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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리사욕이 보일 때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바치라.”

226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2월 7일)
고미숙에 의하면, 말장난 같지만, '산다'는 것은 '선다'는 것이라 했다. (산다=선다) 우리는 두 발로 서는 데서부터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의학에서 직립에 필요한 척추를 '럼버커브'라 한다. 이건 태아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능력이라 한다.
 
서는 직립과 함께 사람은 손이 해방된다. 그러니까 선다는 것은 발은 땅을 디디고 눈은 하늘을 응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발에서 벗어난 두 손이 하는 일은 무궁무진해 진다. 여기서부터 사람이 짐승과 달라지는 출발점이다. 손이 하는 일은 하늘과 땅, 머리와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자 네비게이션이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산다는 것은 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선다는 건 누구든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온 몸을 지탱하는 것, 곧 자립(自立)을 의미한다. 나는 이 자립에 큰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가면 된다. 그게 인간의 길이다. 여기서 자립은 의식주를 홀로 감당하는 것 동시에 스스로 인생의 지도를 그려 가는 것이다. 고미숙은 이걸 '생활의 자립과 인식의 지도'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이다. 인식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두 발로 서려면 삶의 비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생활의 자립 그리고 생사를 관통하는 인식의 지도가 없이 두 발로 서기는 불가능하다. 그 자립 그리고 그것을 을 위해 글 쓰기가 삶의 확실한 '럼버커브'가 될 수 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산다>이다. 어제 늦은 오후에 산책하다,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사진 속의 소나무를 보고 생각한 시이다.
 
 
산다/다니카와 슌타로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리움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것
그리고 숨겨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운다는 것
웃는다는 것
화낸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 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개 짓 한다는 것
바다는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안중근 의사(義士)의 삶을 다시 생각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눈앞의 이익을 보면 대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다. 안 의사는 “사리사욕이 보일 때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바치라”고 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침략자인 일본마저 감화시킨 원대한 사상이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세 발의 총탄은, 원한이나 증오심을 넘어 패권 장악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 침략 정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법인 우덕순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마나베(재판장)는 우덕순에게 물었다.
  • 그대는 안중군과 나랏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그대는 안중근과 한국의 독립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그대는 안과 동행하기로 약속했는가? - 나는 이토를 죽일 목적이었다.
  • 안은 왜 이토를 죽이려 했는가? - 그것을 안중근에게 들을 필요가 없었다. 모든 한국인이 이토를 증오하고 있다.
  • 안의 제안에 대해서 그대는 의견을 말하지 않았나? - 어떤 상의도 하지 않았다.
  • 안중근은 의병으로서 한 일이라고 하는데, 그대는 의병과 관련이 있는가? - 나는 다만 일개의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있을 수 없다.
  • 그대는 안의 명령에 따른 것인가? - 아니다. 나는 안에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없다. 또 명령을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 이토 공은 고관(高官)으로 수행원과 경호원이 많은데, 그대는 암살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가? - 그것은 사람의 결심 하나로 되는 일이다. 결심이 확고하면 아무리 경호가 많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람의 결심 하나로 되는 일이다"라는 말이 귀에 오래 남았다. '마음 먹기'이다. 사실 죽기로 마음 먹으면, 무서울 거 하나도 없다.
 
김훈 작가의 말 중에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다.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질문에서 자신의 작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 포수, 무직, 담배팔이, (…)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 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 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안중근은 서른 살의 청춘이었다. 그의 빛나는 청춘에 나는 부끄럽다. 내 삶에서도 관념과 추상의 언어들을 걷어내고, 날 것의 힘으로 살아가게 하고 싶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 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 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김훈) 소설을 덮고, 나는 한 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이 시대의 여러 가지 사건들과 오버랩 되었다. 오늘 아침 공유한 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는 2월 14일은 안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다. "안 의사는 사형을 앞두고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의거가 있은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었다. 하지만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 유언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간절한 유언은 여전히 유언으로 남아 있다. 그 뿐일까? ‘국가의 안위를 위해 애쓰고 걱정한다’는 안 의사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지 않을까?"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글을 아침에 만났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 진영에 속하면 동조해서는 안 되는 금기 영역과 비판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양분된 결정을 강요 받게 된다. 아니면 어느 쪽도 선택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정치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프레임이란 ‘정신적 구조로서 반복된 학습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정치인과 언론 매체의 지속적 선동으로 무의식적 생각을 의식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고 집단적 사고를 형성하게 한다. 프레임을 반복해 집단주의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다. 진영에 속했다는 소속감이 진영 논리로 빠져들게 하고 진영 정치로 확장된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영역이은 점점 더 견실해지고 있다. 건설적 경쟁의 장으로 발전돼야 할 이념적 균열을 프레임으로 포장해, 예나 지금이나 기드권을 가진 자들은 목적에 맞춰 왜곡을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보니 이성적 판단을 잃은 사회는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권리조차 무너진다. 금기는 사실보다 감정에 치우쳐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 대중주의로 함몰되게 만든다. 성역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적인 정신 승리로 진화시킨다. 민주주의에서 지양돼야 할 금기와 성역이 지향되고 강화된다.
 
김 교수의 다음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미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시작하자. 안 의사의 쉼 없는 민족애를 재발견해 오늘 우리의 행위규범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해 봉환을 재추진하고, 이슈화된 3만원권 화폐 도안 인물로 안 의사를 채택하자. 일본의 반복되는 역사 왜곡, 독도 망언 등에 맞서 우리 민족정기를 선양하자는 뜻도 있다. 과거 일본의 1000엔권에 이토 히로부미 초상이 들어 있던 적이 있었다. 안 의사를 화폐 인물로 하자는 것은 결코 국수주의적 주장이 아니다. 안 의사는 평화론자였다. 공동체인 동양평화회의 설립을 113년 전에 주장한 사상가였다. ‘이익을 보았을 때는 정의로운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는 목숨을 바쳐라’는 안 의사 좌우명은 진영 논리에 함몰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되새겨야 할 의로운 좌표다. 죽음 앞에 초연한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과 행동규범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기 때문이다. 안 의사의 양식과 가치를 소환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