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3월 28일)

어제는 다시 서울 병원에 다녀왔다. 2주 전에 했던 수술이 성공이라 했다. 안 해도 되는 수술 같았는데, 그냥 했으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나는 미래를 길게 보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행위를 할 때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 '오늘은 최대한 꼼꼼하게 살되,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놔주자'는 주의이다. 인생 그거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이다.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이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은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게송(偈頌)이란 시의 형식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문장으로, 외기 쉽게 게구(偈句)로 되어 있다. 이 게구의 형식은 8음절을 하나의 구로 하여 2개의 구가 하나의 향을 이루고, 다시 2개의 행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32음절의 시이다. 게송을 잘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면, 삶이 평안해 진다.
오늘 아침은 "칠불통계게"를 소환한다. 과거 일곱 부처님이 한결같이 당부한 훈계로, 곧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의미한다. 보통, 일곱 번째 불인 석가모니 직전의 엿서 번째 불 가섭불의 게가 일반적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은 저지르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악을 경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도덕이나,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게송에서는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구절이 다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순간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중생들은 무명(無明), 아니 무지(無知)와 탐욕 또는 탐진치(貪瞋痴)의 삼독(三毒)에 의해 마음의 호수가 항상 흔들리고 혼탁해져 제법(諸法)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 하지만 호수가 고요하고 깨끗해졌을 때, 그 호수에는 호숫가의 꽃이나 나무, 두둥실 떠가는 하늘의 흰구름까지도 그대로 비치듯,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해졌을 때 일체만산의 참모습 또는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쉽게 말해, 마음 속의 번뇌(걱정 거리), 미혹(迷惑, 의심) 없는 마음이라야 우주적 진리, 궁극적 실재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아집과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음의 정화를 이루어 끝없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진리에 이르고, 그래야만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러기 전에 우선 악을 행하지 않도록 힘을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
나는 마음의 바다에 풍랑이 치면,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 나오는 '월인천강(月印千江)' 이미지를 기억하며 마음의 청정을 회복한다. '월인천강'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춘다'는 의미로,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거다. 그러나 나 자신의 마음의 호수를 잔잔하게 '월인천강'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악행을 먼저 하지 말고, 선행을 하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은 깨달음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거다. 중국의 한 선사(도림)는 '칠불통계'에 대해 "세 살짜리도 아는 말이지만 팔십 먹은 늙은이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못배워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란다. 사람이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버젓이 행하는 것도 많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란다. 역대 일곱 부처님들이 깨닫고 실천한 가르침의 핵심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마음을 청정하게 가꾸라"이다. 이를 우리는 '칠불통계(七佛通戒)'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선을 말하기 전에 악을 짓지 말라'는 말을 먼저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해서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것은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논어>>의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칠불통계'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와 도림 사이의 일화도 전해진다. 백거이가 도림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라고 묻자 도림은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고 대답하였다
인터넷에서 게송의 의미를 찾다가 만난 거다. 마음에 들어 공유한다.
"건강이 으뜸가는 이익이요,
만족이 으뜸가는 재산인데.
신뢰가 으뜸가는 친척이요.
닙바나[Nibbana, 미래 괴로움(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을 제거함]가 으뜸가는 행복이네.
감사하자 감사한 일이 생긴다.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춤추자. 춤출 일이 생긴다."
그리고 '행불(행복과 불행)의 노래'도 알게 되었다. 공유한다.
"나는 내가 창조합니다. 지금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내 작품이라고 확신해야 내가 바꿀 수 있네.
남의 탓을 하는 순간, 남의 작품이 되는 것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해지기를!"
나는 이 노래에서 "~해주세요'가 아니라, "~하겠습니다'라는 능동적인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이 마음에 든다.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핵심 교리는 '사랑과 지혜',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비와 깨달음'이다. 그러니까 불교의 핵심 메시지인 지혜(깨달음)와 자비(사랑)에서 지혜는 자비의 안내자라고 한다. 그런데 자비 또한 곧 지혜이다. 이제서야 나는 '사랑의 지혜'라는 말을 알고 있다. "악행을 하면 누구나 나쁜 과보를 받고, 보시하고 선행하면 누구나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행위를 묻는다." (<<법구경>>)
그러니까 자비는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더 잘 실천한다. 자비는 모두 다 더불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깊은 지혜의 실천이다. 깨달어 지혜를 얻으면, "이것이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이치에 따라 참살이를 할 수 있다. 참살이는 돈과 명예와 권위, 아니면 지식이 많다고 자기 속에 갇혀 경직된 표정으로 살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바른 안목과 자애로움으로 웃음을 주고 겸손과 평정심으로 회향할 줄 아는 삶이다. 요약하면, 모든 존재는 여러 원인과 조건(因緣, 인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기의 세계에 있으며, 이 세계는 만들지 않으면 본래 없는 것이라는 공(空)의 세계이다. 불교의 사실판단이다. 여기에 가치판단을 하려면, 세상의 법칙이 이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깨달음은 사실 판단이며, 자비는 가치판단이다. 깨달음은 지혜이고, 가치의 판단은 자비(사랑)이다. 그러니까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하고 사랑으로 만난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편견과 차별을 거두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끌어안고 같이 기뻐하거나 아파하는 것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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