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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신영복의 <나무냐 나무야>를 읽으며, 얻은 10가지 통찰

7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글입니다.

신영복의 <나무냐 나무야>를 읽으며, 얻은 10가지 통찰

1. 언언시시(言言是是) 정승이라고 불릴 정도로 황희는 시(是)를 말하되 비(非)를 말하기를 삼갔고 소절(小節)에 구애되기보다 대절(大節)을 지키는 재상이었다. [디테일에 머물지 말고 본질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2.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다. 권력의 창출만이 전부가 아니다.

3. 산판일을 하는 사람들은 큰 나무를 배어낸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잘린 부분에서 올라오는 나무의 노기가 사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4. [많은 생각을 주는군요.]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5. 교산 허균-당대 사회의 모순을 꿰뚫고 지나간 한 줄기 미련 없는 바람이었다. 그의 누이 난설헌 허초희-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애를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6. 자연마저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대리현실을 창조하는 문화+모든 가치가 해체되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남편마저 ‘상품’이라는 교환가치형태로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7. 미륵불은 석가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마저 구제하기 위하여 오는 부처입니다. [대청호가장자리에 있는 미륵원을 다시 가보고 싶다.]

8. 우리는 아픔과 기쁨으로 뜨개질한 의복을 걸치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한다.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와 지혜는 결합의 방법이다. 선량하나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나 비정하지 않고, 치열하나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결합의 지혜, 결합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9.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와 탐닉이 됩니다. 이성이 먼저냐 가슴이 먼저냐? 그러나 이성은 땅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 흙 가슴을 떠날 수 없습니다. 마치 컴퓨터의 체(體, hard-ware)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그 용(用, soft-ware)이 실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떠나는 것은 ‘질 버리고 양’을 취하는 것이며 사용가치를 버리고 교환가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10. 천수보살은 천개의 손을 가진 보살입니다. 우리는 많은 손을 갖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기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많은 손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손을 부리기 위하여 높은 지위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수보살의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습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고 합니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손입니다. 그 손들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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