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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다음 소희'는 죽지 말아야 한다.

227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23일)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 그렇다. 영화에서 학교 선생님은 소희가 대기업(하청) 취업에 성공한 본보기가 되길 원했다.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과 학교의 실적을 위해 인내와 헌신을 강요했다. 소희 역시 자신이 실패의 본보기가 되기 싫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실패자는 학교에서 ‘빨간색 조끼’라는 낙인을 입어야만 했다. 결국 학교의 실적을 위해 학생은 ‘좋은’ 본보기 이든 혹은 ‘나쁜’ 본보기 이든 둘 중 하나로 쓰일 운명이었다. 그곳에는 ‘인간’ 소희는 없고, 그저 ‘다음’ 소희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낙오자가 아닌 좋은 본보기로 생존하기 위해 학교가, 기업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 소희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어떤 욕설에도 흔들리지 않는 친절함이라는 상품을 제조해야만 했다. 인간이 상품이 되는 거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실적에 따른 소액의 인센티브였다. 돈이다. 결국, 소희는 고객을 위해 ‘친절함’을 만들고, 이어서 자신의 ‘수치심’을 감내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인간이 아닌 '감정 없는' 물건이 되는 거다. 그렇게 감정노동은 최종적으로 감정 ‘없는’ 노동을 요구하며 그녀가 기계가 되길 원했다. 그래도 '다음 소희'는 죽지 말아야 한다.
 
"<다음 소희>는 일터에서 본보기라는 일종의 압력이 꿈 대신 무감각을 키우게 만드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소희의 다음 차례는 오직 특성화고 학생일 뿐일까? 친절하기를, 수치심을 인내하기를, 그리고 상황에 무감각해지기를 요청하는 것은 어디 이곳뿐일까? 경찰 배두나가 찾아갔던 책임자들은 처음에 그녀에게 친절하게 응대했지만, 결국 적당히 ‘무감각’하지 못한 그녀를 한심한 듯 나무란다. 배두나가 “누구 하나 내 탓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항변했던 것처럼 현실은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실적을 핑계로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길 요구한다. 콜센터가 소희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사회는 나를 지워버리면 좋은 본보기가, 나를 지키면 나쁜 본보기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최소한의 나를 지키기 위해선 그저 그 어떤 본보기도 되지 않게, 튀지 않게, 모나지 않게 상황에 맞게끔 순응하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김관욱 교수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우리가 실내마스크 착용이 완화되었는데도 벗진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도 마스크를 잘 벗지 않는다. 마스크로 인해 내 감정에 대해 일상에서 주의해야 할 긴장감이 완화되고, 딱 그만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공감력도 반응 정도와 속도 측면에서 축소되었기 때문 같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우린, 이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위험(risk)-재난(disaster)-위기(crisis)-파국(catastrophe). 피해를 초래하는 사건의 수준을 이렇게 한번 나눠보자. 이 구분은 피해의 심각성만이 아니라 지속성의 차이에 따른다. 위험은 재난이 다가온다는 징후이다. 하지만 모든 재난이 위기로 번지고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태풍 같은 재난은 그 규모가 크더라도 머잖아 끝나고 이후 얼마간 복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심각성이 회복 불가능한 임계점을 넘어서서 지속된다면, 사회는 위기에 처하고 파국에 이를 수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은 어제 석양을 찍은 것이다. 속절없이 해는 잘 넘어간다. 이젠 시간이 없다.
 
 
위험들/자넷 랜드 (류시화 옮김)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므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므로.
그는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배움을 얻을 수도, 느낄 수도, 변화할 수도,
성장하거나 사랑할 수도 없으므로.
확실한 것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와 같다.
오직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 진영에 속하면 동조해서는 안 되는 금기 영역과 비판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양분된 결정을 강요 받게 된다. 아니면 어느 쪽도 선택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정치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프레임이란 ‘정신적 구조로서 반복된 학습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정치인과 언론 매체의 지속적 선동으로 무의식적 생각을 의식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고 집단적 사고를 형성하게 한다. 프레임을 반복해 집단주의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다. 진영에 속했다는 소속감이 진영 논리로 빠져들게 하고 진영 정치로 확장된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영역이 점점 더 견실해지고 있다. 건설적 경쟁의 장으로 발전돼야 할 이념적 균열을 프레임으로 포장해,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목적에 맞춰 왜곡을 강화할 뿐이다.
 
처음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째는 속은 놈도 나쁜 몸이 된다. 유명한 말이다. 검찰이 '혐의 내용'을 언론에 흘리면 언론들이 '속보'로 대서특필하여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죄인'으로 확정해 버린다. 검찰과 언론은 범죄 사실과 관계 없이 '소설'을 쓴다. 최근에 일어나는 사법 사건들을 보면 그렇다는 거다.
 
대안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라는 금언이 있지만,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도 견제해 주지 않으니 검찰로서도 ‘인지상정’으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제도상 견제 기관이 이 나라엔 없는가. 아니 대통령과 장관도 탄핵하는 마당에, 이제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선 이 나라에 일개 판·검사들을 탄핵 못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 법규도 분명히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탄핵의 책임이 국회에 있을진대, 의원 개개인이 뒤가 구린 데가 많아서 판사처럼 뒷조사를 당할까 봐 직무유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책임을 이리 방기할 수 있는가." (윤용식/한국방송대 명예교수)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사주와 비호아래 진행되는 정치검찰 쿠데타를 두 눈 뜬 채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은 "검(檢)주국가"(김동연)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방탄목적으로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김건희 고발사건들과 50억클럽 수뢰인사 고발사건들을 시늉만 하며 뭉개고 있는 검찰총장 및 지휘라인상 고위검사들을 전원 국회에서 탄핵소추해야 한다. 이게 내 개인 생각이다. 다음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주장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언어도단의 이중기준을 들이대며 직무를 유기하거나 직권을 남용해온 정치검사들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여 국회의 권위를 보여주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검찰이 임명권자인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고 여당을 감싸며 야당을 때려잡는 깡패 짓을 하는 판에 국회가 탄핵 소추권 발동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한번만 제대로 발동하고 나면 정치검사가 함부로 날뛰지 못한다." 나도 동의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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