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25일)

몇일 전부터, 우리는 산상수훈 '팔복' 중 한 가지 씩 정밀 독해를 하고 있다. 오늘은 제2복인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를 갖고 길게 사유를 해 본다.
슬픔 앞에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눈물을 흘리는 일 밖에 없는 것일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문제는 슬퍼하는 사람이 왜 행복할까 이다. 하느님이 위로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을 겪지 않은 사람의 삶은 싱겁다. 그래서 누리는 행복도 싱겁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슬픔의 끝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위로는 슬픔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극심한 슬픔이 닥쳐도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고통의 끝에 무엇이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 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류시화 시인에 의하면, 가톨릭에서는 이 고통을 '펠릭스 쿨파(Felix culpa)', '행운의 추락'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상처가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과 가장 가까워진다. 아플 때 에고의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처 받은 자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람의 기도가 신에게 가 닿을 만큼 절실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상처보다 크기 때문이다.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고 여긴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삶의 그물망 안에서 그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 축복이라는 영어 blessing은 프랑스어 blesser에서 왔다. 프랑스어 blesser는 '상처 입다'란 뜻이다.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땐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류시화) 멋진 문장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는 위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것(저글링)이라고 상상해 본다. 각각의 공을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나)이라 명명하고, 모두 공중에서 돌리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4개의 공들,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나)은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중 하나라도 떨어뜨리게 되면 떨어진 공들은 닳고, 상처입고, 긁히고, 깨지고, 흩어져 버려 다시는 전과 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우리의 인생에서 이 5개의 공들의 균형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 오래 전에 적어 두었던 것 10 가지를 오늘 아침 다시 소환한다.
-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다르고 특별하며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내 삶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두지 말고, 나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둔다.
-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삶처럼 그것들에 충실한다. 그것들이 없는 나의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나의 현재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말게 한다. 나의 삶이 하루에 한번인 것처럼,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
- 내가 나 자신의 삶에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진정으로 끝난 것은 없다.
-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기를 두려워 않는다. 나를 구속하는 것이 바로 이 덧없는 두려움이다. 위험에 부딪히기를 두려워 말고, 용기를 .내어 그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
- 찾을 수 없다고 해서, 살아가면서 사랑의 문을 닫지않는다.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너무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바쁘게 살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감정은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것을 느끼는 그때의 감정이다.
- 시간이나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둘 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인생은 완주해야 하는 경주가 아니라, 인생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주제가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는 거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가장 좋은 위로는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 못지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너의 어려운 처지가 나의 어려운 처지처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지만, 마음의 얼룩은 걷어내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연민으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심(治心), 즉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오늘 날씨는 최강 한파이다. 이렇게 추운 날은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가 생각난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그 겨울의 시/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 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 산의 새끼 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어제에 이어, 가속노화를 그치게 하기 위해, 복합적응계인 '몸'에 대한 이해를 이어간다. 오늘의 주제는 "고통을 피하려는 본능을 이겨야 한다'는 거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어느 정도의 거리에 도달하면 머릿속에서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자아를 잊고 큰 보상감을 느끼는데, 우리는 그 상태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한다. 마라톤에서 마의 20Km나 30Km를 달릴 때 그 육체적인 고통을 경감해주는 '러너스 하이'를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거다. 최근 과학자들은 극도의 인내를 요구하는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선수의 뇌에서 기분을 전환시키는 화학성분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강도 높은 신체 활동에 동반되는 강화된 보상과 둔화된 진통 감각은 아마도 생존을 위해서 사냥감을 쫓거나 맹수를 피해 달려야 했던 원시 인류의 삶 때문에 자연 선택된 특성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수반되는 활동이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수행한다. 우리는 자신만의 개성을 담보한 독보적인 일을 간절히 원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선물 받는다는 거다 즉, 자신도 모르게 그 일에 지속적으로 몰입하여, 그 몰입은 또 다른 커다란 몰입으로 이어, 타인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개성을 취득하게 된다. 몰입이 '모르핀'이며 '러너스 하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 속에서 보상회로와 진통 회로의 기묘한 거래가 일어나는 거다.
보상과 동기 축의 주인공이 도파민이라면, 진통 축의 주인공은 뇌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엔트로핀과 외부에서 인체로 투여될 수 있는 모르핀이다. 우리는 이러한 물질들이 붙어서 순수하게 오피오이드수용체라고 한다. 생화학적으로 순수하게 오피오이드 신호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투여하면 도파민 신호까지 활성화되고, 도파민 신호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투여하면 오피오이드 신호까지 활성화 된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의 몸에서는 보상회로와 통증회로의 기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도파민 분비를 늘어나 보상을 받으면, 주관적 통증이 경감된다. 반대로 통증을 줄이는 오피오이드수용체(엔트로핀이나, 모르핀)를 늘리면, 보상이 강화된다. 즉 당분에 대한 쾌감이 강화되고 쓴맛에 대한 불쾌감은 약화된다. 이러한 상관관계 때문에 빠르게 보상을 주는 스마트폰이나 당분, 알코올, 쇼핑앱 등에 하루 종일 노출되면 불쾌감과 통증이 함께 찾아 오는 거다. 따라서 끊임없이 즐기고, 소비하고 소유하더라도 마음의 고통은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은 고통을 피해 도망치면 더 고통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고통을 피하려는 본능을 이겨야 한다. 빠르고 쉬운 보상으로만 삶을 채우고 불편함과 고통이 따르는 운동과 바른 자세를 외면하면, 악순환이 이어진다.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주 마른 체형으로, 자신의 차로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 외에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생각해서 극단적으로 적은 열량만 섭취하는 습관이 되었다.
그 결과 근력은 70대 노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바른 자세로 앉기가 힘들고 운동을 할 기운이 없고 시간도 없어서 운동은 전혀 할 수가 없다.
피로와 우울감을 느끼고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소화 역시 잘되지 않아서 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 주로 군것질로 식사를 대신한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보면서 잠을 청한다.
이런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은 성인기 내내 근육 량과 신체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아 극단적인 근골격계 가속노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상태가 유지되면 긴 여생 동안 허리와 목을 치료하는 병원의 단골이 될 뿐만 아니라 당뇨, 비알코올성지방간, 고지혈증 등의 대사질환을 일찍부터 앓을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꾸준한 운동이나 바른 자세, 적절한 식습관 등 일상에 번거로움과 고통이 필요한 이유를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는 어려서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만 가면 되고, 그 다음에는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한 몫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극심한 경쟁 체제 속에서, 20~3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가속노화의 개념이나 만성질환, 신체 및 정신적 기능 저하 등은 멀게만 느껴진다. 당장 이번 주에 마무리해야 하는 보고서, 달마다 갚아야 하는 카드갑이 급하다. 치맥은 클릭 두 번이면 배달된다. 근력운동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따분하다.
겹겹이 쌓여 있는 정신적 걸림돌을 극복해야만 일상생활을 다면적으로 개선하는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희원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을 제안한다.
삶에서 가속 노화에 기여하는 요인들의 잠재적 해악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덜어내는 것이다.
'습관 회로'를 형성하는 것이다. 유익하지만, 신체적, 인지적으로 불편한 것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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