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20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의 <<신약성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기도(주 기도문)'와 '산상수훈의 팔 복'이라 생각한다. 오늘 아침 긴 연휴를 앞두고, 우선 '주의 기도문'을 깊게 이해해 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서와 같이 땅에 서도 이루어 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 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 소서. 아멘" (마태 6:9-13, 루카 11:2-4) 한 구절 씩 정밀 독해를 한다.
▪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바치신 기도'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의 의미는 '우주를 주재하시는 분', 즉 '초월적인 분"이란 뜻이 담겨 있다.
▪ '우리 아버지'에서 '우리'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아들' 할 때의 '우리'이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우리 엄마'할 때의 뉘앙스로 '우리 아빠'라고 불렀던 거다.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란 뜻의 그리스어인 '파테르(Pater)'로 기록한 것이다. 하느님을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니까 거리를 두는 거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빛날 때는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때 빛이 난다. 자주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았는가 따져봐야 한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심'이란 아버지 안에 내가 있는 거다. 동시에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거다. 그렇게 서로에게 거(居)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건 나와 하느님의 관계성이다. 나와 하느님의 커뮤니케이션, 거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에서 '땅"은 인간이다. 우리의 내면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막는 장애물은 '나의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 나도 이 기도를 제일 좋아한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산상수훈 속에 담겨 있다. 그래 나는 오늘부터 산상수훈의 여덟 가지를 매일 아침마다 암기하고, 그것으로 최선을 위한 하루의 전략을 짤 생각이다.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육체적인 양식은 빵이고, 영적인 양식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 양식을 때때로 우리가 차단한다. '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을 가릴 때처럼 말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성경 구절을 나는 알고 있다.
▪ 미사에서 '주님의 기도'를 올릴 때는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라고 끝을 맺는데, 왜 '영원히'인가? 이 3차원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3차원 공간을 넘어서면 공간이란 개념도, 시간이란 개념도 부질없는 곳이다. 그 세상에 '영원함'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난 이제부터 사후 세계를 믿을 것이다. 그 영원의 세계를 믿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은 "달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겠다"고 기도한다, 어떤 게 기도인가?기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생계형 기도"와 "이슬형 기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거룩한 일이다. 그들에겐 밥이 하늘이다. 그들은 먹고 사는 생계 속에서 예수님의 구체적인 손길과 사랑을 느낀다. 그래 이제부터 나도 기복적인 기도도 기도로 받아 들일 생각이다. 그러나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슬형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관조나 묵상 등 깊은 몰입에 들어가는 일치형 기도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도(祈禱)는 흔히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기도를 기복(祈福)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는 자신이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경청하는 수고이다. 기도의 '기(祈)'자를 풀이하면, '빌 기'자이지만,
▪ '날카로운 도끼(斤)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도(禱)'는 '목숨(壽)을 자기 앞에 내놓고 구(求)하는 행위'이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기도는 자신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쌓여 있는 적폐(積弊)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배철현의 <<수련>>이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 '주님의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와 하늘이 통해야 한다. 그런데 두꺼운 장막이 쳐져 있다. 그게 하늘장막이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그 장막을 뚫게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게 한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너희가 나에게 도달하고 싶으냐, 그럼 요렇게 해봐라'하고 '노하우'를 알려주신 거다. 초월하라는 거다. 나는 '초월'이란 말을 좋아한다. 내 한계의 담을 넓혀 하느님의 나라까지 다다르려는 초월을 우리는 '신에게 로의 초월'이라고 한다. 초월은 내가 넘는 것이 아니라, 단장이 허물어 지고, 내 영토가 확장되는 거다.
"뒤집어라, 항상 뒤집어라. 상황이나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라. 문제를 거꾸로 바라봐라" 멍거는 항상 인생이나 투자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풀기 위해서 '뒤집어서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실패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책도 읽지 않고 남의 의견도 듣지 않고 단기적인 시각을 가지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수준 높은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면 된다. (찰리 멍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 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 소서. 아멘" (마태 6:9-13, 루카 11:2-4) 오늘은 <주의 기도문>을 되 집어 생각해 본다.
▪ 하늘에 계신 -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하늘에 계신'이라 하지마라.
▪ 우리 -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 아버지 - 아버지,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라 하지 마라.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빛나시며 -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길(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지 마라.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나라가 임하 시오며)' 하지 마라.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지 마라.
▪ 오늘 저희에게 일용 할 양식을 주시고 - 가난한 이들을 본체 만 체 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 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마라.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 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누군 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 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마라.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마라.
▪ 악에서 구하 소서. 아멘" (마태 6:9-13, 루카 11:2-4) -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악에서 구하 소서' 하지 마라.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의 신약성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기도(주 기도문)'와 '산상수훈의 팔복'이다. 전자는 우리 현대인들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한 답을 던지신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위한 8가지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관념적이거나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구체적인 강령(綱領)이다. '팔 복'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내일부터 설 명절 연휴이다. 해마다 오는 명절이지만 올해는 유독 가족의 품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바깥세상이 너무나 암울하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흔들리고 물가는 올라가고 돈은 구하기 힘든 세상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인생 계획이 어그러져 앞날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곳곳에 너무나 많다. 한국인은 설을 두 번 쇤다. 양력설은 양력의 첫날이라서, 또 음력설은 전통의 의미가 있어 챙긴다. 한때 신정, 구정이라며 음력설을 버릴 인습처럼 낮춰 부른 적도 있었다.
어쨌든, 벌써 세밑의 끝이다. 해가 아닌, 달을 기준으로 1년을 계산하는 것이 음력이다. 음력으로 한 해가 끝날 무렵, '설을 앞둔 섣달그믐께'를 '세밑'이라고 한다. '한 해가 끝날 무렵'을 일컫는 특별한 말은 참 많다. 널리 알려진 '연말' 말고도 궁랍(窮臘), 모세(暮歲), 세만(歲晩), 세모(歲暮), 세저(歲底), 숙세(宿歲), 연종(年終), 세말(歲末), 세종(歲終), 역미(曆尾) 등이 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대부분이 한 해의 끝을 말하고 있다. 이 세밑에 주님의 기도를 다시 소환한다. 그러면서, 연후 기간동안,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 볼 생각이다. 그리고 샹뱌오(현 독일 막스 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 소장)의 <<주변의 상실(방법으로 서의 자기)>> 책을 꼼꼼하게 읽을 거다.
지은이의 가장 인상적인 말은 "저는 자신감(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안정감 있게 해낼 수 있다는 마음), 독서, 개방적인 대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이다. 이게 "방법으로서의 자기"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의 하나로 자기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삼자는 거다. 여기서 자기는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이다. 내 표현 방식대로 하면 관계와 활동을 통해 새로워진 '나'를 연구의 방법의 출발점으로 삼는 거다. 그러면 이 시대의 모순에 대해, 더 나아가 자신에 돌아보고,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기이한 경험을 해보자는 거다.
"진정한 영웅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생활의 매일매일을 바꾸어 나가는 사람이다." "근대성을 중심으로 사고 하면 주변과 중심이 하나의 대립 관계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욕망이 아주 강하다. 당연히 이런 욕망은 능동성을 극대화하기에 좋다. 그러나 뒤틀린 욕망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일단 중심부에 진입하면 많은 이가 부패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도구로서의 사회과학의 첫 번째 활용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이고, 그 다음이 사회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학자나 지식 대중이 자기 자신이나 주변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부근', '주변'을 소멸시키는 현대사회에 대한 경종인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도, 몇 일전 대청호에서 늦은 오후에 찍은 것이다. 오늘 시와 어울린다.
세밑/신경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무엇인가
눈도 귀도 멀게 하는
해도 달도 멎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인가
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
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꿈속에서 다시 뒤돌아본다
삶의 뜻으로
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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