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일기
(2021년 8월 10일)

마을 활동이 점점 확장된다. 그럴수록 지난 4년 전에 먹었던 마음을 다시 소환한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신영복) 이상은 마음 속에 지니고, 실천은 현실을 존중하는 우파적으로 하라는 말로 나는 이해 한다. 생각은 비판적으로 하되, 실천은 현실주의자처럼 하라는 말로 나는 이해한다. 생각은 좌파처럼 하고, 행동은 우파처럼 하라는 말로 바꾸어 본다. 이 말은 전통과 주어진 현실의 조건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속으로는 좌파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현실에서 말과 행동은 우파적으로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실천을 해 그 뜻을 이루려면, 함께 일하거나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이해관계를 충분히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을 존중하는 우파적 정서이다. 이론이나 생각은 좌파적으로 하라는 말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지양(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어떠한 것을 하지 아니함. 피함, 또는 하지 않음으로 순화)하여 보다 나은 미래로 변화시켜 나가려는 것이다. 모든 실천도 그러한 이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실천과 이론은 함께 간다는 점이다. 실천의 경험을 정리하면 이론이 되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이룰 수 없는 이상은 반드시 하나씩 가져라!" 문제는 우리 나라 우파라는 하는 이들은 '진짜' 우파(右派)'가 아니다.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사적 이익'과 권력에 '찌든' 집단으로 나는 간주한다.
좌파(左派)는 무엇이냐? 공부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좌(左)를 보면 '공(工)' 자가 들어가 있는 게 보인다. 공부한다는 뜻 아닌가.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단 책을 좋아해야 한다. 우파는 뭐냐? 우(右)를 보면 입 '구(口)' 자가 들어가 있다. 입(口)은 먹으려고 있는 것이다. 우파는 먹는 것을 중시하는 노선이 되는 셈이다. 옛날 어른들이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이 밥숟가락을 잡을 때 왼손으로 잡으면 혼을 내고 꼭 오른손으로 잡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먹다 보면 돈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파는 돈과 먹을 것을 중시하는 성향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 좌파 또는 좌익(左翼, left spectrum)이니 우파 또는 우익(右翼 right spectrum)이니 하는 말은 정치 성향을 좌우로 분류한 체계이다. 대체로 사회적 평등을 옹호하는 입장을 좌익, 기존의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을 우익이라 한다. 이 말들은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 의회에서 혁명파는 좌측, 왕당파는 우측에 나뉘어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념이 다양한 사회에서는 좌파, 우파의 구분이 대개 추구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좌익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사회의 진보를 주장하고, 우익은 경제적 자유와 사회질서의 유지를 옹호한다. 나는 가치 추구면에서 좌파이다. 왜냐하면 나는 현상을 유지하자는 보수보다, 길 위에 나아가자는 진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마드적인 삶을 추구한다. 안주, 정주(定住)보다는 유목적인 삶을 더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보도 엑셀과 브레이크가 공존할 때 가능하다. 그냥 나아가기만 한다고 진보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이다. 유럽의 다양한 정치 지형에 비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 해오고 있는 구도라는 말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것을 '수구(守舊)-보수(保守) 과두지배(oligarchy)라 불렀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 대 진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대로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이 자유주의이다.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래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자들은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한 사람의 삶은 전적으로 그 사람이 가진 시선의 높이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선의 높이 까지만 살다 간다. 우리들의 문명은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 가장 아래 층은 구체적인 물건들로 채워진다.
- 둘째 층은 구체와 추상 사이에 있는 제도들로 채워진다.
- 가장 높은 층은 추상적인 형태를 띠는 철학이나 윤리나 문화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제도는 인간이 사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물건들이 생산되고 삶이 영위된다. 풍요롭고 정의로운 삶은 그런 것들이 보장되는 길(=제도)에서 만들어 진다. 그런데 제도는 철학이나 문화적 지향에 의해 결정된다. 제도는 길이다. 길을 한문으로 도(道)라면, 이 세상 최고 도는 우주, 아니 자연의 도이다.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이런 식의 길을 내고, 저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저런 식의 길을 낸다. 풍요롭고 정의로운 삶은 그런 것들이 보장되는 길(제도)에서 만들어진다. 자연에 가까운 길로 살고 싶은 것이 '낙도(樂道)'이다. 그 길을 즐기는 것을 나는 권한다. 제도도 여기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런 꿈을 꾸는 사람은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제도 안에 머물러 있다. 그래 오늘 아침시로 김승희 시인의 <제도>를 공유한다.
제도/김승희
아이는 하루 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
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깔이 나갈까 봐 두려워한다.
누가 그 두려움을 가르쳤을까?
금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비도 꽃도 구름도 강물도
모두 색칠하는 선에 갇혀 있다.
엄마, 엄마, 크레파스가 금 밖으로
나가면 안되지? 그렇지?
아이의 상냥한 눈길엔 겁이 흐른다.
온순하고 우아한 나의 아이는
책머리의 지시대로 종일 금 안에서만 칠한다.
내가 엄마만 아니라면
나, 이렇게 말해버리겠어.
금을 뭉개 버려라. 랄라. 선 밖으로 북북 칠해라.
나비도 강물도 구름도 꽃도 모두 폭발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다. 랄라.
선 밖으로 꿈틀꿈틀 뭉개 뭉개 꽃 피어나는 것이다
위반하는 것이다. 범하는 것이다. 랄라
나 그토록 제도를 증오 했건만
엄마는 제도다.
나를 묶었던 그것으로 너를 묶다니!
내가 그 여자이고 총독부다.
엄마를 죽여라!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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