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22일)

아침에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를 알게 되어, 리듬이 깨졌다. 그 시간에 <인문 일지>를 쓰는데, 집중이 안 된다. 그래 다른 일을 하며, 그 방송을 듣는다. 그래 오늘 화두를 '겸손'으로 잡았다. 나의 고향에서 활동하시는 나태주 시인은 “시인들은 겸손해야 하고 늘 자기만의 문제나 느낌,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하시며, 또한 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여야 한다고도 하셨다. 이러한 성정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겸손'에 관한 시이다. 정말로 "겸손한 사람이 참 아름답다." 오늘 아침은 새로운 스타일의 사진이다. 새벽 운동에 나가 찍은 거다. 자연에 나가면, 풍광은 언제나 새롭고 충격적이다. 새롭다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고, 충격적이란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그 모습과는 전혀 달라 나를 당황하고 겸손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겸손한 사람이 참 아름답다/허영자
겸손이란
참으로 자신 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인격이다.
자신과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열등의식이나 비굴감은 있을지언정
겸손한 미덕을 갖추기 어렵다.
겸손은 자기를 투시할 줄 아는
맑은 자의식을 가진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한정된 자신의 운명과
우주의 영원 무변성과를 대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만이 겸손할 수가 있다.
또한 겸손은 생명 있는 모든 것,
혹은 무생물의 모든 것까지
애련히 여기는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함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뜻,
옆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모두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겸허함을 가진 이의 삶은 경건하다.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함부로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함부로 속단하지 않으며,
운명을 수긍하고 인내하고
사랑함으로써 극복하는 이이다.
그런 사려 깊은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대 언어모델 인공지능인 'Chat GPT'가 등장하면서 인지혁명이 머지않았다고들 말한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챗지피티는 적절한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제공해준다. 논문의 얼개도 짜고, 설교문도 작성하고, 시도 쓰고, 소설의 플롯도 만든다. 머뭇거림이나 주저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유를 위한 성찰적 거리는 설 자리가 없다. 편리한 도구임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거짓 정보와 합성 데이터가 섞여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도구는 인간 삶을 뒤흔드는 미묘한 지점을 보듬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자리'이다.
'사람의 자리'는 인공지능과는 다르다. 우리 사람들은 등을 토닥여주는 동작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전달할 때가 있다. 사람은 표정, 눈빛, 접촉을 통해서도 말을 한다. 그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설 땅이 된다. 인간의 인간됨은 누군가의 설 땅이 되려는 데서 발현된다. 그런 사람의 자리에서는 열린 태도가 나온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해 눈을 홉뜨다 보면 다른 이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갈등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타자를 선의의 경쟁 상대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를 보고 있다. 타자를 부정하는 태도의 이면에는 자기파괴의 열정이 있다. 노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아낌은 그의 있음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그에게 뭔가를 배우려는 열린 태도이다.
아침에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을 들으며,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오늘날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누구는 이념이라 하고 누구는 민생이라 하지만,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도 정치의 본질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저마다 자기가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기야 다들 의원이 될 수 있으면 공천 갈등이 왜 생기겠는가. 의원 자리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면 공천 갈등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여야 갈등도 없어질 것이다. <<성호사설>>을 읽으면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조선시대 당쟁의 본질은 벼슬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었다. 벼슬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벼슬자리는 정해져 있다. 열 사람 앞에 밥그릇 하나가 놓인 격이니 싸움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당파도 이 때문이고, 당쟁도 이 때문이다. 당파는 함께 밥그릇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당쟁은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싸움이다. 모두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굶어야 한다면 같은 당파라도 싸움이 일어난다. 성호는 말했다. “당파는 싸움에서 생기고,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당쟁의 본질을 꿰뚫은 발언이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삶의 본질도 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은 삶을 위한 투쟁이다. 때로는 꼴사납고 때로는 숭고하다. 밥그릇 싸움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냐, 다른 누군가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둘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정치인에게만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도 생활인이니 어쩔 수 없다. 유권자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챙길 때 소외된 사람들의 밥그릇도 함께 챙겨 달라는 정도다. 봉사니 일꾼이니 하는 미명 하에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그것 뿐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소외된 사람들의 자리, 그들의 밥그릇도 챙기는 사람이 겸손한 이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비용에 대한 계산이 생명의 문제보다 앞서고 있다.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용납할 때 인간의 존엄은 무너진다.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이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 현 정부의 발표들을 보면 그걸 느낀다. 생명을 아끼는 것이야 말로 지속 가능한 삶의 보루이다. 아낌은 삶을 성화하는 일이다. 사람을 아끼는 것은 이 경박하고 폭력적인 세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다. 밥그릇을 아끼고 나누는 사람이 겸손한 이이다. 오늘 글은 김기석 목사의 <아낌만 한 것이 없다>(경향신문, 2월 18일자)에서 얻은 것들이다.
겸손(謙遜)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비교적 '정확'하게 바라본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도 반대로 과대평가하지도 않는 정확한 자기를 지각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약점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흠결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게 나 때문일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한 부류는 '수련(修練) 중'인 인간이며, 다른 부류는 '수련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수련 중인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더 나은 자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조금씩 전진한다. 그들은 도달해야 할 인간상을 가지고 있기에 항상 겸손하다. '수련'은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버려야할 자신의 나쁜 습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인생이라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마라톤을 훈련 없이 참가하는 것은 마라톤을 완주할 의지가 없거나, 자신이 완주할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일 뿐이다.
수련(修練)이란 마음과 몸을 잘 닦아서 단련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배운 것을 익힘이다. 배철현 교수는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으로 수련을 권하고, <<수련>>이라는 책도 냈다. 이 책에서 내가 배운 수련이란 다음과 같다.
• 수련은 지금-이 순간을 낚아채는 기술을 연마(硏磨)하는 것이다.
• 수련은 나 답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훈련이다.
• 수련은 습관에 젖은 일상의 나를 버리고, 스스로 감동할 만한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 수련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과 같은 시간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행위이다.
• 수련은 시간의 소중함을 포착해 질적으로 다른 순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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