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20일)

우리에게 말을 거는 시가 있고 문학적 실험을 추구하는 시가 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시도 있지만, 우리의 심장을 건드리는 시는 확실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이다. 삶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읽는 시가 그런 시들이다. 류시화 시인이 묶은 <<마음 챙김의 시>>라는 시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주말에 만났던 강의와 영화가 '말을 걸어 오는' 거였다.
강의는 한양대 김항배 교수의 <빅 히스토리(Big History)>였고, 영화는 <다음 소희>였다. 오늘 아침 랭 리아브의 시를 공유하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그러나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프랑스 피에르 신부는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 했다. 실제로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러니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워야 한다. 스스로 익힌 사랑으로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한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별의 먼지/랭 리아브(류시화 시인 역)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름으로
당신이 온다 해도
나는 당신을 안다.
몇 세기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느낄 수 있다.
지상의 모래와 별의 먼지 사이 어딘가
매 번의 충돌과 생성을 통해
당신과 나의 파동이 울려 퍼지고 있기에.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 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것.
강의는 우리 동네의 과학 카페 QUA(대전 유성구 신성로61번안길 53)에서 개최한 '매주 3주차 토요일 과학/기술 문화 확산을 위한' <토요 부흥해>에서 한양대 김항배 교수를 모시고 "빅 히스토리(Big History)였다. 나는 지난 해부터 <<박문호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책을 침대 곁에 두고 읽고, 박문호 박사의 훌륭한 유튜브 강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박문호 박사는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 의식 까지를 다음과 같이 15단계로 나누었다. 나는 오늘 참고로 불로그에 공유하는 그림을 틈나는 대로 본다. 박 박사는 유튜브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빅뱅 이후 양성자, 숫, 최초의 별, 태양계, 지구형 행성이 탄생했다. 양성자는 빅뱅 후 100만분의 ㅂ1초가 지난 뒤 출현했고, 38만년 후에 전자를 포획하여 수소 원자가 되었다. 지구에서 생명의 출현은 수소와 탄소 화합물로 구성되는 탄소 골격, 호흡 작용의 TCA 회로, DNA와 RNA에 의한 유전 현상으로 이어진다. 원핵 세포인 시아노박테리아에 의해 물 분해형 광합성이 시작되었고, 진핵 세포에서 다세포 생물이 출현한 뒤 식물, 동물, 균류가 등장했다. 고생대에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물고기가 육상 척추동물로 진화했고, 중생대 초기에 포유동물이 출현했다. 신생대 초기에 영장류에서 분화한 인간 선조들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 언어 상징이란 가상세계를 만들었다." 좀 어려워 보이지만, 다음과 같이 15 단계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백뱅→양성자출현→수소 원자 출현→최초의 별→태양계생 생성→행성의 진화→C.H.O 세계; 탄소 골격→생화학 회로 출현→C.H.O.N.RNA 세계→원핵 세포→진핵 세포→광합성→척추동물→신경계의 진화→의식의 출현." 틈나는 대로, 단계 별로 공부를 하고 공유할 생각이다.


김항배 교수는 빅히스토리를 크게 4개 챕터로 나누었다.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생명의 역사, 문명의 역사. 특히 문명의 역사에서 인간의 등장과 문명의 출현을 에너지의 문제로 그리고 학습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확산으로 이루어지는 문화, 즉 집단의 형성 측면에서 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 받고, 좋은 문화로 모여 살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빅 히스토리'를 공부하고, 거기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주일 저녁에는 <다음 소희> 영화를 보았다. 술 한잔이 생각나는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실습생 고 홍수연양 사망사건 및 동일한 콜센터에서 같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고 이문수씨 사건에 기초한 거라 한다.
나는 그 영화에서 '벽'을 보았다. 피해자 탓을 하면서 원청 회사이든, 학교이든, 교육청이든 어느 곳 하나 책임지지 않아도 문제가 없게끔 지어진 경고한 벽을 보았다. 누군가의 의도를 가지고 정밀하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이 켜켜이 쌓아 올린 벽을 보았다. 그래 영화를 본 후, 딸과 나는 말 없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이 영화의 재목 "다음"은 어제 내가 <인문 일지>에서 말한 "다음"과는 다르다. "다음"도 여러 종류이다.
흔히 "다음' 뒤에 오는 명사는 "다음 기회, 다음 정류장. 다음 사랑. 다음 생"처럼 일반명사들이다. 그런데 "다음 소희"는 "다음 피해자"로 읽힌다. 다른 인물이 다른 사건을 비극적으로 만나라는 것 같다. '소희 다음'은 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다음 소희"는 반드시 '나'라고 들린다. '나'나 '너'나 '다 소희'일 수 있다. 구제 불능 사회가 된다. 이게 술을 마시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다. 어제의 죽음이 내일로 이어지는 "다음 소희'를 막아야 한다.
노동과 안전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학생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사업체 그리고 구멍이 숭숭 난 현장학습제도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의 죽음은 무너져 가는 한국 사회의 잔해가 새어 나오는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 마음 더 아프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원청은 하청을 성과로 압박하고, 대표는 팀장을 성과로 줄 세우며, 팀장은 성과를 쥐고 팀원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휘두른다. 성과란 '공평한 능력주의'라는 환상에 기대어 언제나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숫자로 환산되어야 하므로, 숫자가 되는 못하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 못한다. 이게 인문 운동가를 분노하게 하는 거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살피고, 마음을 다독이며, 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노동을 가르치고 배분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관리자가 관리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숫자이다. 사람의 자리가 사라졌다.
모든 걸 숫자로 치환하며 경쟁만 부추기는 세상에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을 만났다. 사회를 '돌아가게 하고' 사람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는 숫자 뿐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에 가슴 두근거리지 않는다. 합격률, 취업률, 가입율, 지지율, 인상율, 연봉 같은 것들 에만 가슴이 뛴다. 이런 성과급 사회의 다른 한 쪽에는 망가진 공동체와 쓸모를 생산함으로써가 아니라 주목을 끎으로써 자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주목경제가 문제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윤리의 기준이 숫자로 표현되는 '성공'이고, 실패자는 '비윤적인 인간'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실패로 '고립'된 사람들의 서사에는 눈을 돌린다. 이렇게 위만 쳐다보도록 만들어진 문화 속에서,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고립 속에 좌절한 사람들을 보게 하고, 연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군가의 회상을 재현하는 플래시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과거를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기록 영상 뿐이었다. 소희가 죽은 후, 기록 영상만이 그를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의 기억이 된다. 소희는 누구에게 과시하거나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즐기는 것, 사랑하는 것을 완선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춤동작을 반복하던 사람이었다. 마지막 장면이 계속 남는다. 공통의 기억이 되지 못했던 소희의 삶을 영상으로 복원하고,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으로 만들겠다는 정주리 감독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형사 배두나의 지연된 등장 문법이 신선했다. 이로써, 나는 한국 사회의 '이미 늦음'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다음 소희"들을 기억할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른다. 여기에 주저앉지 않고, 이 다음을 생각하는 희망도 함께 시작되었으면 한다. 자연은 음과 양이 교차하며, 춘하추동으로 소리 없이 순환한다. 그 춥던 겨울이 지나면서 어김없이 또 봄이 온다. 그러니까 우주에서는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관계와 변화 속에 있을 뿐이다. 에너지의 파동에 따라 반대되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운동으로 변화하면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 음과 양의 관계로 움직이는 것은 반대되는 힘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그 힘이 에너지, 따뜻함의 정도, 즉 온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는다. 햇살은 패인 곳에 더 머물다가 가고, 비는 패인 곳을 더 흠뻑 적신다. 우리도 아픈 곳에 더 머물고, 아픈 곳을 사랑으로 더 채울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햇살과 비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사랑으로 채우는 '나' 그리고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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