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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쉰이 되었다/이면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시대 변화를 그저 정치·경제·사회의 틀로 분석하기 바쁘지만 이 셋을 모두 아우르는 큰 우산은 다름 아닌 문화다.

어제부터 이면우 시인의 시를 공유하고 있다. 난 예순이다. 이 시인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 오늘 아침 시는 아마 그가 자신의 나이 "쉰"에 쓴 시 같다.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맨 마지막 구절에서 가슴에 빗금이 그어진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따끈한 국밥 한 그릇 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작가들은 언어에 아주 민감하다. 소설가 백영옥은 이번 주 글에서 영화 <올 더 머니>의 한 대사를 소개하였다. "'부자로 사는 법'을 썼을 때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꾸라고 하더군. '부자가 되는 법으로'. 그래서 내가 그랬네. 부자가 되는 건 쉽다. 하지만 부자로 사는 것, 그건 이야기가 달라. 부자가 된 사람은 자유가 주는 문제와 싸워야 하거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 심연이 펼쳐지지. 나는 그 심연을 봤네. 사람들을, 부부 관계를, 그 무엇보다 돈이 주는 자유가 자식을 어떻게 망치는지."

'부자로 사는 법'과 '부자가 되는 법'은 다르다. 소설가 백영옥에 의하면, 돈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자유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실제로 사업에 성공해 큰 부를 이룬 어느 한 지인에게 돈이 많으면 뭐가 좋은지 물으니, 은퇴한 그의 대답은 의외로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부의 결과는 좋았으나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돈을 벌어 욕망을 실현하는 기쁨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의 자유가 더 좋다 말했다 한다.

소설가의 주장처럼, 돈에 대한 건강한 관심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늘 관성적으로 던졌던 '부자 되는 법'이라는 질문을 한 번쯤 바꿔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부자로 사는 법'이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한 주간 모아 둔,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문장들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어제 아침은 일요일인 줄 몰랐다. 그래 오늘 아침 한 주간 모은 것들을 공유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지난 번 아산의 영인산에 가, 그곳의 산림 박물관 옥상에 피어 있는 개망초를 찍은 것이다. 줌으로 잡은 것이다.

오늘, 쉰이 되었다/이면우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 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 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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