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몇 일 전부터 우리 사회의 어젠다가 '세대교체'가 되었다. 그것보다는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삶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의 방향이 길을 잃고 있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사회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어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10대 아이들의 새상 사는 문법, 공고한 학벌 의식 두렵다." "아이들은 정치든 뭐든 '나이보다 실력'"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실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버드대 나왔잖아요,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죠?"라 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실력은 스펙의 동의어이다. 본디 영어단어 스펙은 specification에서 나왔다.이 말은 기준이 규격, 사양 등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오로지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계량 화된 지표로 번역된다. 학벌이나 자격증, 하다못해 토플과 토익 점수도 실력을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스펙이 변변치 않은 자는 고(高)스팩을 갖춘 자를 리스팩(respect)해야 한다. 만약 그를 시샘하거나 남들 앞에서 험담하면 주위로부터 대번 지질한 자로 낙인 찍힌다. 아니꼬우면 열심히 노력해서 레벨을 높이면 된다고 조언한다. 이것이 요즈음 아이들의 세상 사는 문법이다." 기사가 올라 오면 늘 읽는 오마이뉴스의 서부원 기자의 글이다. 그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것 같다.
걱정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애초 기회가 평등하지 않으면 과정이 공정할 수도, 결과가 정의로울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들은 그 인과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고 여길 뿐이다.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고, 각 가정에서 은근히 그런 가치관을 심어 준 것 같다. 그들은 기회의 평등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도 없는데 무슨 기회의 평등이냐는 것이다. 그저 과정만이라도 공정하길 바란다. 도리어 정의로운 결과인가를 따지기 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걸 정의롭지 않다고 여긴다. 각자 출발선이 다른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오로지 결승에만 쏠려서이다.
서기자는 머지않아 학벌이 아무런 효용이 없는 시대가 온다고 외쳐도 소용 없다고 했다. 그말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아이들은 자신을 '현실을 외면하는 철부지 이상주의자'로 보는 차가운 시선 뿐이라 했다. 실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고 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준석이 주장하는 실력에 따른 차별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니 참 가슴 아프다. 인문학이 절대 필요한 시기이다.
왜 우리는 실력과 스펙에 목을 매달까? 아마도 행복하기 위해서일 거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자동으로 반응할 뿐, 이 공식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느덧 '행복'이라는 시작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만 남아 있다.
인문운동가의 주장은 이런 거다. 우리나라의 지본주의는 속도와 완급, 복지를 절충해가면서 도입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식민지였기에 자본주의는 더욱 야만적이었다. 게다가 해방 이후 본격화한 경제 발전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적 확산을 의미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사전 예방적 의미의 작업이었다. 우리 내부의 행복 증진이 아니라, 체제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경제 발전이었다. 6·70년대 질주하던 북한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남한은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천민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다르게 살려고 해야 한다. 자신의 잘난 점을 과시하고 남의 약점을 발견해 짓밟으면서 상대를 이겨 출세하는 식의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아야 한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라고 하지만, 우라는 기업의 목적이 인류의 행복 추구이길 바란다.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기업이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정당의 목적이 국민들의 행복이길 바란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당이 집권할 것이기 때문이다. 20대의 젊은 야당 대표의 당선을 두고 인문운동가가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다./그저 행복하게 살라는 한가지 의무 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시를 공유한다. 18세기 프랑스 작가인 디드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수많은 타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게 아마도 사랑이라는 능력일 거다.
행복해 진다는 것/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게 살라는 한가지 의무 뿐
이 세상을 사는 이유지
온갖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깨우침을 갖고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지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기 때문
착하게 산다면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마음에서 조화를
찾는다면
그러니까 사랑을 한다면
이것이 이 세상의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헤겔도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사랑이라는 능력이지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이라는 능력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조화로운 영혼의 음악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올바른 세상이었지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i.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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