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3일)

어제는 나는 <<도덕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제25장을 읽다가 멈추었다.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말 그대로 하면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 온다'는 말에서 멈추었다. 노자는 도를 억지로 개념화하여 '크다'고 하는데, 이 '크다'는 말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전체 우주의 존재 원칙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전체는 가만히 있는 정지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부단한 운동 속에 있다고 보았다. 또 하나 빠뜨리는 곳이 없는 부단한 우동을 방향은 먼 속을 향하여 있는데, 이는 어떤 극한을 향하여 간다는 뜻으로 보았다. 사물의 발전은 극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그 극점에 이르러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거다 이것이 노자가 보는 전체 자연의 운행 모습이었다.
'대(大)→서(逝)→원(遠)→반(反)'은 전체 운행의, 즉 도의 운행을 나타내는 전략 아래 동원된 유기적 의미 연관 고리들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도가 마치 하나의 물건과 같이, 비록 원형이나 리듬성, 귀환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도는 혼돈의 무엇이며, 독립 주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에 잡힐 수 없는 무형, 무명의 전체이다. 따라서 그 전체의 방향성은 원형이라 할지라도 단선으로 표시될 수는 없다. 순환을 반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닌 창조의 리듬이다. 순환이 없는 창조는 없다.
나는 순환에 주목한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다.
좀 어렵지만 '비우자'는 말이다.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힘으로 욕망의 재배치를 하자는 거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노자의 말 중에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반대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순환이다.
우리의 에너지도 기(氣)와 혈(血)의 순환으로 공급되며, 우리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그 순환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항상 일정한 리듬을 타고 순환하는 것이지만,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계절의 순환도 마찬가지이다. 노자의 언어는 대(大, 큼)에서 '반(反)으로 끝난다. 시작과 끝이 없다. 그렇다면 진보는 없는 것인가? 이 문제는 내일 사유를 더 이어간다.
요즈음 길가에는 찔레꽃이 만발했다. 향도 강하다. 찔레 동생이 '달래'란다. 몽골에 잡혀간 언니 찔레가 동생이 보고 싶어 찾아왔건만, 이미 죽은 뒤였다. 찔레는 자신의 동생인 달래의 눈덮힌 무덤가에서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그 이듬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었고, 그리움이 찐한 향기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 찔레꽃은 하얗고, 향이 진하다. 그래 찔레 꽃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김용택 시인의 <봄날은 간다>의 일 부분이다. 시인은 이렇게 찔레꽃을 말하고 있다. "찔레꽃//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사내 손목을 잡아끌고/초저녁/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둥근 달을 보았느니라/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내가 알고 있는 찔레꽃 노래는 여러 개이다. 옛 가수 백난아가 부른 소위 '뽕짝", 트로트이다. 주현미도 이 노래를 잘 부른다. "찔레꽃 붉게 피는/남쪽 나라 내 고향/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학창시절 막걸리 주전자를 놓고 소리 높여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다시 불러 보니 가사가 이상하다. 붉은 찔레꽃을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유학시절에 즐겨 들었던 장사익의 <찔레꽃>도 있다. 슬픈 노래이다. "하얀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 언젠가 그의 콘서트 장에서 들었던 멋진 기타 반주가 지금도 아련하게 들린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동요 <찔레꽃>도 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이연실이라는 가수도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유튜브로 금방 이 노래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찔레꽃 식당/이안
오월이 되자 숲속 동네에
찔레꽃 식당이
새로 문을 열었다
하얀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
손님이 많이 들게 생겼다
첫 손님 거미는
거미줄로 의자와 식탁을 짜 놓고
어서 싱싱한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문 열 준비를 하는
찔레꽃 식당 2호점, 3호점, 4호점……이
이웃에 줄지어 많고도 많으니
5월 한 달은 찔레꽃 식당 골목에서
밥을 대어놓고 먹어도 좋겠다며
주방의 손길이 재바르지 않아
밥이 좀 늦는 게 흠이긴 하지만
하얗고 달금한 향이
이만큼 가득한 식당은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겠다며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보르헤스의 말이다. " 우리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어딘 가에 나에게 정해진 섭리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 지금의 내 삶에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온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1) 공부 (2) 건강 (3) 신뢰
(1) 공부: 거기서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 , '3 지(知)'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식은 주로 정보, 물질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 그리고 그걸로 인간이 누리는 부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미숙은 이걸 '기술지(技術知)'라 부른다. 지성은 '문명지(文明知)'라고 정의한다. 물질을 알고 부를 확장하면 그걸 어떻게 나누고, 이걸 어떻게 인간 삶에 적용할까, 이 문제가 부각되는데, 그럴 때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지성이다. 기술지와 접속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이때 필요하다. 그 다음은 지혜이다. 인간은 천지를 연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 너머가 궁금하다. 그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 묻게 된다. 그리고 지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질문하는 것이 지혜이다. 이 영역으로 가면 기술지와 문명지처럼 손에 잡을 수 있는 게 없다. 거대한 무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생명과 우주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되면 그 보이는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린다. 그걸 지혜라고 부르는데, 동시에 영성(靈性)이라고도 한다. 그걸 인류학적 용어로 쓰면 '자연지(自然知)'이다.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를 잘 분류해 보았다.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을 알려면 이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의 인드라망 순환을 보아야 한다. 그 순환을 통해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의 방향이 결정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인간다운 앎은 지혜, 영성이다. 그래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기술지와 문명지도 그 활발한 역동성을 갖게 된다. 왜 그런 가? 지식은 계속 기술을 확대해서 인간 마음에 소유에 대한 증폭, 곧 욕망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많을 것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 지는 거다. 이 마음을 해체하는 게 지혜인데, 이 지혜가 개입하지 않으면 무조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거다.
한편 지성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와 토론, 논쟁, 교육 등을 주도하는데, 이 지성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강화되는 쪽으로, 그래서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식으로 나가게 된다.
(2) 건강: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10가지를 나열해 본다.
① 밥을 먹는 시간의 간격은 5시간이 적당하다. 왜냐하면 밥을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 소화, 흡수되는 시간은 약 5시간 정도라고 하기 때문이다. 매끼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하도록 한다.
② 식사시간을 좀 길게 한다. 그리고 요리는 짧게 한다. 왜냐하면 음식은 가능한 짧게 조리해야 맛과 영양소를 파괴시키지 않는다. 야채는 되도록 생으로 먹고, 식사를 할 때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 것이 좋다.
③ 밥 먹기 30분 전이나 밥 먹은 2시간 후에 물을 마시도록 하고, 식사 중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④ 과식은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과식을 할 경우 불필요한 영양분이 배에 지방으로 축적되어, 각종 대사성 질환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간이 나쁘거나 위장 장애가 있는 경우 반드시 과식을 삼가 하는 것이 좋다.⑤ 늦은 시간까지 회식을 하거나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야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로 인해 아침에 몸이 무겁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얼굴이 붓는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늦은 시간에는 음식을 섭취를 금하도록 하고 배가 고플 때는 물이나 녹차를 마시되, 커피나 우유, 주스는 삼가 하는 것이 좋다.
⑥ 평상시 물을 자주 마신다. 물은 건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성인이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물의 양은 2500cc-3000cc 정도로, 식사 시간을 제외 한 나머지 시간에 수시로 물을 마셔주는 것이 좋다.
⑦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오래 살고 싶으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담배는 끊어야 한다.
⑧ 복식호흡을 한다. 숨을 깊게 내쉬고 들이마시는 복식호흡을 하자. 복식호흡만으로도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를 몸속 깊이 보내주어, 혈액의 공급이 원활해지고 몸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게 된다.
⑨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므로, 자연스레 몸까지 건강해 진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평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에 못 고칠 병은 없다.
⑩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가진다. 충분한 수면은 하루의 일과를 보다 활기차게 도와준다. 하지만 늦잠이나 낮잠을 자는 습관은 버리도록 하고, 하루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잠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양질의 수면에 도움이 된다.
(3) 신뢰: 믿음과 예의에서 나온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주변과 변방이 더 개혁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심부로 들어간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키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변방의 소국이었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다. 그 이유는 신(信)을 바탕으로 한 ''개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신뢰의 문제를 나는 '엉덩이의 힘', 다른 말로 하면 꾸준함이라고 본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다른 이들로 부터 신뢰를 얻는다. 그 신뢰를 통해 근본이 세워진다.
중국의 전국 시대는 철기의 발명을 계기로 새롭게 형성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야기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응하느냐가 관건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 모든 나라들은 '개혁'에 몰두한다. 당시 그들은 이것을 '변법'이라고 불렀다. 진나라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이 기존에 했던 일들을 이리저리 바꿔보고, 또 열심히 해보고, 관리나 백성들을 다그쳐도 보고, 제도를 수선해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해보고 하는 것들로 그 시대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나라의 상앙은 개혁의 핵심을 '신뢰'의 회복에서 찾는다. 그는 '신뢰'가 없이는 어떤 개혁도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이런 행사를 한다. 성문 밖 남문에 나무를 박아 놓고,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상금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나라에서 하는 말이라면 이미 시큰둥해 져서 어떤 말도 믿지를 않아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상앙이 상금을 다섯 배로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한가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정말로 거금을 상으로 주었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상앙이 다른 재상들과는 다르게 본인이 말한 것은 그대로 지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때부터 상앙의 변법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매우 효율적으로 시행되어, 변방의 작은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개혁의 길로 착실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종목입신(從木立信)'이라 한다. 나무를 옮겨 신뢰를 세운 것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찔레꽃에게서 배우는 아침이다. (0) | 2022.05.17 |
|---|---|
| 봄날 피고진 꽃에 대한 기억/신동호 (0) | 2022.05.17 |
| 찔레/문정희 (0) | 2022.05.16 |
| 봄비/김규성 (0) | 2022.05.16 |
| 청춘/사무엘 울만 (0) | 2022.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