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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30년 전/서정춘 -1959년 겨울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주역』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래 가려면 통해야 한다. 통하려면 귀가 밝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맞추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잘 들어야 한다.

어제 저녁에는 <우리마을대학>의 학장님들과 워크샵을 했다. 먼저 우리들 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약속 시간 잘 지키기와 문자 메시지에 빨리 답하기". 그러나 강사님은 이 규칙에 더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해 주었다. 공동체가 잘 되려면,
-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 모든 구성원이 대화의 안전지대에 있어야 한다.
- 원하는 결과(비전/목표)를 먼저 정하고, 그것들이 효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어떻게 하면(how)  되지?" 를 질문한다.
- 그리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도록 팀워크를 다진다.
사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는 이젠 쉽지 않다. 이젠 창조는 연결이고 융합이다. 융합을 위해 우리는 팀워크로 공동체를 만들어 일해야 한다. 각각의 개인은 이를 위해 오감감의 지평을 확장 시켜 주변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나는 워크숍을 마치고, 내 이웃들과 즐겁고 행복한 마을 만들어, 지금 살고 있는 이 마을을 나의 고향으로 만들 것을 다짐했다. 고향은 단지 단순히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오랜 시간 전의 동네가 아니다. 고향을 한문으로 쓰면 옛 고(古)를 쓰지 않는다. 이렇게 쓴다. 故鄕. 고(故)자가 '연고' 고자이다. 이 '고자'는 근거이고 원래이고 본래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고향(故鄕)이란 나의 본래의 모습, 원래의 나가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는 내가 '일반명사'로 이탈하지 않고, '고유명사'로 살아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내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건 "30년 전" 이야기이다. 이제 고향으로 산다는 것은 '나'로 사는 일이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두지 못하고, 그 주인 자리를 화장기로 꾸며 놓은 뻣뻣한 가면에 양보하고 사는 사람은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다.

30년 전/서정춘
-1959년 겨울                                                          

어리고 ,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 곳이 고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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