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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3년에도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보며, 마음 비우고, 웃으며 살기로 다짐한다.

224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22일)
올해도 나는 새롭게 주어진 하얀 도화지에 부지런히 점을 찍으며 어떤 상황에 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살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고, 다시 말하면 노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일상을 지배하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한 삶의 구조를 만들려면, 돈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돈을 버는 데 집중되었던 자원을 적절히 재배치 하여야 한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들은 금전적 가치 외에 비금전적 가치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재화의 소비측면에서, 소유적 소비보다 존재적 소비에 치중해야 한다. 존재적 소비란 훌륭한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가까이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내 주변 커뮤니티의 모임에 올해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황량한 섬의 1200미터가 넘는 해안 위의 한 망루에 감금된 세네카가 유배 중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소환하여 공유한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 환경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시칠리아의 외로운 섬에 유배되어 분노에 가득 찼을 그가 그 분노를 이기면서, 자신의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바꾸는 태도와 생각을 나는 존경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나는, 명절 연휴를 보내면서, 외로웠지만 오히려 그 상황이 나의 몸과 영혼을 증진하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으로 '검은 토끼의 해'이다. 계묘년의 상징색인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토끼는 풍요와 번창을 상징한다. 토끼는 한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를 낳는 데서 생겨난 뜻인 만큼, 가정의 안전과 비약에도 비유된다. 토끼하면, "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슬기로운 토끼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숨을 굴을 셋이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뜻으로, 토끼의 현명함을 일컫는 말이다. 토끼는 예로부터 순하고 귀엽지만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다. 별주부전 토끼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간을 뭍에 두고 왔다는 꾀를 보일 만큼 똑똑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지가 필요한 2023년과 걸맞은 동물이 검은 토끼다. 토끼는 음력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2월을 의미하고 시간으로는 농부가 밭으로 나가는 오전 5시부터 7시를 가리킨다. 역학적으로는 부지런한 동물이다. 그러기에 토끼는 만물의 성장과 번창을 상징한다.
 
오늘 아침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2023년에도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보며, 마음 비우고, 웃으며 살기로 다짐한다. 딱딱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길이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이 유연(柔然)하게 갖는다. 세상 일에 다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 그저 남의 탓만 하지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2023 계묘년을 살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 노자 <<도덕경>> 제45장의 5가지 도(道)의 모습이다. 2023년에도 '건너 가야' 할 5 가지의 '고졸(古拙)의 멋'의 세계, 즉 결(缺), 충(沖), 굴(屈), 졸(拙), 눌(訥)의 세계를 늘 기억할 생각이다.
1. 대성(大成)의 세계에서 결(缺)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성약결(大成若缺) - 'Big ME'에서 'Little ME'로; 대성약결이면 기용불폐(其用不弊)라 했다. 즉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이 보여도 그 쓰임이 쇠갈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읽는다. 크게 이루었다고 해도, 잘난 척 하지 말고, 좀 모자란 듯이 행동하여야 그 쓰임이 계속 된다로 읽는다. 완성된 거라도 빈틈이 있어야 그걸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2. 대영(大盈)의 세계에서 충(沖)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영약충(大盈若沖) = 가득함에서 비움으로: 대영약충이면, 기용불궁(其用不窮)이라 했다. 크게 찬 것은 빈 듯이 보여도 그 쓰임이 궁진함이 없다. 도올의 번역은 금방 와 닿지 않는다. 그냥 가득 채웠더라도 빈 곳이 있어야 언제라도 쓸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자꾸 채우려고, 빈 틈을 메우려고 하기보다는 그 틈을 오히려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로 이해한다.
3. 대직(大直)의 세계에서 굴(窟)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직약굴(大直若窟) - 직진, 바른 길에서 곡선, 구부러진 길로; 구부러진 것이 오히려 크게 곧은 것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4. 대교(大巧)의 세계에서 졸(拙)의 세게로 건너가기: 대교약졸(大巧若拙) - 화려와 정교함에서 질박과 서투름으로; 서툰 것이 오히려 크게 솜씨 좋은 것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5. 대변(大辯)의 세계에서 눌(訥)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변약눌(大辯若訥) - 웅변에서 눌변으로; 더듬더듬 거리는 말이 크게 말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큰 그릇은 흙이 많이 들어간 그릇이 아니라 빈 공간이 많은 그릇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을 '그릇 론'이라 부른다. 자신을 큰 그릇으로 만들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모자란 듯이 보이는 것이 크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빈 듯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하고, 구부러진 것이 오히려 크게 곧은 것으로 생각하고, 서툰 것이 오히려 크게 솜씨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더듬더듬 거리는 말이 크게 말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을 떨면 추위를 이겨내지만, 이렇게 더워진 것은 고요함(靜)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맑고 고요함(淸靜)이 '하늘 아래 바름(모든 힘의 근원, The still point)'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일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5유(有)에서 5무(無)로 '건너가기'를 실천할 생각이다.
1. 자족/탐욕(99의 노예)
2. 침묵/TMT(too much talk)
3. 여유/초조, 조급(생존)
4. 다양성/투덜거림
5. 양면성/하소연이나 푸념
 
오늘 아침 사진처럼, 버릴 건 버리고, 높이 오르고 싶다. 그래 이성선의 시인의 <새해기도>를 올린다. 이어지는 복합적응계인 우리들의 몸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다.
 
새해의 기도/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어제에 이어, 복합 적응계인 '몸'에 대한 이해를 이어간다. 오늘의 주제는 '도파민 신호는 빠르게 적응한다'는 거다. 우리 현대인들은 삶을 즐거운 것들로 채우려 노력하지만 늘 공허감을 느끼며, 도달하지 못하는 행복을 신기루처럼 느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극 받는 소유욕과 과시욕을 채우려 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 syndrome) 환자들이 늘고 있다. ‘포모(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라는 공포를 내포한다. 지하철 도착 알림이 들리면 내 쪽 방향이 아닌 데도 남들이 뛰면 같이 뛰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그런 심리 속에서 우리는 불안이나 두려움 넘어, 공포 속에 살고 있다. 포모의 반대 신조어가 ‘조모’(JOMO·Joy of Missing out)'이다. '선택하지 않아서 놓칠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서 생기는 즐거움'을 뜻한다. 가령 결혼하면 잠재적 연인을 찾을 기회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안정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다. 나는 '포모'를 '조모'로 바꾸는 마음 근육을 키우고 있다.
 
어쨌든 자극을 좇고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중독자의 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려면 동기가 필요하다. 어떤 동기가 생기는 경우 실제로 행동을 개시할지 말지를 전두엽의 대뇌피질이 결정한다. 그 결과에 따라 운동피질에서 척수를 통해 근육에 신호를 보내면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떤 행동을 할 때 만족감을 느끼면 도파민과 진통 효과가 있는 엔도르핀의 분비 신호가 작동한다. 그리고 이 만족감을 경험하지 못하면 기대했던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활성화되지 않으므로 좌절감과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때 스트레스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코르테솔이 분비된다. 마음에 화가 차오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두엽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만드는 자제력이 있다. 그런데 중독의 고리가 형성되면 전두엽의 자제력은 약해진다. 그래서 중독이란 어떤 자극원에 대한 의존성이 점차 강해지면서 일상생활과 건강에 해를 끼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보통 우리가 중독이라고 하면 술, 담배, 마약을 떠올리지만, 초가공식품도 중독회로를 잘 형성한다. 사람은 당부하가 높으면서 지방까지 함유된 식품을 좋아한다. 그래 쉽게 중독된다.
 
우리는 중독과 보상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더 강하고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보상(도파민)의 자극제가 계속해서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시대를 넘어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플랫폼인 틱톡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우리는 이러한 자극에 끊임없이 탐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체내 도파민 신호는 자극에 적응한다는 거다. 강한 보상과 만족감을 주던 자극도 반복적으로 경험을 하면 처음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지극제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알코올
- 오피오이드계 진통제: 모르핀, 펜타닐 등이고, 그 극단에 있는 것이 헤로인이다. 이러한 진통제를 남용하면 보상회로를 극단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 코카인류의 각성제: 스트레스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 등을 항진시켜 직접적으로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킨다. 저용량을 사용할 경우 집중력과 순발력을 개선한다.
- 항불안제와 수면제로 흔히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류의 약
이런 자극원에 적응 현상이 진행되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 처음으로 느꼈던 마약의 효과를 이번 주에도 느끼려면 처음에 투약한 양의 두 배가, 다음 주에는 처음 투약한 양의 네 배가 필요한 식이다. 그러다가 의존하게 된다. 다음 그림을 꼼꼼하게 보아야 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더 많은 도파민 지극원을 좇아 보상을 주는 자극을 늘려도 적응 현상 때문에 사람이 느끼는 보상의 강도는 원점으로 회복된다. 이를 우리는 '쾌락적응'이라 한다. 그러면 끊임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고, 물건을 더 많이 사고, 해롭고 자극적인 음식을 더 먹고, 불필요한 여행도 더 하게 된다. 그러나 불쾌와 공허는 사라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도파민 자극이 마구 섞여서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면서 금단 증상이 나타나,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항상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높은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행동은 더욱 심해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해악이 커진다. 그러다가 결국 멀쩡했던 사람도 우울해지고 배가 나오는 상태가 된다.
 
돈을 두 배 네 배 더 벌어서 더 좋은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좋은 차를 여러 대 구입하며 화려한 별장을 여러 채 갖고 거대한 요트와 항공기까지 소유하면서, 매일을 유흥과 향락으로 가득 채워도 해복하지 않다. 그러다가 여러 도파민 자극원에 푹 빠져 살면서 전두엽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지고, 도파민 결핍증상으로 파킨슨병과 유사한 상태에 빠지기까지 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부러워하는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쾌락이 왜 의미가 없는지 깨닫게 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도파민을 좇지 않고 자극을 줄이면 따분하고 불편하지만 더 약한 자극으로 이전과 같은 정도의 보상을 느낄 수 있다.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이 문제는 내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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