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3월 22일)

오늘 아침 사진은 어제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난 거다. 이쯤 되면,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봄 이야기가 소환된다. 봄은 어떻게 오는가? 요즈음 거리를 나서면 신비롭고 경이롭다. 그 '설명할 수 없는 솟아오름'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해하고 서사를 만들었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저 어린 초록은 무슨 힘으로 솟아 오르는 것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웃으니 햇볕이 따뜻한 봄이 온다 했다. 모든 것들이 지구의 중력에 지배를 받지만, 사랑이 동반된 봄의 새싹이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솟아 오른다. 신비스럽다. 그것은 다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자 친정 어머니의 사랑이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폭죽처럼 터지다, 가을로 무르익어 가면, 온 땅을 초토화 시키는 겨울이 온다. 앙상한 가지만이 해골처럼 남았던 겨울, 푸름이 허물어져 잿빛으로 나 뒹구는 땅, 모진 바람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계절. 누가 이토록 절망하였기에 겨울이 왔던 것일까? 그러다가 갑옷같이 단단한 대지를 뚫고 어린 새 순이 솟아나는 봄이 온다. 누가 절망에서 깨어나 새로운 희망을 키워내는 것일까? 죽은 듯이 황폐했던 땅을 뚫고 풋풋한 새싹이 싱싱한 발톱처럼 돋아난다. 이 신비스러운 계절의 변화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것을 키워내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페르세포네를 얻는다. 데메테르는 땅에 자라는 식물을 주관하는 일을 하는 여신이다. 그녀가 활기차게 움직일 때, 땅은 아름다운 꽃과 풍요로운 곡식과 과일을 만들어 준다. 그런 그녀에겐 '우유 빛 팔을 가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페르세포네라는 외동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저승 세계의 왕 하데스가 그 예쁜 딸을 납치해간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가길 두려워하는 지하의 세계로 데려간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 데메테르는 정신없이 딸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딸을 남편인 제우스의 묵인(默認) 하에 하데스가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자신의 딸을 납치해 지하 세계로 데려간 사실을 알아챈다. "남편이 자신의 딸을 오빠에게 넘기다니!" 배신감에 치를 떨던 데메테르는 앙심을 품고 자신이 맡은 일을 거부하고 요즈음 식으로 파업을 한다. 딸을 잃은 그녀가 땅에서 손을 떼자, 땅은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렸고, 앙상하게 뼈를 드러냈다. 꽃이 색과 향을 잃고 시들어갔다. 곡식과 과일이 더는 열리지 않아, 먹을 것이 없어진 인간 세계는 흉흉하게 메말라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굶주려 죽어갔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우스는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헤르메스를 통해 하데스와 협상한다. 협상은 페르세포네가 일 년의 3/1은 하데스와 함께 있되, 나머지 3/2는 자신과 함께 밝은 세상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봄이 찾아 오는 계절은 이렇게 해서 변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스인들은 이해했다.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나와 자신의 친정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보내게 될 때, 데메테르는 행복해 웃으며 기뻐하니 새싹은 돋아나고 곡식이 익어간다는 것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하지만 가을이 깊어 가면 페르세포네는 다시 땅을 떠나 죽은 자들이 머무는 지하의 세계, 남편인 하데스의 곁으로 가야만 한다. 홀로 남은 데메테르는 곧 외로움의 고통에 시름 시름 앓으며, 일을 하지 않는다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계절이 변하여 찬바람이 부는 것은 페르세포네와 데메테르의 이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데메테르의 우울에서 겨울의 혹독함은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로마 시대(오비디우스)로 오면,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딸 프로세르피나가 일 년 열 두 달 가운데 반은 어머니와 보내고, 반은 남편과 보내는 식으로 이야기 바뀝니다. 겨울이 더 길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계절 변화와 로마의 계절 변화가 차이가 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르세포네가 죽음의 세상을 나와 밝은 땅 위에서 데메테르를 만나는 까닭에 대지의 여신이 행복해 하며, 사랑의 힘으로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며 새들이 노래하고 세상이 깨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가 웃으니 햇볕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혹시 죽음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대지 위로 홀로 보내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원전 사고를 보며 상상해 보았다. 그 해의 봄은 쓰나미와 함께 행복하지 못했던 해의 봄이었다. 페르세포네가 혼자 오지 않고 자신의 남편 하데스를 데리고 친정에 온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왜냐하면, 하데스의 로마식 이름은 플루투스, 영어식으로는 플루톤이기 때문이다. 원자번호 94번. 1940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에드윈 맥밀런은 죽음을 부르는 이 치명적인 물질을 처음 합성한 후,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플루톤의 이름을 따서 플루토늄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봄은 오는 거다. 그런 봄이 빨리 더 가까이 왔으면 한다.
봄을 위하여/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이젠 계속되는 '오티움'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 아침은 일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발견하는 '나만의 오티움'을 찾는 방법 이야기이다. 나만의 '오티움'을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우연한 이끌림으로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강렬한 이끌림'에 의해 '오티움'을 만난다. 현대 무용의 거장 마샤 그레이엄(Martha Graham) 의 경우가 그랬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가 열 일곱 살 때 로스앤젤레스 오페라 하우스 앞을 지나다가, 힌두교의 주신 크리수나의 연인으로 분장한 무용가 루스 세인트 데니스 산진 포스터에 끄려 공연을 보면서 춤의 세계에 빠졌다 한다. 그녀는 무용을 배우지 않은 채, 22 살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무용을 배우기 시작하게 된다. 그녀의 경우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가슴 뛰는 자신의 일을 만난 경우이다. 그러나 능동적인 여가 활동 나만의 '오티움'이 찾아 오는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모든 만남이 의도나 계획에 의한 게 아닌 것처럼 '오티움' 역시 우연처럼 찾아 올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묻고 또 물으면서 자기 탐색을 통해 나만의 '오티움'을 찾는 거다. '나 자신'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자기를 파헤치고, 이해하고, 실험해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특히 100세 시대를 맞아 삶은 더 이상 단수 'life'가 아니라, 복수 'lifes'가 되었다.이젠 몇 개의 인생들을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정체성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는 거다. 자신을 공부해야 한다.
공부란 무엇인가? 공자는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해 공부했고, 요즘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라 말했다. 우리 선비들이 생각했던 공부는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인(人)은 타인을 가리키고, 기(己)는 자기 자신에 해당 한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공부이다. 반대로 위기지학은 자신을 위한 공부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고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는 공부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스팩'을 쌓는다는 것은 모두 다 '위인지학'이다. 스펙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 아닌가?
'위기지학'은 자신을 충실히 쌓아가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고 과시하기 위한 공부이다.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즉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기뻐한다. 당연히 그 한계는 없다. 하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수시로 비교하며 남보다 앞서기 위한 공부를 한다. 남보다 빠른 출세,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 되면 공부를 멈춘다. 왜냐하면 애초에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올바른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지학' 하는 사람들은 실력을 쌓고 자신을 가다듬어 간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하찮은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실력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배어 나오게 된다. 마치 가득 찬 독에서 물이 넘치듯이,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아도 실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게 된다. '내공(內供)'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학교를 가고, 자격증을 따고, 취직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공부는 '위인지학'이다. 반면, 자기 관심사에 기초해서 알명 알수록 재미있는 공부, 나와 인간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공부, 그 공부를 통해 내가 세상에 참여하는 공부, 끊임없이 나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삶 속에서 새로운 싣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러한 실천적인 공부가 '위기지학'이다. 이젠 이런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공부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필요하다고 저자 문요한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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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거 생애를 치밀하게 살펴본다. 나이 영혼을 기쁘게 하는 활동은 사실 한 번도 하지 않은 경험이라기 보다 자신의 삶에서 언젠가 만났던 경험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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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현재 일상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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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실험과 경험을 한다. 실제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자신의 '오티움'을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좀 구체적인 자기 탐색 방법 이야기를 내일로 넘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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