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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격자를 구성하는 공부 체계

227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26일)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의 저자 정희원 교수는 찰스 멍거의 다음 주장을 소개하였다.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格子, latticework)를 만드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연관성이 별로 없는 A, B, C 세 가지 학문 분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분야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 좁고 깊게 반복해서 고민하기보다 B, C 분야에서는 비슷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면 A 분야를 보다 새롭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동의한다.
 
그래 나는 최근에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빅 히스토리>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 3월 4일은 '빅뱅과 다양한 우주관'을 천문연구원 홍성욱 선임연구원이 한다. 지난 번은 한양대 김항배 물리학과 교수를 모시고, <Big History-우주, 지구, 생명, 문명을 잇는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통찰을 얻었다. (1) 물질은 모여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을 양자의 요동이다. 신이 아니다. (2) 생명은 액체로 존재하는 물이 가장 중요하다. <<도덕경>>을 읽으며 알게 된 "태일생수(太一生水)"라는 말이 소환되었다.
 
'우리 인생의 시간은 물의 시간이다.'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오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물과 더불어 살고 물과 더불어 투쟁한다. 물이 없어도 죽지만, 물이 너무 많아도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태일생수(太一生水, 태일(太一)은 물을 생한다)>>의 저자가 이 세계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의 기조를 "물(水)"이라고 보았지만, 그 물은 태일(太一, 도의 다른 이름)과의 관계에서 천지만물의 모든 현상을 생성시키는 비실체적 사건일 뿐, 그 나름대로 원질을 형성하는 존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과학자의 주장과 좀 다르지만, 궁극에서는 만난다.
 
그 물(水)의 궁극적 귀결처가 '세(歲)'라는 거다. 여기서 '세'라는 것은 일 년이지만, 농경사회에 있어서 일 년은 곧 영구한 시간을 의미한다. 계절로 이루어지는 '세'의 반복이 곧 시간인 것이다. 고로 물은 곧 시간의 창조주인 것이다." ""도생일(道生一)"은 "태일생수"와도 같은 것이다. 도가 태일이고, 물(水)이 곧 일(一)이다. 일은 동시에 태일(=道)을 반보(反輔)하여 하늘(天)을 생성시킨다. 이 과정이 곧 "일생이(一生二)"인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동시에 "태일"을 "반보"하여 지를 형성시킨다. 이것이 "이생삼(二生三)"인 것이다. 이 삼(도, 천, 지)이 갖추어지면 만물이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생만물(三生萬物)"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물이 우리들의 삶의 시작이라는 거다.
 
김항배 교수로 받은 통찰 (3)은, '해령(海嶺)'이라는 말이다. 해령은 "4000~6000m 깊이의 바다 밑에 산맥 모양으로 솟은 지형으로 해저 산맥이라는 말이다. 흥미롭지만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에 더 공부할 생각이다.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인 것 같다. (3) 문명의 역사는 에너지의 획득을 통한 그 흐름과 정보의 확산에 유리하게 진화하는 인간의 뇌가 학습하여 문화를 만든 거다. 학습이 문화적 요인이다. 유전자를 통해 두뇌를 획득했지만, 문화가 두뇌의 양을 늘린다는 거다. 이때 중요한 것이 혼자가 아니라 집단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 집단의 협력을 통해 만드는 것이 문화이다. 그 문화를 통해 지식이 축적된다. 그러니 우리는 선조들이 쌓아 놓은 지식을 학습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것들이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4) 집단 형성을 위해서 조직화가 필요하다. 그 조직화를 위해서는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항배 교수는 그 불평등을 받아들이며 계급이 형성되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그 위안을 위해 종교가 형성된 거라는 거다. 좀 더 찾아 보아야 한다. 어쨌든 설득력 있는 주장이고 흥미롭다.
 
찰스 멍거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가 길어졌다. 멍거가 말하는 방식으로 지식과 사고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는 거다. 격자를 구성하는 공부 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배운 경험한 것만 아는 화석형 전문가가 된다. 이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전문성을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응용하거나, 문제의 해결방안을 도모하는 과정은 광범위하게 연결된 격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로 화석형 전문가는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극을 만들어 낸다.
(1) 개인적 비극: 사회와 환경은 변화하는데, 자신이 보유한 부가가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능을 갖추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
(2) 사회적 비극: 잘못된 피드백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그걸 겪고 있다. 검사밖에 해보지 화석형 전문가들이 정치 현장에 등장하여 많은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는가? 한 예가, 자살 방지 대책이 번개탄 생산을 막는다는 거다. 직업 현장에서는 업무 영역이 아무리 전문적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개개인은 스스로 제너럴리스트적 자질을 보유해야 한다. 특히 정치 분야는 더 하다.
 
거대한 격자를 형성하는 역량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보수하는 능력은 끊임없는 읽기와 생각하기, 쓰기를 통해 갖출 수 있다. 문제는 영상이나 사진, 짧은 글이 주는 인공적인 자극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 능력을 살릴 수 없다는 거다. 내가 논리적으로 글을 길게 쓰는 이유도 격자를 만들려는 거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규율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신체적으로 어떤 상태일 때 스마트폰이 주는 싸구려 자극원에 탐닉하는지 스스로 분석해보고 그러한 상황이 되면 마음 챙김이나 책으로 우회할 습관 통로를 만드는 거다. 아니면, 스마트폰의 각종 알림을 끄고 책이나 머릿속 생각에 집중할 시간을 갖거나, 그 생각을 써 본다. 그 시간에는 약속이나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거다. 내가 아침 마다 <인문 일지>를 쓰는 것도 나 자신만의 규율이다.
 
글쓰기이든 연주이든 관심이 취미를 넘어 경력이 되려면 다음의 결과 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투입한 시간ⅹ몰입 정도(시간 밀도)ⅹ습득 능력(인지 기능)." 그러니까 초기에 투입한 노력이나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량을 갈고 닦는 습관과 체계를 유지하면 나이나 바쁜 정도와 무관하게 능력의 포트폴리오는 두텁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량을 관리하다 보면, 몰입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순서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다 보면, 점지적으로 본업, 부업과 취미가 바뀔 수 있다. 몰입하고 싶으면서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제적 보상을 끌어낼 수도 있다.사회경제적으로는 은퇴가 필요 없는 삶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은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충만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내 삶이 그렇다. 나는 내가 은퇴하고 싶을 때 은퇴하는 와인 전문가이다. 그러면서 마을 활동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인문 운동가로 사회 활동을 한다.
 
견고한 역량 포트폴리오는 더 고차원적인 욕구 충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상회로는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건강한 보상 회로와 고차원적 욕구 충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싸구려 자극원에 기댈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저절로 가속 노화 요인들을 피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도파민(흥분성 신경전달물질) 분비 방식을 바로잡는 삶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내적 충만은 외적인 것을 비교하는 마음을 잠재워 쓸데 없는 지출, '시발비용'을 줄여준다. '시발 비용'이라는 말은 욕설 '씨발→시발'과 쓴 돈을 의미하는 '비용'이 합쳐져서, 욕설이 나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쓰게 된 돈'이라는 뜻이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다. 다른 말로 '홧김 비용'이다. 홧김에 시킨 배달 음식 값이나, 짜증이 나서 탄 택시비 등을 일컫는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한 소비 비용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해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의 4M( "성공적인 나이 듦을 위한 네 가지 기둥"으로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을 말함)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거다. 또한 불편하고 번거로워 보이는 공부의 습관이 거대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개인적으로 내가 원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완성될 수도 있다.
 
'안빈낙도'는 산 속으로 들어가서, 비록 가난하더라도 걱정 하나 없이 맘 편히 지내는 일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말은 '낙도(樂道)'이다. '안빈(安貧)'에만 초점을 맞추어 가볍게 사용하면, 삶 속에서 안빈낙도의 정신을 생산하지 못한다. '안빈낙도'라는 말은 <<논어>>의<옹야> 편에서 제자 안회를 평하는 다음 문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안회야, 너 참 대단하구나! 한 바구니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끼니를 때우고, 누추한 거리에서 구차하게 지내는 것을 딴 사람 같으면 우울해하고 아주 힘들어 할 터인데, 너는 그렇게 살면서도 자신의 즐거워하는 바를 달리하지 않으니 정말 대단하구나!" 가난함을 즐기는 태도보다, 가난함 속에서도 마음이 변하여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지 않고, 그 가난함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삶이다. 이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적인 것에 탓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심을 굳건하게 잡은 후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나무처럼 살기"로 했다. 아침 사진은 주말 농장 가는 길에 겨울을 잘 버틴 나무가 구름에게 손 드는 거다.
 
 
나무처럼 살기/이경숙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 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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