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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해마다 피는 꽃은 같지만,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르다.

231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4일)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더니 내가 찍은 사진에 만족할 때가 많다. 사진 찍기는 인물 사진과 풍경 및 일상 사진으로 나뉜다. 나는 인물 사진은 잘 안 찍는다. 초상권이 있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늘 풍경이나 일상 사진을 찍는다. 특히 꽃 사진을 많이 찍는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늙은 거라 한다. 마음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으면 꽃을 봐도 건성이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이다. 꽃만 보면 사진을 찍는다. 딸도 그런다. "꽃 사진 찍기 시작하면 나이를 먹은 거래." 나도 나이를 먹은 거다. 꽃이 좋다. 길의 모든 꽃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덜 복잡하기 때문일 거다. 난 몇 해전부터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다.
 
조용헌의 글이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지만,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르구나.' 이 구절에서 '사람은 다르구나'가 의미가 깊다. 우선 사람이 늙어 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몸의 컨디션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인간은 서글퍼진다. 그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꽃은 왜 작년이나 올해나 그 빛깔과 이파리가 똑같다는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어 있다. 꽃의 아름다움과 육신의 늙어감이 대비된다. 이 대비에서 인간은 종교적 순응의 마음을 터득하는 것 같다. 순응해야지 어쩌겠는가. 춘하추동의 순환과 생로병사의 변화를 어떻게 거역한단 말인가. 운명에 거역하면 질질 끌려가지만 순응하면 업혀간다는 말도 있다. 기왕 갈 바에는 질질 끌려가는 것보다는 업혀서 가는 게 좋다. 순응과 받아들임. 이것이 나이 들어 가는 미덕이고 사람이 익어간다는 징표라고 생각된다. 나는 주름살이 늘어 가는데 꽃 너는 왜 그렇게 해마다 싱싱한 것이냐 하는 물음도 결국 인간의 욕심이다. 대자연의 섭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인간의 주관적 관점으로 철리(哲理)를 비틀어 보는 셈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이를 도식화 하면, "인-지-천-도-자연"이다. <<도덕경>> 25편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법을 '본받다'로 해석한다. 그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법(法) 자를 파지하면, 물(水)이 자연스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하 착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도 타인과 다투지도 않는다. 또한 물은 겸허(謙虛)가 몸에 배어 있어 언제나 낮은 곳으로 스스로 저절로 아무 소리도내지 않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법은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이다.
 
몇 년 간 사진에 관심을 두다 보니 터득한 거다. 풍경이나 일상 사진을 찍으려면 다음 다섯 가지가 기본이라 했다.
(1) 깔끔하고 단순 화면을 구성하라. 더하지 말고 빼기를 하라는 거다. 이 테크닉은 나 스스로 이미 터득한 거다.
(2) 시간대에 따른 색온도를 활용한다. 광원이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대를 달리해서 촬영해 보면 화면의 분위기를 다르게 할 수 있다 했다. 이 기술은 실제로 자주 시도해 볼 생각이다.
(3) 옅은 구름이 낀 날 촬영하면 훨씬 더 풍부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름이 낀 날 나가, 실제로 사진 속에 음영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4) 화면 중 포인트를 준다. 화면 안에서 주된 포인트를 주는 사물을 발견해 중심이 되게 구성해보라는 거다.
(5)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화면에서 움직이는 사물의 동선을 상상해 보라 했다.
 
오늘 아침 사진은 박태기 꽃이다. 밥알 모양과 비슷한 꽃이 피기 때문에 박태기라 하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 나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 하여 구슬꽃나무라 하고 그리스말로는 Cercis, 즉 칼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린다 해서 칼집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매어 죽은 나무라고 하여 유다 나무라고도 한다.
 
세상에 봄꽃이 가득하다. 꽃은 그저 온도의 변화를 정직하게 따를 뿐읻다. 쭉쭉 오르는 기온에 시간을 다퉈 숨 가쁘게 피었다 진다. 계절은 참으로 좋은데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다. 소망과 현실이 어긋나 지칠 때가 많다. 미세먼지, 황사 그리고 시국.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사는 것에, 살아지는 것에 흠씬 지치는 이 봄 날에 꽃침이나 맞아보자.
 
 
봄꽃/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문요한의 <<오티움>>을 읽을 시간이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을 사랑하는 나 또한 바뀌게 된다. '오티움'을 통한 기쁨은 삶의 동심원을 그리듯 다른 영역으로 퍼져 나간다. 이전보다 삶의 질서와 균형이 잡히고 무엇보다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생기는 좀처럼 감추어지지 않고 드러난다." 이를 위해 오늘 아침은 두 가지를 이야기 한다.
 
하나는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혼자라서 외로웠던 게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다. 그래 우리는 아무나 만나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술로 마음을 달래는 게 전부였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에서는 상호 관계형성의 능력을 정서적 성숙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혼자 있는 능력'은 별로 강조되지 못했다. 그러나 도날드 위니콧은 1958년에 <<혼자 있는 능력>>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홀로 있음이 인간 발달에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 했다. 애착 이론에 따라 애착이 중요하지만, 애착의 목적은 결국 건강한 독립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애착 이론(attachement) theory)은 장기적 인간 관계의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핵심 주장은 영아가 정상적인 감정, 사회적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주 보호자와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애착은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혼자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정적 애착 관계를 맺은 아이들은 애착 대상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렇기에 애착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달려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신뢰가 있기에 마음 편히 혼자 놀 수 있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안정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어야 아이는 부모의 욕구가 아니라, 자기 내면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진짜 자아'를 발달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아닌 상대에게 집중한다. 심한 경우에는 상대의 관심을 끌려고 '거짓 자아'를 형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 있는 능력'이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그러나 관계는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물선 그래프의 모양이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노력을 하면 관계는 좋아지지만 어느 이상으로 애를 쓰면 오히려 관계는 힘들어진다. 기대 값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신경 쓰고 노력했기에 그에 맞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대가 노력에 비례하여 올라간다는 거다. 일과 여가의 균형처럼 행복도 균형이 필요하다. 관계 안에서 행복 하려면 관계 밖에서 행복해야 한다.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처럼,관계에서 해복하려면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는 '나, 너, 우리'의 세 세계가 건강하게 기능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말한다. 이는 건강한 자기 세계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고 자기 세계를 발달시키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하는 거다. 그것이 바로 '오티움'이다. 그 '오티움'으로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집중하고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오티움'의 힘이다.
 
두 번째로는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거다.' 인간 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균형이 필요하다.
  • 공유관계(communial relationship): 서로의 친밀함과 관심에 기초한 관계로 기본적으로 동질감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진다.
  • 교환 관계(exchange relationship):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기초한 관계로 기본적으로 손익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관계는 계속 겉돌거나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관계에서는 에너지를 충전 받는 게 아니라, 계속 관리를 해야 하며 에너지를 쓰게 된다.
 
우리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건강한 인간 관계는 건강한 자아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은 자기 관심사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자기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때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된다. 그 공통의 관심사 중에서 중요한 게 취향이며, '오티움'이다. '오티움(능동적 여가 활동)'을 갖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인간 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어진다. 이게 '오티움'의 힘이다.
 
좋은 관계의 기준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관계가 좋은 관계이다. 더 나아가 나도 좋고 집단도 좋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집단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의해 인간 간계가 이루어지고 집단이 형성되었다. 예컨대 친척 모임, 동기 모임, 동문회, 향우회 등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시대는 갔다. 자신과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관계의 방식이 달라진 거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연결의 구심점이다. 예전에는 연고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관심과 취항 중심이 되었다.
 
이제 집단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저절로 소속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가입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관심사, 취향, 목표 등에 따라 새로운 집단을 찾고 새로운 사람들과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네트워킹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무엇보다 '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회학자 배리 웰먼은 이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집단형성을 가리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라고 명명했다. 새로운 문화 부족의 탄생을 의미한다. 혈연이나 지연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기초한 새로운 부족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취향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수평적이다. 나이 등 위계 질서 등을 별로 따지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서로를 존중하기에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잡는다.
  • 개별적이다. 연고 집단이 집단의 결속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취향 공동체는 개인의 취향과 의견을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느슨하지만 반대로 집단 내에서 흔히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의 마찰이나 갈등이 적다.
  • 유연하다. 연고 공동체처럼 규율이나 질서를 크게 강조하지 않고 폐쇄적이지 않다. 어떤 모임들은 처음부터 기간이나 모임의 획수를 정해놓는 프로젝트 형태로 모임을 개설했다가 기간이 지나면 해체시키기도 한다. 물론 필요하면 다시 또 모임을 만들면 된다.
  • 다양하다. 이질적으로 집단 내 관용이 자라나고 포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
  • 함께 성장한다. 인간 관계를 쌓은 게 목적이 아니라 취향의 심화가 목적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