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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동네가 미래이다.

223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10일)

나는 이 열 가지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집은 깔끔하지만 파편화된 삶을 산다는 거다. 동네에 산다는 것은 공연성을 갖는 것이다. 이웃에게 나의 삶을 드러내는 거다. 우리 세대는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던 시절을 살았지만. MZ 세대들은 모른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세계화 시대를 살고,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 세상을 준비하는 그들에게는 익명성과 소외감이 기본이다. 핵가족도 해체되었다. 이젠 결혼도 잘 안하고 애도 잘 안 낳는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대안적 공동체를 확보해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대전 유성구 신성동의 <우리마을대학> 공동 브랜드이다. <르 빌라꼬>라 읽으면 된다. 프랑스어로 마을이라는 뜻의 르 빌라주(Le village)와 협동이라는 cooperation을 합성한 거다. 이 브랜드로 우리 마을에서 만든 여러 제품들이 나온다. 마침 유성구 고향기부제에서 답례품으로 선정되었다. 동네가 미래이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모여 살면서 느슨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동체가 미래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장거리 이동이 줄고 온라인 소통이 늘어남에 따라 동네 기본 활동에 대한 욕망은 늘어날 것이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지역화는 불가피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 지역 재생을 고민할 시간이다.

그리고 통계청에 의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에 10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후에도 가파르게 증가하여 생산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는데 걱정이다. 그때 나는 초 고령 노인일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노후 불안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노인빈곤율은 늘 세계 1위이다. 가난하면 삶 자체가 움츠려 든다. 어디 외출하기도 어렵고, 몇 천원의 병원비도 부담이다. 노인 사이의 교류도 한정된다. 우리 마을 단지마다 있는 경로당에도 매주 두세 번의 식사 제공 시간에만 어르신들이 주로 모인다. 노인이 늘고 있다는데 정작 지역 일상 공간에서는 소수이다.

다른 통계를 본다. 대한민국 생명표를 살펴보면, 1960년 52.4세이던 평균 수명이 2000년엔 75.9세로, 40년 사이에 무려 23.5세가 늘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평균 수명이 1년에 반 살 정도 씩 늘어난다. 이를 토대로 ‘20세기 삶의 공식: 30+30+30’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부모 보호 아래 30년 살다가, 부모 노릇 하며 30년을 살고, 환갑 이후는 자투리 인생, 즉 여생(餘生)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갑 후 30년을 더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년 이 지난 현재는 21세기 삶의 공식을 ‘30+30+40’으로 바꿔야한다고 하는 이가 많다. 정말 장수 시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미리 노후 준비를 해 두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미래가 불안하면 현재도 행복하기 어렵다. 노인의 삶이 이리 힘든데 미래 노인인 청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령자 소득을 위하여 ‘연성 일자리’ 망을 만들어가자. 행정이 위로부터 설계하는 노인일자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아래로부터 짜가는 사회적 역할망이다. 현대사회의 생산력이면 점차 노동시간을 줄여 오후에는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어울려야 한다. 지역에 주민들이 모이면 돌봄, 문화, 체육, 평생교육, 도시재생 등 새로운 역할들이 생길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성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협동하는 참여 일자리이다. 또한 요양 돌봄을 완전 재설계하자. 지금의 소규모 상업적 체제를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요양 돌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므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임종기 인프라도 절실하다."

연성 일자리와 사회적 돌봄, 금세 달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담대한 의지로 차곡차곡 추진해야 한다. 특히 모두 우리 동네에서 이루어야 하는 숙제임을 주목하자. 근대 혁명이 ‘국가'를 형성했다면 21세기 혁명은 ‘마을'이다. 지금도 늦었다. 노후 대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게 내 생각이다.

중국 학자 샹뱌오는 자신의 <<주변의 상실>>에서 이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힘은 다음 네 가지라고 보았다. (1) 자기 자신 (2) 주변 (3) 생활, 특히 일상 생활 (4) 로컬, 특히 골목이다. 이 책의 부제가 "방법으로서의 자기" 개념이다.  여기서 '자기'는 자기 삶의 구체적 경험이자 자기 삶을 구성하는 '주변'과 '생활' 그리고 보다 확장된 '로컬(지역)'까지 포함한다.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말이 어렵다. 잊고 있다가, 권선필 교수의 페북 담벼락을 읽고, 책을 다시 꺼내 지난 주일에는 하루 종일 읽었다. "방법으로서의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권 교수가 인용했던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우리의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 영적 건강을 확보하려면 자신의 에너지가 지나쳐서 지치거나, 떨어져서 쓰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울타리를 수리하고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일은 누구도 해줄 수 없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본질적 행위 중 하나이다."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심리학자 아들러가 말하는 '과제 분리'가 소환된다. '과제 분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자는 거다. 그리고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거다. 누구의 과제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생을 좀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방법은 타인의 과제를 비우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저기 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긋는 거다. 나의 기대와 신뢰를 받는 상대라도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일 뿐이다. 단지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는 표시하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 저래라"하며 다른 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권 교수의 글을 좀 더 공유한다.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삶의 울타리를 더 잘 가꾸려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지고 있다면 울타리를 너무 넓게 친 것이고, 지쳐 쓰러져 있다면 경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특히 감정과 생각의 울타리에 혼란이 오면 그 여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다음 한 주는 샹뺘오의 책을 자주 공유할 생각이다.

세상은 우리들에게 너무 추상적인 담론에 빠지게 하여 자기의 생활을 잊게 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수단 그 자체를 넘어 특정한 의미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찾아 서술하는 것이 서사이다. 자신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Correctness)' 문제는 이 다음이다. 의미 이야기를 좀 한다. 의미는 가치인데, 그 가치는 차이에서 나온다. 그 차이를 만들려면 질문해야 하고,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가정을 흔들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지각이 일어나 확장되며, 자신이 갖고 있는 개념을 새로 만드는 거다. 거기서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가치이고, 그 가치가 의미이다. PC(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는 오늘 시를 공유한 다음 덧붙임으로 옮긴다. 

다음과 같은 샹뱌오의 문제 제기에 주목한 거다. '자기'의 반대 편에는 담론, 중심, 국가가 있다. 그러니 담론, 중심, 국가에서 시작되는 엉성한 이야기들을 비판하면서 자기, 주변, 생활, 로컬에서 출발하는 명징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담론은 너무 크다. 로컬의 문제에 비하면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 문제는 속 빈 강정이다. 그리고 오늘-여기-지금에 대한 명철한 인식이 없다. 질문이 없는 거다. 지금 있는 이곳에 뭔가 문제가 있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거다. 지금까지 자기, 주변, 생활, 로컬 등은 비 핵심적인 주제였다. 이에 비해 거대 서사가 판을 쳤다. 이젠 내 주변으로 돌아 와야 한다. 강수돌 교수의 칼럼 결론이 내가 생각했던 거다. 내 힘을 키워야 한다.

이젠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삶의 자율성(power in people)을 재발견해, ‘강자 동일시’를 그만두는 것이다. 여기서 '강자'는  '전문가'이다. 그리고 자본이 아닌 사람의 기준, 기계가 아닌 생명의 기준으로 삶의 자율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거다. 그리고 이해득실(interest) 관점을 경계하면서 간디 선생이 말한 ‘마을 공화국’을 만들고 재미나게 살면 된다. 이 것만이 '전문가' 독재가 초래하는 삶의 소외를 극복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람 답게 사는 길이다. 삶은 결코 가볍지도, 마냥 무겁지도 않다. 다만, 내면의 정직한 느낌(feeling)을 속이지 않고, 책임성(responsibility) 있게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강자 동일시'라는 말은 강수돌 교수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그 책은 과잉경쟁 속에서 일 중독과 돈 중독에 빠진 한국 사회의 '질병적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난리이지만, 결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 돈과 성공으로 향한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자기계발서의 홍수 속에서, 우리 시대의 욕망에 정면으로 맞서, 다르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말한다. 


새해의 기도/손희락
 
소유하기보다
버리게 하시며
움켜쥐기보다
놓을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쇠사슬 무거워  
하늘 날 수 없으니
탐욕의 굴레 벗은 내 영혼
단 한 번이라도 자유하게 하소서

악취로 썩어가는 옷들 
벗어던지게 하시고
최초 에덴의 벌거벗음으로
복귀하게 하소서

굳이 걸쳐야 한다면
비바람 막을 수 있는 
사랑의 옷 한 벌
그것으로 족하게 하소서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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