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24일)

2023년이라는 말과 계묘년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세월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한번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계묘년의 토끼는 언젠가 또 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접힌 시간을 60년의 간지(干支)로 온다. 그래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고, 언젠가 다시 소환되는 날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에 1,500년 전 백제 시대의 노래 하나를 알게 되었다. 목간(木簡)에 적힌 이 노래 제목은 '숙세가'이다. 목간이 '숙세(宿世)'라는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한다.
宿世結業 同生一處(숙세결업 동생일처)
是非相問 上拜白來(시비상문 상배백래)
전생에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나게 해 주소서
잘잘못을 따지려 하신다면 위로 절하고 사뢰오리다. (이종묵 서울대 교수) 이 번역은 사랑을 다짐하는 노래로 읽힌다.
전생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
시비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 공경하게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 (김영욱 서울시립대 교수) 이 번역은 소원을 청하는 발원문의 형태로 풀이한 것이다.
나는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의 번역이 좋다. "전생에서 인연을 맺어, 한곳에 태어나 같이 살아갑니다/옳고 그름은 서로 물어야 하는 것, 하늘에 절한 후 말씀 나누러 오세요." "시비상문(是非相問)", 옳고, 그름은 서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시비를 따지는 병폐를 고치려면 '밝음(明)이 있어야 한다.' '명'에 방점을 찍고, 내가 늘 외우는 문장이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서 나오는 일방적 편견을 버리자는 거다. 사물을 한쪽에서만 보는 편견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사물이 이것도 되면서 저것도 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거도 저것도' 본다는 말이다. 나에게 사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이 것만이라며 고집하고 그것을 절대 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이 말은 이것이라는 말은 저것이라는 말이 없을 때는 의미가 없다. 이것이라는 말은 반드시 저것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이라는 말 속에는 저것이라는 말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저것을 낳고, 저것은 이것을 낳는 셈 이다. 아버지만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 없이는 아버지도 있을 수 없으므로 아들도 아버지를 낳는 셈이다. 아버지도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고, 아들도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이렇게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방생(放生)이라고 한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mutual production, Interdependence이다.
장자는 이를 ‘피시방생지설’(彼是方生之說)'이라고 했다. 피차, 즉 주체와 객체라는 말은 기준으로 삼는 시각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데 장자는 ‘피차’(彼此)라는 말 대신에 ‘피시’(彼是)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是)는 ‘이것’이라는 뜻과 함께 ‘옳다’는 의미도 있다. 즉 피시의 구분에는 이미 시비 판단의 계기가 전제 되어 있다. ‘나의 쪽'이 옳다는 판단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는 ‘자아’ 문제와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 인식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다. 그러나 이런 의식 자체는 비난 받을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 모두가 거의 그러니까. 따라서 ‘누구나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시비가 훨씬 더 줄고 평화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언뜻 보기에 대립하고 모순 하는 것 같은 개념들, 죽음과 삶, 됨과 안 됨, 옳음과 그름, <<도덕경>> 제2장에 열거한 선악, 미추, 고저, 장단 같은 것들이, 결국 독립한 절대 개념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며 어울려 서로 의존하는 상관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 우려면,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한다. 사물을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 즉 '조지어천(照之於天)'이고, '도의 지도리(도추道樞, pivot, still point)'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인시, 因是)'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명,明)이다. 중세의 한철학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반대의 일치, 양극의 조화(coincidentia oppositorun)이다. 이 문단은 내 삶의 지표이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이란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 실재 그대로 그렇다 함이란 영어로 reality, 산스크리트어의 taahta(정말 그러함, 진여), 영어의 let it be 같은 단어를 연상한다. 모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았기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통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이 태도가 백제의 노래 '숙세가'의 上拜白來(상배백래, 하늘에 절한 후 말씀 나누러 오세요)하는 마음이 아닐까?
살다 보면,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 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埋葬)된 것이 아니라, 파종(播種)된 것이다. 매장과 파종은 다르다. 파종은 씨앗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그래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아침 사진은 작년에 부산 바다에서 찍은 거다. 올해는, "시비상문"으로 "목"을 돌리면서 여러 가지 일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박찬일
누가 내 목을 돌렸습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왼쪽으로 돌릴 때 오른쪽 힘을 주다가
오른쪽으로 돌릴 때 왼쪽으로 힘을 주다가
그만 목이 헐렁해져 버렸습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힘을 쓰지 않겠습니다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돌려주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돌리다가
목을 떨구겠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조바심'이다. '바심'은 '타작'을 뜻한다. 즉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낱알을 거두는 일이다. '조바심'은 말 그대로 조를 타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는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즉 타작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니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일이 안 되면 어떨까'하며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인다는 의미가 생겼다. 조바심을 없애려면 시시하게 살면 된다. 그런데, 시시하게 살면 행복하다.
시시가 무엇인가? 한가로운 것이다. 비록 몸은 부지런해도 잠재의식이 한가롭다면 시시할 수 있다. 이때 잠재의식이 한가로우려면 행동은 단순하고 소박해야 한다. 기대하고 바라는 게 적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서 한가로운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몸이든, 의식이든, 행동이든 모두가 한가해야 행복해진다. 그러니까 시시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가로우면 행복해진다. 우리가 지금 힘든 것은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는 탓이다. 시시하고 싱겁고 재미없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시시하고 특별한 것이라곤 하나 없는 일상(日常)이 감사의 기본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탈출하기 위해 일탈(逸脫)을 꿈꾸지만, 일상이 깨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그건 불행이다. 시시하다고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다 보니 파격적이지 못할 뿐이다. 일상은 시시하다 그리고 식상하다. 그러나 시시하고 식상한 것은 보통 우리 곁에 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지 말고,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바람보다 더 빠른 세상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세월은 빨리 도망간다. 진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보자.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 보자. 단순하게 살수록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며 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러니 이젠 멈추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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