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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돈이 없으면 죄도 적게 지을 거다.

226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16일)

최근에 나는 하루에 만보 이상을 꼭 걷는다. 왜냐하면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었기 때문이다.오늘 아침 사진이 산책을 하다가 찍은 거다. 사진의 구름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과 우리 사회의 아픔을 사유해 보았다. 우선 다음 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거다.


흰 구름의 마음/이생진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
땅에서 가고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간다

그래서 내가 
구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작은 몸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갈 때도
큰 몸이 되어
산을 덮었을 때도
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간다


문제는 '돈'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 잘 돌지 않는다. 주변을 보면, 돈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하늘'로 보지 않는다. 그래 봤자, 우리 모두는 단지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사는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서정홍 시인의 말이 재밌다. "돈이 잘 돌지 않으면 사람이 돈다. 우리나라도 돈이 정직하게 고루고루 잘 돌아가기만 하면 집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 집이 있어야 청년들이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하고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잖아. 청년이든 어르신이든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지. 그래야 그 다음 날,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집이나 땅을 투기목적으로 사고팔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구먼."

일터(직장), 삶터(주거공간) 그리고 배움터(학교)를 선택하는 일은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세대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터'의 선택과정이 모두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절대적인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질 낮은 공급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저질 공급 현상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집이나 땅을 투기목적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경쟁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세 '터'가 사용가치는 잃고, 시장이 매긴 교환가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서울대 쇼육학과 한숭희 교수의 다음과 같은 멋진 지적을 공유한다.

"배움터, 일터, 삶터에 대한 경쟁은 희소성에서 나타나는 획득경쟁이 아니라 양극화된 배치 아래에서 ‘질 좋은 쪽’을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질 좋은 교육’ ‘질 좋은 직장’ ‘질 좋은 집’의 가치는 활용에 따르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시장이 매긴 교환가치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학습’과 ‘노동’, 그리고 ‘주거’라는 본래적 가치는 희석화되는 반면, 시장경쟁이 부여한 거품을 잔뜩 품은 교환가치가 종종 ‘로또’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교육·노동시장·부동산 문제의 기본이다."

게다가 일터(취업), 집(주거환경, 사는 동네) 그리고 배움터(학교) 경쟁은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악순환이 벌어진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한번 ‘질 좋은 쪽'을 선택 하게 되면 그 가치가 로또 당첨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처음부터 ‘질 나쁜 쪽'을 선택 당하게 된 쪽의 가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결국, 소수의 좋은 대학-직장-주택의 사이클의 열차에 올라타는 청년집단과 그 반대 열차에 올라타야 하는 청년집단 간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며 빈부의 격차 또한 계속 벌어진다. 즉, ‘초기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평생에 걸친’ 일생의 궤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느 열차를 탈 것인가의 선택과정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경쟁은 기득권이 끼어들어 특권을 세습하기 가장 좋은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모찬스로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자녀들과 '학연 카르텔', 정치인과 공기업 취업 부정 연줄, 그리고 대대로 세습되는 재벌과 부동산 건물주들의 모습은 '흙 수저'로 태어나 자신의 힘만으로 이들을 성취해 나가야 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좌절 시킨다. 이들에게 기성세대나 특권층은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 된다.

대안은 정치가 해결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청년들에게 질 높은 교육과 직업, 그리고 주거환경을 공급하는 일은 결코 시장의 자비로움에 기댈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적 시장주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거다. 한 교수의 대안에 나는 동의한다. "교육개혁과 노동시장개혁, 그리고 부동산개혁을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보이는 손’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성향의 정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특권적 구조를 해체하고 사회민주주의적 평등성을 전면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윤석열 정부의 교육·노동시장·연금의 3대 개혁이 전제로 하는 비특권층의 양보와 희생이 여기에서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죄도 적게 지을 거다. 못된 인간이 돈까지 많으니까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거다. 세상 어디를 가나 돈 많고 비열한 인간들은 겁날 게 없으니 사람이 ‘하늘’로 보일 리가 없다. 사람을 함부로 짓밟고 음식도 함부로 먹고 마시고 물건도 막 쓰고 버린다. 돈이 없으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그러니까 결국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도 잘사는 나라, 돈 많은 인간들이 일으키는 거다. 신문기사나 뉴스에 나오는 권력과 탐욕에 빠진 인간들의 얼굴을 보면, 돈을 벌 수 있다면 못할 짓이 없는 얼굴, 속이 메스꺼워 차마 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다. 그게 어디 인간의 얼굴인가? 그러니까 우리 부자들,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부자가 되려면 어찌 살아야 하는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으까. 돈에 질질 끌려 다니다 인생을 마감할 거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주변에서 많이 목격한다.

나부터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그러자 노자의 다음 말이 떠 오른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이를 도식화 하면, "인-지-천-도-자연"이다. <<도덕경>> 25편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법을 '본받다'로 해석한다. 그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법(法) 자를 파지하면, 물(水)이 자연스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하 착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도 타인과 다투지도 않는다. 또한 물은 겸허(謙虛)가 몸에 배어 있어 언제나 낮은 곳으로 스스로 저절로 아무 소리도내지 않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법은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이다.

그런 측면에서 위의 문장을 다시 번역하면, "인간은 발을 땅에 디디고 살면서, 다른 인간들과 잘 어울려 살 뿐만 아니라, 지구의 동거존재인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과 잘 어울려 산다. 땅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하늘이 가져오는 물, 공기, 햇빛을 흠뻑 받으면서, 주어진 짧은 수명을 살면서,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 저 하늘에 있는 해, 달 그리고 모든 행성들은 지난 수 억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하염없이 갈 것이다. 그 길을 이탈하면 우주가 혼돈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주가 운영하는 법칙인 도는 자연스럽다. 물과 같이 고요하게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저 낮은 곳으로 조용하게 흘러간다."

난 요즈음 하늘의 구름을 자주 본다. 그런데 사람도 흰 구름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트는 것처럼,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을 만나 함께 있으면,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사람은 나의 장점을 세워주고, 쓴 소리로 나를 키워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난 정의(正義)를 읽는다.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잘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나는 마음이 가난하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삶의 확실한 기초는 재산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늘에 있다. 하늘, 자연 안에서만이 재산의 사용도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자연, 하늘이 만들어 준 모든 재화는 개인주의로 인한 분열의 도구가 아니라 하늘 안에서 나눔으로써 사랑을 이루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돈은 사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돈은 인간에게 권력을 주어, 그 권력을 남용하도록 유혹하는 것이 문제이다. 돈이 많으면 타자에게 둔감하다. 그리고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왜냐하면 돈은 이웃을 형제가 아니라 극복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좀 있다고, 좀 모았다고 자랑하지 마라. 그것을 나누는 것이 하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인 것 같다. "우리 중에 잘 사는 사람은 어쩌면 남의 복을 빌려서 그런 건지도 몰라. 또 못사는 사람은 남에게 복을 빌려 주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 좀 잘 산다고 으스댈 것도 아니고, 못산다고 풀 죽을 일도 아니야" 청주의 김인국 신부님 칼럼에서 얻어온 글이다. 난 못산다. 그러나 풀 죽지 않아 있다. 내 복을 다른 사람에 빌려 주어 오히려 행복하다. 인간은 "어쩌다 생겨나서/실없이 살다가/어이없이 가더라"의 노랫말처럼 살다 간다. 뭐히 중헌디?를 생각해야 한다. 금수저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실컷 해보고, 실컷 누려보고, 실컷 먹어보는 것뿐인데 저 '실컷'의 단꿈에 취하다 보면, 영영 사람되기 어렵다. 귀한 것을 내다버리거나 팔아 치운 사람은 짐승의 세 가지 독한 성질, 탐진치(삼독)으로 지내며, 삼악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에서, 사람됨을 단념하면 개 돼지에게 물려 개 돼지만도 못하게 된다.

우리 동네네는 동학교 본부인 수운교가 있다. 그곳에 가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이라는 말이 크게 회향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사인여천'이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이 강조한 인본주의 사상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던 시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며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는 창시자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니 신분이나 성별 등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모든 사람을 하느님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삶이라고 보았다. 이 사상은 구체적으로 '양천주(養天主)', '대인접물(待人接物)' 등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곧 하늘이다. 하늘이 결코 나와 따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시고 있고(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인내천)이라는 것이 수운 최제우의 중심 사상이다. 그이 제자 최시형은 ‘인간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단순히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인식을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하느님을 각자가 길러 나가는 '양천주(養天主)'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양천주를 통해 실천적으로 하느님을 자각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 바로 '대인접물' 사상이다. 양천주가 '사인여천'의 근거가 되는 이념이라면, '대인접물' 사상은 '사인여천'의 실천적 적용을 위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대인(待人)과 접물(接物)이다. 내 이웃과 내 옆의 물건을 어떻게 대할까 의 문제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는 주장이자. 사람이 집에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내려오셨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늘을 때리는 것이라 본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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