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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부러워하느니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게 낫다."

216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1일)

오늘 아침 마음을 추수리고, 몇일 전에 다짐했던, <나를 깨우는 하루 한 문장 50일 고전 읽기>라는 부제의 <<어른의 새벽>> 읽기 2회를 우선 한다. 먼저 <<회남자>>에 나온다는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부러워하 느니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게 낫다"는 문장부터 시작한다. 꿈과 이상은 아무리 높고 멀다 해도 꾸준히 작은 실천을 하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는 거다. 왜냐하면 먼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 여기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거다. 그리고 그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어른의 새벽>> 저자 우희경은 앎에 대한 욕구는 많았지만, 무엇을 읽어야 하고, 읽는다 해서 바로 익히게 되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에서, 우선 <<논어>>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한다. "삶의 그물을 짜듯 필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특히 고전을 필사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말한다. "필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한 줄기 희망"이었고, 결국은 "길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하루하루 그물을 짜듯, 내 속도에 맞게 한 구절 두 구절 필사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고"고 했다.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아는 만큼 본다고, 책도 기본 문해력이 있어야 한다. 의도를 갖고 책을 읽는 것은 이미 많은 책을 일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밑줄을 치고 필기를 하면서 읽는 것도 또 하나의 좋은 책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 또한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책을 읽을 때는 가능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책을 읽을 때는 쉽지 않다. 마치 한 걸음 걸을 수도 없는 사막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걷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럴 때 필사가 초행길의 안내자와 같은 역할 한다고 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아침 <인문 일지>도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필사는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일정하게 써내려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비웃지 않고 끝을 보게 해준다. 이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것처럼, 필사를 한 번 한 책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남자>>의 새로운 문장을 또 하나 소개받았다. "새를 잡는 것은 그물의 한 코이다. 그런데 지금 한 코만 있는 그물을 만들면 때마다 새를 잡지 못하게 된다." 글 한 구절만 찾기 위해서 절대 한 구절만 읽어서는 안 된다.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까닭은 장차 핵심적인 요점을 말하는 것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사는 의미가 있다. 필사는 중요한 것만 찾아서 줄을 치고 이해하는 것보다 더디고 때로는 우둔해 보인다. 그러나 전체를 넓게 읽어야 다시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필사는 언제든 새를 잡을 수 있는 넓은 그물코를 짜는 것에 가깝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주역의 다음 문장도 아침에 큰 깨달음을 준다. "지혜를 높고 넓게 하되 하늘처럼 하며, 실천은 땅과 같이 비근한 데로부터 시작한다." "비근한"이란 말을 사전에 찾아 보았다. "흔히 주위에서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깝다"이다. 저자에게 필사가 그물을 짜며 준비하는 비근한 발걸음이었다고 했다. 당장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지만, 그녀는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속도에 맞게 나아갈 수 있었다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한다. 나의 <인문 일지>가 길고 어려워 읽기 싫다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 지각의 지평이 왜소한 사람에게도 길잡이가 되는 거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필자는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사소한 실천이지만, 나는 필사를 하면서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에도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내 삶의 목표가 지평선 위에 있는 뜬 구름 같은 것이라고 해도 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만이 나를 그 목표에 가깝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발터 벤자민(Walter Benjamin)의 잊지 못할 문장을 여기서 소환한다. "역사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진보도 항상 그때 그때 일보만의 진보이며, 2보도 3보도 n+1보도 결코 진보가 아니다."(<<아케이드 프로젝트>>)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1보를 걷지 않으면, 2보도 3보도 n+1보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1보를 걷지 않고서 꿈꾸는 2보도 3보도 그리고 n+1보도 단지 백일몽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말해 2보 보다는 3보, 3보 보다는 4보를, 아니 100보를 꿈꾸는 순간, 우리는 1보 내딛는 것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다. 한걸음 걷지 않은 2보, 3보는 관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당당하게 자신이 한걸음부터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걸음을 내던지 그 길을 긍정해야 한다.

어제는 할로윈(Halloween, hollow는 앵글로 색슨어로 '성인') 데이였는데, 지난 주말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로 조용했다. 나는 동네 꼬마들이 분장을 하고 오면, 건네 줄 사탕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한 팀도 오지 않았다. 원래 할로윈 데이는 매년 10월 31일에 기이한 분장이나 복장을 갖춰 입고 미국에서 하는 축제이다. 오늘 11월 1일의 만성절(죽은 모든 영혼들을 기리는 날)을 앞두고,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는다는 것이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이웃집을 찾아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다. 이 때 외치는 말이 "trick or treat!"이다. "과자를 안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 되었다. 그러나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지역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 시키는 축제로 만들어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축제의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어째든 이번 한 주는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주간이다. 우리는 이를 만성절(萬聖節,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ll Saints Day, 프랑스어로는 Jour de Tous Saints(뚜쌩)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오늘 11월 1일이 공휴일이다. 많은 이들이 묘지를 찾아가 대리석을 닦고, 꽃을 갈아준다. 더 춥기 전에,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시간을 내는 것은 도리라고 본다. 나도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먼저 하늘 나라에 간 내 처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을 기억하는 한 주를 보낼 생각이다. 

벌써 11월이다. 11월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나태주, <11월>) 또 하나 더 있다. 이호준 시인의 <11월>이다. "괜히 11월일까/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따뜻한 눈빛 나누라고/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끝내 사랑하라고/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11/나란히 세워 세워놓은 게지."

나태주 시인은 우리 동네 어른이다. 그리고 시인의 모습과 내 모습이 거의 비슷하여, 사람들은 나보고 "나 시인님" 하면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더 웃기는 것은 나태주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페이스 북에 오르면, 내 포스팅에 올라와 어제 함께 하신 사진이라고 뜬다. 11월이다. 시인은 11월을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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