직 삶의 염원으로 고개를 들어/새로운 세계에 눈부시듯 경이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봄 향기/이재기
 
오랜 시간 꿈꿔온 긴 기다림에서
버릴 수 없었던 삶의 욕구가
제철을 만나 무게 실린 흙을 삐 집고
곱디 곱고 연하디 연한 몸으로
오직 삶의 염원으로 고개를 들어
새로운 세계에 눈부시듯 경이로운 삶이 시작됐다
 
따스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삶의 분주한 희망의 합창
그렇게 다가오는 봄의 제전에서
향긋한 내음과 연두빛으로 피어나는 새싹이 있다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봄빛으로 자리잡고
영원히 들려올 멜로디로 감싸 안는다
 
정녕 이것이 나의 현실인지
돌아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안고
설레이듯 흔들리는 마음 어디에 둬야 하나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최후의 봄 일거라는 생각에
이 시간 이렇게 소중함에 몸서리 친다
 
 
우리 한국인들은 천년 이상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대표적 메시아 신앙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00여년 남짓이지만 메시아 신앙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바로 '미륵(彌勒)'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한국에 '미륵'의 흔적은 차고도 넘친다. '미륵'의 이름을 딴 절에서부터 이름난 절의 '미륵전'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고, 이름 모를 산기슭과 길가에 늘어선 돌부처 또한 미륵이다. 바닷가에 흔한 마을 이름인 매향리(埋香里)는 향을 묻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갯벌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은 미륵신앙의 중요한 의식으로 미륵이 오실 먼 훗날 묻었던 향나무를 파내어 향을 사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몇몇 방송에서 매향리를 매화향 가득한 동네로 소개하던데 적어도 바닷가 매향리들은 오랜 옛날 향을 묻었던 곳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의 글에서 알게 된 거다.
 
그에 의하면, "미륵신앙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불교의 전통으로 미륵부처가 이 세상으로 와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다. 삼국의 대립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미륵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미륵은 메시아, 즉 구세주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빨리 전파된 이유도, 최근 방영된 다큐 영화 <나는 신이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구세주를 자처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1500년 동안이나 구세주를 기다려 온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미륵신앙은 신앙의 영역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미륵의 구원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난의 세상을 바꿔줄 이를 원했다.
 
미륵신앙이 뿌리를 내린 후로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면 자신이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조선 숙종 때의 여환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에 미륵은 곧 세상의 주인, 왕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욕망의 흔적은 현대에 와서도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싹 다 갈아엎기"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 신화의 뿌리가 어쩌면 미를 신앙인지 모른다. 예컨대,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거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자신들의 욕망을 모두 투사하고 그가 당선된 뒤에도 현실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으면 “그놈이 그놈”이라며 이내 그 일을 해 줄 다른 이를 찾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조시대의 왕도 그런 권력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주변에는 '미륵'을 찾고 있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싹 다 갈아엎기’의 원조이자 그 결과로 한국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실은 지금이 갯벌에 향나무를 묻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지금은 1500년 전이 아니다. 민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던 시대와 지금을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이끌고 나가는 주체는 자신이며 사회와 국가는 그러한 개인들의 의지와 합의로 구성되고 운영되며 또 그래야 한다.
 
한민 문화심리학자의 말을 작접 들어 본다. "미륵은 오지 않는다. 아니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점은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것이 누구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알면 또 어떡할 것인가. 종말이 다가온다며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천국에 예금 의탁하듯이 갖다 바칠 것인가. 자신이 구세주라고 믿는 이에게 몸도 마음도 의사결정도 의탁한 채로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구세주의 일등 공신으로서 당신이 바꿀 세상의 이권을 내게 달라 청탁이라도 할 것인가.
 
미륵신앙은 옛날부터 현실의 간난고초를 잊게 해 주었던 우리의 믿음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일이 구세주를 기다리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렵고 혼란스럽지 않은 때가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혼란에는 내가 기다리는 미륵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오래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내 생각으로는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 정치 수준이 낮은 거라고 본다. 지난 주말을 인터넷을 달궜던, '대통령의 부산 회식 사진-비공개 만찬 후 참석자들이 도열해 윤 대통령을 환송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말이다.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다. 권력의 창출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미륵, 영웅주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너무나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이 전에 전혀 없는 어떤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미륵신앙', 즉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정치 포퓰리즘이다. 대니얼 부어스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이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핵심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모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뻔뻔하게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이끌지도 못하면서 떠나지도 않는다(Lead or Leave).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양 떼가 양 한 마리가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양 한 마리가 양 떼를 이끄는 꼴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관선 이사가 파견 나와 있는 주인 없는 대학 꼴이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주류 의식을 자각하고 있는 주체가 확실하게 없다. 비전도, 전략도, 리더십도 없이 '처 삼촌 묘 벌초하듯' 시늉만 내는 비주류의식에 모두가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지금 꿈도 잃고, 힘도 잃고, 길도 잃었다.
 
현 한국 정치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되고 국회와 사법부의 힘은 커진 '과두'의 상황에서 누구도 결정할 힘은 갖지 못한 채, 상대 정당에 무조건 반대할 정도의 힘만 갖고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권 정치) 늪이다. 우리 정치는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처럼 결정할 힘을 잃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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